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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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밀 싱클레어 혹은 헤르만 헤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p9

 

삶은 매 순간이 고민이고 선택이며 결과의 연속이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살아갈 미래에 대해 올바른 고민과 선택을 했더라면  아마 지금쯤은 나는 다른 결과(인생)에 놓여져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서른 중반을 훌쩍 넘은 나이에 한번쯤 진지하게 거쳐왔어야할 사춘기적 문제에 빠져 한심스럽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 자신에 이르는 길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방황 속에 있다. 그래서 헤세의 '데미안'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꿈'과 '이상'에 관한 성장 소설이자, 자신의 세계로 이르기 위한 투쟁의 이야기인데, 재밌는 사실은 이 작품을 필명으로 발표한 헤세가 훗날 이 사실을 해명 해야하는 해프닝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명으로 발표한 이유로는 '작품성만을 평가받기 위해서' 나, ' 오해 받지 않기 위해'라는 이유를 댔지만, 나는 그가 주인공 싱클레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싱클레어'라는 인물이 헤세의 시인 친구 휠덜린의 이름에서 따온 것과 어릴적부터 헤세의 꿈이 시인 이였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그가 자전적 요소를 많이 투영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선교사셨던 아버지와 시인이 되고 싶었던 헤세라는 두 공간의 대립이야 말로 헤세가 탄생시킨 '데미안'이라는 신비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아니였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경쾌하지 않다. 시종일관 자신의 세계에 대한 투쟁, 알 이라는 견고한 세계로 부터 깨어져 나오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그렸기에 거센 풍랑속의 중심에 떨어진듯 깊고 음침하였다.

 

 

2. 자신에게 이르는 길은 결국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운명을 동경했고, 운명을 두려워 했지만, 운명은 늘 거기에 있었다. 늘 내위에 있었다.p128

하지만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속에는 모든것을 알고 모든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것을 우리들 자신 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p116

 

그래. 나는 알고 있었던듯 하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이였는지를. 직장에서 돌아와 지내는 시간들이 왜 그토록 불편하기만 했는지. 마치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처럼 늘상 내 삶에 불편감을 느끼던 그 순간들을. 이후 펼쳐든 안상헌 저자의 책 『인문학공부법』북포스 통해 '진정 원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으로 내 삶은 황량한 들판을 걷는듯, 우주의 망망대해를 떠도는듯 안정할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 싱클레어 역시 알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은 아버지가 원하는 길 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는 압락사스라는 선과 악의 공존의 신의 세계 즉, 따스함을 이끄는 아버지의 세계인 '선'과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의 세계 '악'(아버지의 기대로 부터 벗어났다는 죄책감)이라는 두 공간의 대립으로 부터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공간 속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규율과 규칙은 늘 따뜻하고 환한 빛과 같은 공간이라 기억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한발짝만 멀어져도 죄를 짓은 것처럼 죄책감에 짓눌린다. 그가 속한 세계는 아버지라는 안정된 세계였기에 금지되는 많은 것들에 의문을 갖을 수 없었다. 내가 속한 현재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무엇하나 어긋남이 없이 안정되어 돌아가는 세계. 의미없이 째각째각 돌아가는 시계 바늘처럼. 늘 일정하게만 돌아가는 견고한 세계에서 한발짜국만 내밀면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음을 알면서도 알을 깨트리고 나갈 투쟁심도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늘 머뭇거리는 것이라고 말이다.

 

' 모든 사람에게 있어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가지 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것...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였다.p172

 

그러나 말해 두겠는데. 그것을, 그 꿈을 그대로 살게, 그것을 유희하게, 그것을 제단을 세워두게! 그것은 아직은 완전하진 않지만, 하나의 길이야. 우리가, 자네와 나, 그리고 몇몇 다른사람들이, 세계를 한번 새롭게 개혁하게 될지 못하게 될지 그거야 두고 봐야지 그러나 저 안쪽 우리들 마음 속에는 우리는 그것을 날마다 새롭게 해야하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p150

 

안전하고 견고한 세계로 부터의 탈피는 분명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꿈과 이상이 명확하지 않다거나, 단기간에 걸쳐 이뤄낼 수 없다면 더욱이 큰 용기가 필요할터고 나역시 내 이상을 향해 나아간다면 수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다. 이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로 이르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설득 시키며 묵묵히 헤쳐 나가야할지 그 의지력과 끈기력 또한 시험해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단 한번뿐이라면, 또 내 삶을 계획하고 이끌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뿐이라면 온전히 열렬히 내 자신을 위해 한번쯤 쏟아낼 수 있는 용기를 갖어도 좋지 않을까. 나 때문에 곁에서 기다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할 가족들에게 현재의 행복이 진실하지 않았노라 고백할 용기를 갖어본다면 먼 훗날에 맞이할 나의 진짜 행복 앞에 함께 기뻐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어본다. 싱클레어는 이런 방황스런 마음을 자신의 이상형 베아트리체로 부터 위안을 받고 다시 길위로 들어설 수 있었지만, 내가 찾을 수 있는건 오직 시간을 견뎌내준 책과 그 속에 담긴 한 편의 위안과 감동을  불어넣어줄 뿐이다. 싱클레어에게 많은 조언을 준 파스토리우스가 내겐 헤르만 헤세일 뿐이고 또 신비의 소년 데미안은 아직 이르지 못한 나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꿈이라는것은 언제나 교체 가능하기 때문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p191. 한 가지의 꿈이라도 온전히 모든것을 던져 열렬히 원하고 임할때에야  이룰 수 있는 것 이지만 실패하더라도 집착하지 말고 다른 꿈도 생각해보라는 이야기 왠지 박웅현 저자의 이야기도 떠오르는것 같다. 가끔 권장도서 목록을 보면 이 책이 왜 올라왔을까 하는 의구심이 마구마구 샘솟는 경우가 많았지만, 『데미안』이야 말로 성장통에 꼭 필요한 책임을 느낄 수 있어 모처럼 권장도서에 맞는 책이라는 사실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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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5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소설들은 항상 고민하면서 사는 주인공이 많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에요. 그래서 헤세의 소설만 집중적으로 읽게 되면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심적 상황에 몰입되어서 피로감이 느껴졌어요. 작년에 헤세의 초기작 <페터 카멘친트>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수레바퀴 밑에서>와 <게르트루트>를 읽었을 뿐인데 답답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주인공이 불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 답답해요.

해피북 2015-02-17 16:12   좋아요 0 | URL
저는 `크눌프`와`데미안`의 책을 읽어봤지만, 말씀처럼 깊은 고민과 방황을 담고 삶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것 같아요. 그런데 읽어보면 명확한 답을 내놓진 않는다는점에서 여러가지 각도로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ㅎ 때론 답답함도 있고 왜 이렇게 명쾌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마치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는듯. 무튼 헤세의 날카로운 문장들은 정말 멋졌어요! 그래서 헤세에 모든것을 알고 싶어 헤세 따라잡기?를 하고 있답니다 ㅋㅡ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