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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그러니까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혜수씨가 『모던보이』정지우.2008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읽은 책으로 이지민 원작 소설 『모던보이』문학동네.2008 와 『허삼관 매혈기』가 소개되면서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는 기쁨과 설레임은 책을 단숨에 읽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올 해 하정우, 하지원 주연으로 『허삼관 매혈기』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하며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다시금 그때의 감정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먼저 이 소설의 배경으로 흐르는 '문화대혁명'에 관해 살펴보면 소련과의 우호관계가 틀어졌던 시기이며 산업경제발전에 심혈을 기울이던 1958년 농촌의 일손인 청년들이 산업인력으로 대거 투입되어 농촌에 심각한 일손 부족과 더불어 자연재해까지 겹쳐 농민 2천만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산업경제발전을 위한 대약진 운동이 실패함에 따라 당시 마오쩌둥 주석은 권위 회복과 주도권 확립을 위한 권력투쟁 운동인 '문화대혁명'을 주도하게 되었다는것.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무척 혼란스럽던 시기였던것.
생사(生絲)공장에서 일을 하지만 가정을 이룰만한 돈을 모을수 없던 삼관은 방씨와 근룡이를 따라 피를 파는 병원에 들어간다. 처음 피를 팔고 나오면서 후들 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찾아간 곳은 승리반점. 피를 판 후 꼭 먹어야 한다며 탁자를 두드리며 외치는 소리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 냥'는 구슬픈 운율의 서막이자, 내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피를 팔아 모은돈으로 꽈베기 서시 허옥란을 아내로 맞이한 삼관은 5년동안 일락,이락,삼락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一樂 즉 한번의 기쁨, 두번의 기쁨, 세번의 기쁨을 느낄 정도로 허삼관은 단란한 가정에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애지중지 키우던 일락이가 자신의 친자가 아님을 알게되며 단란하기만 했던 가정에 풍파가 찾아온다. 일락이의 아비가 하소용임을 알게된 허삼관은 분노스런 마음에 임분방과 외도를 하게되고, 그 일이 발각되면서 하소용 사건은 일단락 되어진다. 이전처럼 일락이를 대하지 못하는 허삼관이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따스한 마음으로 소설을 읽는 동안 절절한 부정을 느끼고 몰아치는 인민재판과 문화대혁명의 변환으로 뿔뿔이 흩어진 자식들과 자식을 지키기위해 목숨을 담보로 피를 팔며 돈을 마련한 허삼관의 부정을 보며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요 일장춘몽(日場春夢)이라. 행복할것만 같던 가정에 찾아든 모진풍파로 인해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 모진 세상에서도 끝내 철없는 자식들을 품는 부정과 모정을 느끼며 나의 부모님들을 떠올렸다.
헤지고 헤진 장갑을 낀 삼관은 가족 옷을 만들기 위해 새 장갑을 모으고 침대 밑 쌀독에 쌀을 한줌씩 모으는 옥란의 모습을 보며 그 옛날 음식 앞에서 자식들 주라며 손을 저으시던 아버지 모습, 야채트럭이 지나는 소리에 부리나케 뛰어나가 아저씨와 옥신각신하며 값을 흥정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뭉클하였다. 어쩌다 한 번 아버지 회사에서 나오던 가전제품을 장농 제일 윗선반에 올려두고 이것은 큰애꺼 저것은 작은애꺼라며 자꾸 쓰다듬던 손 길, 매서운 겨울날 온기없는 방안에 앉아 계시면서도 자식들 방안 온기 걱정하시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장성한 자식들은 각자의 길을 찾느라 부모님은 보이지 않고, 모진 세월은 부모님 기억속에만 남아 인생은 원래 그런것이라 다독이시는 부모님 앞에, 아프다는 소식에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생신때도 가지 못했던 일들이 겹치면서 허삼관의 넋두리에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 밥 먹이고 옷 사 입히고 돈 쓸때는 아들이 셋이나 되는데, 엄마한테 밥을 들고 갈 아들 녀석은 한 놈도 없네 그려'P223
'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글쓰기와 독서는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일 혹은 이미 지나가버린 삶을 다시 한번 살아보려는 뜨거운 욕망과도 같은 것이다p12~13
승리반점에 앉아 아내 옥란과 시켜 먹은 돼지간볶음 세 접시와 황주 한 병은 인생의 어떤 역경에서도 놓을수 없는 부정과 모정에 대한 마음이며, 다시 살아도 자식들의 아비로 살아가겠다는 부모의 마음이 전해지는것 같아 소설을 덮을때까지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은 허삼관이라는 인물을 통해 부모의 마음과, 철없는 자식들의 모습을 우리네 삶속으로 비추는 거울처럼 느꼈다. 또한 인생이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삶의 연속일지라도 '푸르고 무성한 산이 있는 한 땔나무 걱정은 없다'P157던 말처럼 어떤 역경에도 포기하지 말고 살아보라는 격려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소설을 영화로 상영중이라 실은 걱정이 앞선다. 소설이 담고 있는 격동의 시기와 맞물린 아픔까지 잘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동안 주성치가 떠올랐음을 시인해야겠다. 아마도 주성치라면 시대 전반을 아우르고, 섬세한 감정 연기로 표현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직 하정우씨의 영화를 보지도 않았는데... 괜한 걱정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