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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ㅣ 여행자의 독서 1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여행자들이 모이는 숙소에 가면 그들이 두고 간 책 들을 손쉽게 만나는데, 필요하다면 자신의 책과 교환하거나 조금 미안하지만 그냥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때 여행자 숙소는 막막한 여행길에 훌륭한 도서관이 되고 먼지 앉은 책들은 다시금 생명을 갖게 된다...좀 더 솔직히 말하면 우리 여행자만큼 책과 친하지 않은 이들도 없다고 생각한다.’p326
여행과 독서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다. 여행은 동적인 활동이고, 독서는 정적인 활동인 면에서 그렇다. 그런데 여행자들은 늘 배낭 속에 새로운 책들로 채워 넣는다. 급히 필요할 식료품을 밀쳐두고라도, 단 한번 펼쳐들지도 모를 순간을 위해 그렇게 배낭을 채워간다. 책이 여행을 부추기고, 여행이 다시 책을 집어 들게 하는 순환의 고리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이 글쓰기P6 라는 이희인 저자.
그의 책 <여행자의 독서>는 낯선 여행지에서 그것보다 더 낯선 텍스트로 구원과 사랑, 자아와 이야기를 찾아 떠난 독서 여행기다. 이 책은 유럽의 화려한 색채나 여러 문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안내하는 흔한 여행기가 아니다. 나라의 이름만으로도 걱정스러운 변방의 아시아나 라틴 아메리카, 지중해에서 만난 책들의 이야기다. 아름다운 사진과 여행담을 기대했다면 좀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읽어본 이 책엔 무엇보다도 진솔한 책과 사람,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어 좋았다는 것이다.
‘ 매너리즘에 빠진 유럽, 미국 주도의 문명보다는 새로운 에너지를 품은 소수, 변두리 문명에 어떤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희망이 목마른 자에게 여행을 떠나고 책을 읽게 한다. 가장 멋진 여행은 아직 떠나지 않은 여행이며, 가장 훌륭한 책은 아직 쓰이지 않는 책이다.’ P282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생생하게 다가오는 텍스트들과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의 조화의 잔치가 아닐까. 책은 이렇게 아직 떠나보지 못한 나를 부추긴다. 그가 네팔의 희말라야에서 들려주는 『인듀런스』는 모험과 탐험심을 부추기고, 『잃어버린 지평선』을 읽었던 티베트에선 잃어버린 천국 ‘샹그릴라’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긴다. 여행하는 영혼인 『크눌프』는 낯선 대지를 밟아보지 못한 내 영혼을 비웃으며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냐며 나를 부추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황량한 대지와, 낯선 공기가 나를 부추긴다.
‘ 아 아, 읽어야 할 책도 얼마나 명쾌한가. 바르셀로나의 노천카페에 죽치고 앉아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나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를 읽는 거다. 카스티야의 황량한 들판에서 『돈키호테』를 읽고 안달루시아의 오렌지나무 아래서 우나무노의 사색적인 책이나 로르카의 희곡을 읽으면 어떨까?‘p199
‘ 경기를 관람하던 눈들이 일제히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여행자에게 쏠리자 순간 섬뜩했다. 형형한 눈빛들에 그만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식사를 하며 테이블 건너편 사람들과 눈빛을 교환하며 차츰 그들 안에 깃든 선량함을 느꼈다. 누구에게도 무례함을 끼쳐본적이 없는 이들의 눈빛 이랄까. 미얀마가 갑자기 가깝게 다가왔다.’p121
‘ 사막은 사람에게 행동하라 가르친다. 그 행동이란 의도된 철학적, 존재론적 행위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안간힘일 뿐이다. 사막 같은 극한의 땅위에서면 누구나 일상을 뛰어넘는 사색과 결단을 하게 되고, 마침내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 일까, 사막은 책 따위는 버리고 대신 땅을 읽으라고 한다. 사막에 당도하지 못한 자들만이 책을 읽는 것이다’p235
여행. 늘 꿈꿔왔던 순간들로 가득하다. 언젠가부터 황량한 대지의 바람을 그리워했고, 언젠가부터 수첩 가득 계획들로 채워졌다. 그런데 ‘꿈’이기에 두려운 것 일까. 발목을 붙잡는 걱정들로 쉽사리 떠날 수 없었다. 그런 내게 저자는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라는 말을 들려준다. 행동에 대한 후회는 극복이 가능하지만,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근거조차 없기 때문에 그런 후회가 가장 오래 남는 거라고.p315
'근거가없다‘는 표현보다도, 할까 말까 고민 스러울땐 차라리 하고 후회하자는 말이 된다. 행동에 대한 후회는 내 삶에 지표가 되어주고 계획을 세울수 있지만, 해보지 못한 행동은 결과를 예측할 수도, 지표를 잡아볼 수도 없어 큰 아쉬움과 긴 여운으로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남는다고 이해했다. 그렇게 정리해보니 강원도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망설이며 하지 못했던 일들로 아쉬워했던 차안이 떠올랐다. 배가 불러도 맛을 보고, 추웠어도 바닷물에 발을 담궈 보고, 힘든 일정 이였지만 그곳에 올라 다시 없을 시간을 만끽할 껄 했던 많은 아쉬움들이 말이다.
나도 언젠가 후회 따위는 잊어 버릴 만큼 멋진 여행에 가져가고 싶은 책들을 놓고 밤새 고민하며 짐을 꾸리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여행이라는 꿈속 에선 황량한 대지가, 낯선 바람과 사람들이 이방인인 내겐 한 권의 책이 되어주기에 가져간 책보다도 더 많은 책을 읽고 오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내 바램 에 저자는 격려한다.
‘ 여행은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꿈을 하나 둘 잃어가는 것에 더 가깝다. 가슴 속에 고이 간직했던 땅들이 마침내 눈과 코, 발바닥 앞에 벗겨질때 그 만큼의 간격과 함께 꼭 그만큼의 상실감이 따라온다. 꿈꾸던 곳을 디딘 순간, 꿈이 하나둘 가슴팍 어딘가에서 허무하게 빠져 나간다. 처음부터 꿈 따위는 갖고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한 여행자 일지도 모른다.p310 고. 매섭도록 시린 겨울.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을 대지로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