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물 마셔보셨나요?

땅 속에서 끌어올린 물은 정수기 거쳐 나온 냉수보다 차갑나요? 


며칠 전, [토지] 읽기 회원분들의 대화를 우연히 곁들은 후 계속 궁금합니다. 저는 모임원이 아닌 데다가 [토지]를 읽지 않아서 대화에서 언급된 인명과 지명 대부분을 놓쳤지만, "우물물" 만큼은 귀에 담아왔습니다. 그분들은 우물물 목 넘김의 차가운 감각을 몸으로 기억하시는지 '아'하니 '어'하며 감각을 공유하시더군요. '차가운 감각' 의 공유면에서 잠시 소외되었던 제게 '우물물의 시원함'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

바로 "감각의 소중함"말입니다. 사실 저는 우물물이 정수기 냉수보다 더 차가운지 판별하는 데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인간 존재와 기억함에 감각이 얽힘이 궁금해졌습니다. 어쩌면 AI가 우리 인간을 대신해 노래해주고, 소설을 써 주고, 교란된 감각을 유도하는 21세기에 우리가 잊어가는지도 모를.....

**

'우물물'에 생각이 꽂힌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주말 밤, 최신공법으로 지어진 통유리 빌딩 안에서 소위 "멍 때리기" 하던 중이었습니다. 빌딩 내벽에 수직으로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 속에서 새들이 날고, 미풍에 나뭇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부꼈습니다. 반복 재생되는 평면의 영상에서 저는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이, 그 조작된 자연의 이미지에서 평온함을 느낀다는 걸 문득 깨닫자 갑자기 불쾌해졌습니다. 사실 전기적 시각 자극을 받은 제 뇌가 속았을 뿐인데 저는 마치 실제 숲 속에 와 있는 듯한 평온감을 잠시나마 느꼈기 때문이죠.



다행히 저는 진짜 숲과 환영의 숲 이미지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실제 숲에서 다양한 감각을 느껴왔습니다. 하지만, 그럴 기회가 부족할 미래의 아이들은 어떨까? 마치, 우물물 목넘김의 시원함을 모른채 정수기 냉수가 전부인지 아는 저처럼......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두려워졌습니다. 이 존재론적 두려움을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하기가 참 어렵네요.



대신 오늘 아침 산책하다 찍은 숲 사진을 올려봅니다. 1시간 사이에 일주일 필요량의 햇볕을 다 쬐었다고 느낄만큼, 숲 속의 햇살은 순도 높고 강렬했습니다. 햇볕이 세로토닌이 퐁퐁 솟아나게 한 탓일까요? 오후 내내, 졸음이 졸졸 따라다닙니다.

오늘 아침 온 몸에 쬐인 햇살의 강렬한 따뜻함은, [토지] 책 읽기 회원분들이 기억하시는 '우물물의 차가움' 만큼이나 제겐 경이로운 감각으로 오래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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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6-25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벤치 디자인이 넘 예뻐요
요즘 공원시설물이 멋진게 넘 많아요~♡

얄라알라 2023-06-26 10:14   좋아요 0 | URL
벤치 페인트칠한 부분이 저도 맘에 들었는데
산림욕장 내부에 있는 목공소 작품이 아닐까 혼자 생각했어요^^

장마라서 당분간 공원도 못가겠어요
비오지만 뽀송하게 월요일 시작하세요
그레이스님^^

고양이라디오 2023-06-26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숲이쁘네요. 저도 일광욕하고 싶네요^^
 

궁금했다. 합계출생율TFR "0.78," 전무후무하다는 그 통계수치가 정녕 대한민국의 쇠락과 소멸을 기정사실화하는 경고인지? 초저출산 대한민국 사회를 두고 "집단 자살"을 향해 가고 있다는 표현이, 공포감을 조장하려는 자극적인 수사가 아닌지?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인구문제를 오래 고민해온 전영수 교수의 신간을 찾아 읽는 중이다. 현재 1부" 대한민국은 낭떠러지로 폭주 중"만 읽은 상태이다. 정리가 필요해서, 잠시 읽다가 쉰다.


저자 _ 전영수

  • 현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환경 변화와 인구 대전환을 위한 구조개혁

  • 이력: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서울시, 감사원 자문위원, 전문위원

  • 저서: 다수.


[인구소멸과 로컬리즘]의 저자 전영수 현 한양대 교수.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자문위원 및 전문위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여온 저자의 이력이 행간 곳곳에서 느껴진다. 국내외 행정관료뿐 아니라 지방 토착민, Z세대와 은퇴후 장년 노년층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현장에서 만나고 대학에서 연구를 해온 전문가가 "집단자살, 국가소멸"을 향해 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제시하는 충고는, 탁상공론의 결과와는 거리가 멀다. 현실적인 진단에 근거한 경고이기 때문에 호소력이 크다.

최근 전영수 교수가 등장하는 언론사 인터뷰 기사가 많으므로, 저서를 직접 읽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고 그의 기본 주장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책 제목, [인구소멸과 로컬리즘]에 압축되어 있다. 로컬의 부흥이야말로, 국가소멸 위기를 맞을 대한민국에게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다음의 인터뷰를 참고할 수 있다.

https://www.asiae.co.kr/article/2023030423110626600

저자는 한국은 핵과 전쟁의 위협 앞에서도 다른 나라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수준으로 평온한 일상을 유지할 만큼 안전불감증 사회이기 때문에 인구 소멸로 인한 재앙 경고 앞에서도 '강 건너 불 구경'의 태도를 취해 왔다고 안타까워한다. 게다가 2020, 2021년 Covid-19가 모든 이슈르 선점했기 때문에 인구문제는 사실상 방치되었다. 뒤늦게 대한민국 정부는 수도권집중과 지방 소멸에 대응한 해법들을 내 놓고 있지만, "만시지탄 晩時之歎"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전영수 교수의 판단이다.


먹이가 없어 수도권에 왔더니

둥지가 없어 알을 못 낳는다.

세상을 구하는 60분이 있다면, 그 중 55분을 문제 규명에 쓰겠다는 아인슈타인을 인용하며 저자는 한국 사회는 지방 소멸 등 국가존립 흔들리는 인구 위기에 대한 진단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쓴소리를 한다. "문제의 본질은 사회 이동(85)"이니까. 인구를 증가시키겠다는 어차피 못 이를 꿈을 버리고고, 있는 인구나 잘 지켜라(인구 감소를 저지하는 것이 목표다). 제로섬 게임처럼, 이쪽 지자체에서 저쪽으로 인구 빼오기 게임을 할 게 아니라 대승적 관점에서 공생을 모색하자. 그러려면, 국가가 개입해서 돈 퍼부으며 보여주기식 단타식 지역 활성화 쇼를 하지 말고, 로컬에 어벤져스가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한다.

자! 여기까지가 1부의 내용이었고, 과연 전영수의 해법이 얼마나 현실적용가능하고 구체적인지는 2부에서 계속 읽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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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6-04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구문제에 관해 최재천 교수와 제럴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주장에 공감했는데요.
전영수 교수의 의견도 비슷하네요.^^ 엉뚱한데 세금 낭비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2023-06-05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6-13 10:24   좋아요 1 | URL
저도요. 다이아몬드 교수 주장에 공감합니다ㅎ

페크pek0501 2023-06-0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을 접하시고 훌륭하십니다.
2부를 기대하겠습니다.^^
 

2023. 4. 23~11.12

서울 야외 도서관

광화문 책마당


https://seouloutdoorlibrary.kr/niabbs5/


광화문 책마당!

"마당"이 열렸다는 소식을 최근 들었습니다.

블로그나 서울시 여러 홍보 매체에서 극찬하던 대로 과연 풍성한 책잔치인지 아닌지

책덕후로서 궁금합니다.

황금 토요일을 광화문에서 보내보기로 했습니다.


주차는?

세종로 공영주차장에 했습니다. 공연 관람객의 경우 4시간에 5600원으로 할인을 해주더라고요.

이야! 너무 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날씨가 좋은지...

2022년 2023년 여행 숙소만 예약했다하면, 1박 2일, 2박 3일. 내내 비만 주륵주륵 내려서 우울했는데

6월 황금 연휴 날씨가, 환상적입니다.

정작 이번 연휴에는 아무런 여행 일정도, 숙소 예약도 안 했더니 날씨가 이럴 수 있나요? 


아! 약오름.

파아란 하늘은 광화문의 그 옛날을 상상하게 하고, 햇살은 멸균 소독 수준으로 순도 높습니다! 6월 한국의 하늘이 경이로운지, 선탠하듯 누워서 전신에 햇볕을 담아가는 외국인들이 여기 저기 있네요.


세종문화회관 내에 책마당 메인 공간이 있습니다. 다른 분들 블로그 리뷰를 보고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인지, 규모도 작고, 덜 활기차고 덜 편안해 보여서 조금 실망했습니다.

확실한 건, 홍보에 열 일 하고 뜨거운 에너지를 쏟는 것 같습니다.

카메라맨 두 분이 현란한 카메라 무빙하시길래 실수로라도 방해될까봐 비켜서 있었습니다.

장비빨로 보아 일반 유투버가 아니라, 파견나온 홍보 전담이신 듯 했거든요.

기대가 너무 컸나봐요.....


대신 광화문 책마당은 야외로 이어집니다. 6월 3일 무료, 시민 음악 공연이 저녁에 예정되어 있어서 미리 자리를 맡고 계신 가족단위 방문객 분들이 많았어요.

이렇게..."땡" "볕" "아" "래"

과연 광화문 책마당이 7월 8월 폭염에는 어떤 식으로 유지될지 궁금했습니다.


책덕후인 저로서는 "광화문 책마당"에서는 책 분실 우려가.매우 높겠다는 걸 바로 알겠더라고요.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시민의식 아니까..... 걱정 안하겠습니다^^



광화문 책마당 "만" 즐기러 오기에는, 싱거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말을 여유있게 보내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에너지와 익명의 친근감 느끼고 싶으신 분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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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04 08: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느 이상한 나라의 지도자는
기울어진 언론 지형 때문에
자신의 지지율이 낮다는 타령
을 하던데, 예의 홍보팀을
초빙하는 것을 추천하는 바입
니다.

참 세종도서 선정하는데 문광
부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말이 있던데...

나랏님들이 일반 시민의 독서에
까지 지대한 관심을 가져 주시니
고저 몸둘 바를 -

그레이스 2023-06-04 09:36   좋아요 2 | URL
이젠 세종도서 찍혀 있으면 걸러야 하나요?ㅠㅠ

얄라알라 2023-06-04 15:52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촌철살인 댓글 감사드립니다.
광장은 비워두고, 트인 데서 군중의 유동과 예기치 않은 이벤트가 이뤄지는 곳이(어야 하)죠..
사실, 제가 이 곳에 갔던 진짜 이유는 ˝책˝구경이 아니었습니다.


햇살 너무너무 너무 좋은 6월이네요^^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를

얄라알라 2023-06-04 15:53   좋아요 1 | URL
헐...세종도서....^^:;;;;;;;

흑....˝세종˝ 도서...

페크pek0501 2023-06-06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 님의 댓글 마지막 문단에 고저 빵 터짐.ㅋㅋ
어제 6천 6백보 걸었는데 날씨가 좋더라고요. 덥지도 춥지도 않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요즘 저녁 날씨가 저는 맘에 들어요. 7,8월 책 행사 때도 태양의 열을 멸균 소독 수준으로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ㅋㅋ
 

학교에 가는 길은, 아이들을 만나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죠. [문학] 수업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책덕후가 놓칠 리가요. 냉큼 신청하였습니다. 마침, 참관일이 아이들 발표일이었어요. 선택한 문학작품을 읽고 "성찰"한 내용을 3분 발표하는 구성이었습니다.

[1984] [날개]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마침 발표 목록에 오른 책 중 1/2 가까이 제가 최근 2-3년 사이에 읽거나 다시 읽은 책이었습니다. 문학 선생님께서는 모르셨을 거예요. 이 수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짜릿짜릿 전율 느끼는 어른 학생이 교실 안에 있다는걸.

아이들의 발표는 상상 이상으로 훌륭했고, 발표하는 아이들 역시 사랑스러웠습니다. 칭찬이 열 마디로도 모자랄 지경이었어요. 동시에, 반복되는 경향성을 보았습니다. 바로, 기존의 권위 있는 해석이나 익숙한 키워드로 문학작품 해석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향 말입니다.


예를 들어, 이상의 [날개] 발표자는 마지막 문단을 지식인이 무기력 상태를 초극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무려 난해한 [1984]를 발표한 친구는 발표 내내 "Big Brother is Watching You"와 만연한 CCTV의 감시망을 언급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문학 참고서를 통해서 익혔거나 평론을 찾아 읽어 기억하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저는 '문학' 잘 모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게 됩니다. 해석문제라는 맥락에서 [샬롯의 거미줄]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이 초등필독서는 "우정"을 키워드로 더 잘 알려져 있죠. 샬롯이라는 거미와 윌버라는 돼지 사이의 우정 말입니다. 검색해보면, [샬롯의 거미줄] 리뷰마다 "찐 우정"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네다섯번 읽다 보니 샬롯과 윌버, 둘의 관계성은 성장이 빠른 새끼 돼지 윌버의 성숙과 더불어 미묘하게 변하더라고요. 초반기 샬롯과 윌버의 관계성은 "우정"이라기보다는 "돌보는 자- 돌봄 받는 자," 더 구체적으로는 마치 "엄마-아들"과도 같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볼 때는요.



예시 장면을 하나 들어볼까요? 작품에서 윌버는 농축산물 품평회에서 1등을 하면, 햄 베이컨 신세를 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품평회에 참여합니다. 그동안 윌버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윌버를 돕느라 애써온 샬롯에게 윌버는 이번에도 도와달라고 말하죠. '내가 어려운 순간에 네가 날 저버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라는, 명령보다 더 무서운 친절한 기대감으로 말입니다. 사실, 샬롯은 임신한 거미입니다. 곧 알을 낳아야 하죠. 품평회장에서 알을 낳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 어린 윌버는 품평회장에서 알을 낳으면 "재미있을" 거라며 샬롯의 동행을 재촉합니다. 처음에는 "알 낳기"를 우선순위에 두었던 샬롯이 그 청을 거절했지만, 윌버를 지켜주기 위해 동행합니다. 이 부분에서 보이는 관계성은 대등한 관계의 우정이라기보다는 "(아낌없이 베푸는) 엄마 - (그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 가는) 아들"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제 해석이 옳다는 의미로 적은 글은 아닙니다. [샬롯의 거미줄]을 "우정" 키워드에 갇혀서 생각하면 놓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의도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상의 "날자" 문구가 무기력한 지식인의 생의지로 "=' 환원되고, 그 어렵고도 치밀한 [1984]가 "Big Brother is Watching You"와 등치 되었을 때, 풍성함을 놓칠 수 있겠구나 싶어요.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문학' 수업을 진행해 주신 선생님과 그만큼이나 훌륭한 아이들,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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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5-25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생들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상당히 수준높은 책들을 읽는군요. 훌륭합니다ㅎ

2023-05-25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6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3-05-25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84는 저도 절레절레.하며 어른되어 다시 읽었는데 어린 학생들이.읽다니 대단해요^^

고양이라디오 2023-05-26 10:12   좋아요 0 | URL
<1984> 항상 읽다가 실패하는 책인데... 언제 진득하게 읽어봐야겠습니다!

얄라알라 2023-05-26 10:22   좋아요 1 | URL
어렸을 때는 1984 이해 못하며 본 것 같고
커서 읽으니, 으아....정말 제가 이런 책을 힘들어하며 읽는다는 걸 알았어요. 넘 힘들었어요

나중에 보니, 에릭 블레어가 전쟁 참전하며 참호에서 쥐외 끔찎한 기억이 많았나봐요
그래서 고문 씬에 쥐가 등장한다고....

고양이라디오님, 1984 완독을 미리 응원드리며!

난티나무 2023-05-27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샬롯의 거미줄 한번 더 다시 읽어야 겠어요!!!!
 

냉장고에서 신선 채소를 묵혔다가 흐물흐물해져서 내버릴 때의 찜찜함에 비견할 것이 바로 대출한 책 읽다말고고 반납할 때의 기분. [조지 오웰의 길]은 160여 쪽. 한 손에 쏙 잡히게 얇다. 게다가, 2023년을 조지 오웰 탐색에 쏟았던 내게는 딱히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1/2지점에서 반납 알림 메시지를 받았다. 찜찜함을 참느니 다른 우선 순위의 일을 제끼고, [조지 오웰의 길]을 끝까지 읽는다.


글쓴이 아드리앙 졸므 (Adrien Jaulmes)는 종군기자상(2007)을 받은 <르 피가로> 특파원인데, 독특한 작가를 소재로 연재 르포르타주 documentary literature 써달라는 요청을 받자, '조지 오웰(에릭 블레어)'을 떠올렸다. 아드리앙 졸므는 제목 그대로 "흔적 Traces" 을 따라, 즉 작가의 삶에서 주요 사건들이 전개된 장소를 직접 방문하며 소회를 엮었다. 이런 서술 방식은 독자가 '조지 오웰'을 마치 동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로 친근하게 느끼도록 실재감을 부여해 준다. 그래픽 노블 [조지 오웰]을 인상 깊게 읽었던 나로서는, [조지 오웰의 길]이 공간화한 자서전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나는 '외모가 뭣보다 중하지!' 했던 어린 시절에, (외모상 호감 느끼기 어려웠던) 조지 오웰의 사진을 보고 작가를 더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 때의 무례함을 몹시 부끄러워한다. 지금 나는 충분히 그를 좋아하고, 더 알고 싶어 한다. 두 대표작 [동물 농장] [1984]과 조지 오웰을 분석한 책을 읽어갈수록 그는 내게 점점 더 매력적인 인간이 된다.



오웰을 추앙하는 분위기를 못마땅히 여겼던 Een Judah는 "나는 왜 조지 오웰이 지겨웠는가"에서 오웰을 "복잡성을 거부하는 사상가"로 깎아내렸렸다. 하지만 역으로 쿠엔틴 코프는 "오웰의 지속적인 영향력은 그가 취한 입장들보다는 언어의 명쾌함과 높은 정직성" 때문이라고 칭송했다. 내가 막연하게 느꼈던 조지 오웰의 매력을 명료하게 정리해준 쿠엔틴 코프가 고맙다.

* *

오웰은 현학적인 문장을 설사하듯 쏟다가 정작 용기를 내야 할 땐 펜을 입에 문 채 웅얼거리는 비겁한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설사하듯 글만 쏟아내느니 차라리 절필이란 변비를 택했으리라. 조지 오웰은 타협이나 굴종 없는 직진형 인간이다. 무려 이튼 스쿨 출신의 이력에 접시닦이, 서점 판매원 등등 저임금 비정규직이 나열되고, 전장에 나섰을 때 병적 직업란을 "식료품상"이라고 기재했을 정도로 그는 어렵게 살았다. 영국 경찰이라는 번듯한 직업을 그만두고 밑바닥닥 삶을 살면서도 가족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난이나 소외된 사람들의 세계를 미화하지도 않았다. 조지 오웰은 꾸밈 없이 정직한 작가였다. 나는 수식어 걷어 내고 사는 이 작가가 인간을 보는 눈을 [조지 오웰의 길]을 읽으며 상상해 본다. 두 가지 단서를 찾았다.



1. 에릭 블레어의 단편 <수행인 A Hanging>에서 작품 속 화자는 사형수를 교수대로 데려가던 중, 사형수가 물웅덩이를 피하는 걸 보고 곧 사형당할 그 역시 경관인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46쪽)


2. 에릭 블레어는 스페인 내전 당시, 적군의 전령이 손으로 바지를 움켜쥐고 참호 밖으로 달려가는 걸 보았으나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그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내가 방아쇠를 당기기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그의 바지 때문이었다. 나는 파시스트들을 사살하러 왔으나 자기 바지를 붙잡고 있는 남자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다. 우리와 같은 개인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방아쇠를 당길 마음이 들지 않는다." (120)



[동물 농장]으로 조금씩 유명세를 치르고 있을 때, 에릭 블레어가 주라 섬(Jura)으로 요양을 떠난 이유로는 폐렴으로 인한 요양 목적뿐 아니라 작품 집필을 위한 시간 확보도 있었다. "언론이 난리를 쳐대서 말이야... 다른 책을 한 권 쓰고 싶은데, 그러자면 사람들이 나에게 전화를 할 수 없는 장소에서... 조용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6개월은 필요하다네."라고 친구에게 편지를 적었다고 한다. 그 외딴섬에서 조지 오웰은 [1984]를 썼고, 탈고하고 몇 년 안 되어 숨을 거두었다. 결혼한지 채 100일이 안 된 아름다운 신부, 소니아 브라우넬과도 안녕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기쁘다. 내가 어떤 작가를 신뢰하는지 뚜렷하게 알게 되어 더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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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5-22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가가 점점 더 좋아져요!
정직한 직진형 인간! 정말 멋진 말이네요~~

얄라알라 2023-05-22 00:31   좋아요 1 | URL
은하수님^^ 반가운 말씀이신데요 고맙습니다

조지 오웰이 몸도 좋지도 않은데, Jura섬에서 보트 뒤집혔을 때 아이들을 살려내고 신속하게 돌보았던 일화 역시, 이 분의 성품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마음에 없는 말씀을 안 하셨을 것 같은 작가님이라 더 좋은 거 있죠^^

새파랑 2023-05-22 0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는건 너무 좋죠~!
그런데 조지 오웰 와모 정도면 호감형 아닌가요? ^^ 저 흑백사진 멋진데 ㅋ

은하수 2023-05-22 09:25   좋아요 2 | URL
멋진데다 얼굴에 장난기도 보이지 않나요?~~~ 그리고 정원가꾸기를 매우 사랑했단 것도 저와 같아서 더 좋아요^^

얄라알라 2023-05-23 09:59   좋아요 2 | URL
은하수님, 초록이들 돌보는 거 좋아하시는 군요?^^ 와, 저도 그래요.

조지 오웰은 조용히 강한 분 같아요 그래서 좋아요^^

자목련 2023-05-22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알라 님 페이퍼 보며 책장에 읽어야 할 조지오웰의 책이 있다는 게 떠오르네요.

얄라알라 2023-05-23 10:01   좋아요 0 | URL
이웃님들 서재 마실다니다 보면
그래서 책욕심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자목련님께서도 또 읽을 거리를 생각하셨네요^^ 즐독하실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행복한 화요일 오전 보내시기를

은오 2023-05-22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에 ”외모가 뭣보다 중하지!“ 하시면서 오웰을 거르셨단 말씀을 읽으니까 갑자기 민음사판 이방인 표지가 떠오릅니다. ”작가 얼굴을 표지에 박으려면 민음사 이방인의 카뮈 정도는 되어야지!“라고 생각해요 저는 ㅋㅋㅋㅋㅋ 정말 손이 가게 만드는 표지 아닌가요?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다는 거 정말 좋지요 ㅠㅠ 그 작가 작품 하나하나 섭렵하고 알아갈 생각 하면 정말 신나고 기쁩니다!!

얄라알라 2023-05-23 10:02   좋아요 0 | URL
네, 은오님.

좋아하는 작가가 생겨야 진정 본격 공부도 시작되는 듯 해요

제 친구는 좋아하는 프랑스 철학자의 원전을 읽기 위해 불어 자격증도 따고 프랑스어와 좌르좌르좌르....

좋아서 하다보니 힘들어하지도 않더라고요^^

기쁨을 공유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여기 이곳 책 좋아하시는 분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