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클래식 클라우드 22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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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작가가 나오면 기대감으로 설렌다. 헤세의 작품은 내가 고교 때 많이 읽었고 지난 4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은 여운이 남아있어서 기대되었다. 정여울 작가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헤세와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느껴졌다. ‘글을 쓸 때마다 매일 조금 더 나은 자신이 되기를 꿈꾸는 글쟁이라는 작가 소개와 이 책의 부제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라는 문장을 보면서 헤세와 그의 작품이 정여울 작가로 이어지는 어떤 영혼의 교류가 느껴졌기에 더욱 궁금했다. 헤세와 함께 걸어온 지난 10년 여정에서 배운 마음의 기록이라고 했다. 저서로는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집 마음의 서재, 심리 치유 에세이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등 다수 있으며 KBS1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을 진행하고 있다.

 

 정여울 작가는 헤세의 생애를 여행자, 방랑자, 안내자, 탐구자, 예술가, 아웃사이더, 구도자로서의 시기와 그 무렵 쓴 작품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오래전에 읽은 싯다르타, 데미안』 『크눌프등의 이야기가 새록새록 떠올랐고 주인공들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누구나 처음 어떤 작가를 만나게 된 계기가 있을 것이다. 정여울 작가는 10대 시절부터 10년을 바쳤던 우정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많은 작품 활동으로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만 같았던 작가가 부모님의 빚을 11년이나 갚았고 박사학위를 땄음에도 교수가 되지 못한 뼈아픈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들었던 시기를 살면서 헤세의 문학에 많은 의지를 했구나 싶었다.

 

 헤세는 자전적인 그의 작품을 통해서 원만한 교유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고 퇴학을 당하는 등 부침이 있던 청소년 시절을 겪었던 과정을 볼 때 자신의 상처와 동일시하며 많은 위안과 치유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만큼 이야기를 풀어내기까지 얼마나 헤세의 작품을 읽고 또 읽었을까. 전에 어떤 책에서 책을 읽는 동안에 아무리 큰 슬픔이라도 치유 받지 못하는 슬픔이란 없다는 말을 접한 적이 있다.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새 살이 올라오는 기쁨을 느꼈다면 정신적 지주처럼 여겨지던 작가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자연스런 수순일 것이다. 길치에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도시도 아닌 시골을 찾아 떠나는 여행임에도,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렸음에도 용기 있게 발을 내딛었던 것은 작품에서 받은 상처의 치유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의 황금으로 풀어가는 수레바퀴 아래서가 인상적이었다. 지난 4월에 읽고 참 마음이 아린 작품이었는데.

 

 ‘내면의 황금이란 이루지 못한 꿈이나 표현하지 못한 감정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정신의 뇌관’(P56)으로 심리학자 로버트 존슨(Rovert A. Johnson)은 각자가 지닌 내면의 황금은 혼자서 다루기에는 너무도 무겁고 힘든 대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다. 현대인이 쉽게 피로와 우울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내면의 황금을 공유할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서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부부에게는 서로가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현대인들이 내면의 황금을 갈고 닦기에는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약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한스를 지켜줄 만한 어른이 없었다. 구둣방 아저씨 클라이크와 신학교 교장 선생이 있었지만. 구둣방 아저씨는 힘이 없었고 교장은 하일너를 친구로 사귀는 것을 싫어해서 만류하지 않았는가. 한스가 기댈만한 지혜로운 교사가 있었거나 부모가 사랑으로 품어 줄 만한 인격의 소유자였다면 하일너에게 자신의 내면의 황금을 몽땅 맡겨 버리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결국 하일너와의 우정도 산산조각 나버리자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하고 급기야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고 만다.

 

 헤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라고 한다. 왜 그렇게 헤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의 작품의 주인공에 대한 대리만족이 아닐까 한다. 일상에 매여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의 방랑자로 순례자로 거리낌 없이 떠나는 여행을 무척 부러워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방랑자로서 작품 크눌프, 페터 카멘친트와 종교적 초월을 꿈꾸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싯다르타, 종교와 예술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험을 그린 나르치스 골드문트순례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여기서 페터 카멘친트는 헤세의 청소년기 체험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흥미진진한 성장소설이며 첫 장편소설로 단번에 독자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헤세의 작품세계는 데미안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데미안탐구자로서 이정표와 같은 셀프를 찾는 에고의 험난한 투쟁을 그린 이야기다. 헤세가 자신의 심리치료 경험을 작품으로 빚어낸 작품으로 싱클레어라는 작중인물 속의 이름으로 펴냈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 카를 구스타프 융이었다고 한다. 정말 오래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으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정여울 작가는 모범생으로 오래 살아왔고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인 줄 알았다고 한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안정적인 사회인이 되면 더 행복해지는 줄 알았는데 서른 즈음에 자기 안에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내면에서 더욱 선명한 셀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 책이 바로 데미안이었다고 한다.

  

 헤세가 작가의 꿈을 키운 독일을 거쳐 궁극의 안식처 스위스까지 정여울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는 여행을 마쳤다. 작가가 헤세의 작품으로부터 무엇을 치유 받았는지 무척 궁금했었다. 사람은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헤세가 분신처럼 들어있는 작품 이야기와 함께 처음 만난 정여울 작가와도 조금은 친숙해진 느낌이다. 앞으로 만날 헤세의 작품과 정여울 작가의 작품이 기대된다. 그래서 마음에 남는 문장들을 모아 보았다.

 

<마음에 남는 문장들>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마음 자세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만의 꿈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그것이 외로울 용기가난할 용기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외로움, 그리고 남다른 꿈을 오직 힘으로 실현하기까지 필연적으로 견뎌야 할 가난, 그 두 가지는 인간이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이기 때문이다.(P13~P14)

 

 때로는 삶이 우리에게 너무도 가혹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지고, 나이 듦이 무작정 두려워지는 순간이 많지만, 나는 헤세로부터 흐르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그 방법은 바로 문학과 예술과 자연을 항상 물처럼 공기처럼 내 곁에 두는 진지하고도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P15)

 

 ‘우리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혼자서도 광야의 벌판에서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헤세는 이렇게 말한다. 용기는 이성을 필요로 하지만, 용기 자체가 이성의 산물은 아니라고, 용기는 이성보다 훨씬 깊은 곳에 우러나오는 것이라고.(P87)

 

 나는 그 훨씬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용기를 기르는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문학과 예술, 철학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라고 믿는다. 문학, 예술, 철학에 관심을 두는 것은 타인의 삶에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만 가능하다. 타인의 삶에 귀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마음의 주파수를 항상 나 자신에게만 맞춰놓는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끊임없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이 바로 삶 속에서 나다움을 찾아가는 길이다.'(P87)

 

 마음 챙김도 오답노트를 닮았다. 나를 진정으로 성장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높은 존재로 이끌어가는 힘은, 오직 내가 나의 그림자와 싸울 때만 나타난다. 나의 상처와 나의 콤플렉스와 나의 트라우마와 싸울 때만 우리는 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P139)

 

 ‘개성화한다는 것은 자신의 블리스가 있는 자리에 자기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피하지 않고, 내 아픔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픔을 똑바로 바라보면 그렇게 아프지 않다. 아픔을 똑바로 보지 않기 때문에 더 아픈 것이다. 아픔을 주시하다 보면 내가 왜 아픈지 깨닫게 되고 두 번째 화살을 막을 용기도 생긴다.’(142)

 

 ‘내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 결국 고통에 빠진 나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는 이야기, 내가 나의 멘토가 되고, 내가 나의 스승이 되어 그 누구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데미안이다.’(P149)

 

 

 이 클래식 클라우드 헤세편을 읽으면서 정여울 작가가 얼마나 분투하면서 살았는지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현실을 사는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 속의 나에게 충실하다보면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지나치게 에고가 팽창된 상태를 에고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단다. 본연의 자신으로- , 개성화하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하는데 -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데 안락한 사회화의 길에 만족해버린다는 거다.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는 그 그림자를 제대로 인식했을 때 자기 인식의 진정한 관문이 열리며, 자신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고 그 핵심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야말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또 블리스(bliss)는 내 안의 진정한 멘토이며 에고의 모든 욕심을 잊게 하고 오직 셀프의 기쁨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많은 상처와 고통을 글로 고백할 때마다 그 상처로부터 해방되었단다. 글쓰기가 주는 치유를 경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헤세의 고향 칼프에 있는 헤세의 동상.

 

 

 오랫동안 헤세의 작품과 함께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 여정을 보낸 정여울 작가와 함께 하면서 헤세의 작품에 한걸음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을 읽을 때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했다. 물론 하나하나의 작품이 저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문학은 독자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작가 자신의 경험과 허구를 조합하여 빚어진 예술품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그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일에 투영하거나 동일시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헤세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나 관심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 또한 정여울 작가가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며 본연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많은 용기와 힘을 얻으리라 생각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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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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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126월에 읽고 두 번째로 읽게 되었다. 당시에도 먹먹한 감동과 함께 이런 일이 같은 인간에 의해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수용소의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나만 힘든 것처럼 여겼던 태도가 부끄럽게 느껴졌었다. 그때 좀 힘든 상황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큰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전에도 이시형 박사의 번역으로 읽었는데 이 책 또한 그분의 번역으로 만나서 반가웠다. 까만 표지에 뚜렷한 금박의 디자인의 대비가 마치 죽음을 뚫고 나온 승리의 월계관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책의 내용은 첫째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둘째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셋째 비극 속에서의 낙관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익명으로 출판하려던 것을 친구의 권고로 초판이 출판되기 직전에 속표지에 이름이 들어감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어떤 명성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어떤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순수한 의도로 나왔고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 힘겨운 상황에 놓였을 때 삶의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1984년판에 부친 서문에 나온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에 따라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P9~P10) 

 

 저자가 평소 학생들에게 자주 해 준 이야기라고 한다. 이 책이 의도치 않게 베스트셀러가 된 데서 얻은 교훈과 연결 지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에서 나오는 역설 의도(paradoxical intention)’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지나친 주의 집중이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만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보다는 그 과정에 충실하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과정을 충실히 즐기다 보면 성공은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1.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수용소에서의 체험 이야기는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이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들고 들어와 그것을 베개 삼아 잠을 잘 잤다는 사람 이야기, 이를 닦을 수 없는 수용소의 규칙 때문에 심각한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잇몸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했다는 사례를 들어 인간이 얼마나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지 이야기한다. 또 죽음으로의 선발을 피해가려고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된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회교도로 취급되어 가스실로 보내지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면도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야 하는 등 최대한 건강하게 보여야 한다. 어디서든 연기가 필요한 걸까,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났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던 장교의 손짓의 의미를 알게 된 이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오고 무감각이라는 감정에 도달한다. 괴롭힘을 당하고 죽어가거나 죽은 것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게 되면서 더 이상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전처럼 다른 감정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우슈비츠에서 바바리아 수용소로 이송되는 도중 찬란한 석양빛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하거나 수용소 안에서 행해지는 예술 행위가 그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유머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건축 공사장에서 일을 빨리하라고 고함을 질러대거나 콩알을 더 먹기 위해서 '밑바닥에서 퍼' 달라는 말을 패러디하는 방식으로 유머를 이야기하며 견디고 있었다. 다른 수용소로 이동해서는 동료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이튿날 아침까지 꽁꽁 언 채 비를 맞으며 서 있어야 했지만 그 수용소에는 굴뚝이 없고 아우슈비츠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행복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렇게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수용소의 일상을 살면서도 삶의 의미를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P110)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느낌이었을 것 같다. 아무리 시련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단련시킨다는 말도 있지만. 수감자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생각이 부유하고 있을까,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물론 저자의 체험이다. 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겨서 극심한 통증을 걸으며 절뚝거리며 걸어간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사정없이 내리치지만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그것을 빵과 바꾸어 먹을까, 끊어진 신발 끈을 대신할 철사를 어디서 구할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수용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는 카포는 없을까, 그 카포와 잘 사귀려면 어떻게 할까. 이런 하찮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 때 빅터 프랭클은 불이 환하게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 강단에 서 있고,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자신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하면서 현실의 상황과 고통을 이기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죽음으로 이어진 사례도 이야기한다.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딜 수 있다.(P123) 

 

 니체의 말이다. 이 말은 비단 수용소의 절체절명의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다가 해방의 자유를 맞이했는데도 환희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는 부분은 정말 안타까웠다. 살아남기 위한 목표 한 가지에 열중하다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천천히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다시 배워야 했다. 또 자유를 얻은 후에도 애타게 만남을 기대하며 상상했던 가족의 상실로 또 한 번 좌절하게 된다. 가족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주었는데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

  

2.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이루어야 할 미래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하며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P163~P164)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P164) 

 

 ‘로고테라피(Logotherapy)’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를 말하며 빈 제3정신 의학파로 부르는 이론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으로,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어떤 가르침도 아니고 설교도 아니며 비유하자면 화가라기보다는 안과 의사가 하는 일에 가깝다고 했다. 화가가 자기 눈에 비친 세상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라면, 안과의사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 주려는 것과 같은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에 의존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인생에 책임감을 갖고 삶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깨는 느낌이다. 유한한 삶을 낭비하지 말고 덤으로 얻은 시간이라 생각하고 지금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로 여겨진다. 살면서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진지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되었다.

  

로고테라피를 활용하여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P166)

 

 이렇게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일을 하거나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련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 도착하고 나서 정신적인 자식같은 원고를 잃는 고통을 당해야 했는데 물려받은 다른 수감자의 외투 속에서 찢어진 히브리 기도책 <셰마 이스라엘(Shema Yisrael)> 한 장을 발견하고 살라는 의미의 신의 계시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것과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또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잘 살아 남았고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했다. 이런 긴장은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3. 비극 속에서의 낙관

 

 이 내용은 19836, 서독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열린 제3회 로고테라피 세계 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쓴 것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의 비극적인 요소는 인간의 삶을 제한 할 수 있는 고통, , 죽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비극을 맞이한 상황에서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가 있다고 인지하는 것을 전제한다. 중요한 것은 낙관적인 생각이 명령이나 지시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을 때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로고테라피가 오늘날 미국 문화가 지니고 있는 건전하지 못한 성향을 근절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오늘날 미국에는 자신의 시련을 자랑스러워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품위 있는 것으로 만들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치유 불가능한 환자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불행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P209) 

 

 에디트 바이스코프 요엘슨은 로고테라피에 대한 희망을 위와 같이 피력했다고 한다. 베트남전 전쟁 포로생활로 엄청난 고문과 지병 등으로 스트레스을 겪었음에도 성장에 도움이 되는 체험이었다는 연구 사례와 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된 제리 롱의 사례를 보더라도 시련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드시 시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이후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히로시마 이후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되었으니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를 맺고 있다. 네 군데나 전전해야 했던 절체절명의 강제 수용소 체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독자가 있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크다고 느꼈던 자신의 고통이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P125)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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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서울대 학생들이 듣는 인기 강의 서가 명강시리즈 중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다양한 매체로 소통하는 과학기술학자다.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이라는 용어가 좀 생소하게 느껴졌다. STS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사회가 과학기술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내용과 방향을 어떻게 바꾸는지 반대로 과학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한다는 것이다.

 

1부 대중문화와 과학의 크로스

2부 세상과 과학의 크로스

3부 인간과 과학의 크로스

4부 인문학과 과학의 크로스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을 통해 나타난 과학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각 장의 주제를 보더라도 과학은 우리와 동떨어지지 않으며 일상의 문화 속 어디에나 스며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전이 된 프랑켄슈타인을 언급하면서 그동안의 과학자의 이미지가 미쳤거나 괴짜로 굳어지게 된 사례를 이야기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의 피조물을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그 피조물로 인해 곤란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 대가로 고통을 당하는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라는 평을 받기도 했으며 차후 과학자의 이미지로 굳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수많은 작품이나 영화에 정형화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 즉 지식을 얻은 후에 어떻게 사용 하였는가 등 인간의 책임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들고 있다.

 

 2부에서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변화되는 사회의 모습을 여러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결과 일어날 수 있는 변화를 보면 그다지 환영할 수만은 없는 것이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사회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세상을 양극화 시킬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세상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자질로 덕()을 내세운다. 반면 100년 후에 나온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는 과학기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서 흥미를 끌었다


 이렇게 유토피아를 향한 작품은 꾸준히 나오는데 1888년 미국에서 출간된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면서에 이르면 이런 시스템이야말로 유토피아가 아닐까 싶었다. 빈부가 없기 때문에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없고 범죄가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런 미래상을 이야기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사람들의 핀잔 속에서 잠에서 깨어나며 소설은 끝난다는 이야기다. 이런 유토피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디스토피아적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고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전체주의와 닮은 모습이라고 했다. 1984, 멋진 신세계에서 이야기하는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하고, 지금껏 어떤 길을 밟아서 여기에 왔는지, 즉 우리의 과거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속한 세상이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통찰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의 풍성한 언어를 지키고 언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3부에서는 과학의 혁명의 시대에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역할과 그에 따른 인간관계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크리스퍼(CRISPR)유전자 가위로 이해하면 되는데 유전자에서 원하는 부분을 잘라낼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병을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를 잘라서 비활성화 하면 그 병의 진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런 기술이 발전하게 된 계기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연구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박테리아는 처음 공격한 바이러스의 DNA조각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똑같은 것이 공격하면 그 바이러스의 DNA조각을 잘라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기술적 방안을 고안해 냈다고 한다.

 

 사이보그 인간과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로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은 좀 두렵기도 했다. 인간과 초지능의 중요한 차이를 말하는 부분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인간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랑, 명예, 우정, 행복 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인간처럼 진화를 거친 것이 아니라 기계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사이보그의 고전이 된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예를 보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살려주고 인간다운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으로 나온다. 4년으로 설정된 수명을 연장하고 싶어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목적 달성을 한 후에는 그냥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려도 되는 것인가, 인간의 이기심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여러 영화 속의 과학과 만나면서 과학을 소재로 한 영화에 관심이 생겼다.

 

 마지막 4부는 인문학 속에 들어있는 과학의 이야기다. 전기, 전차, 활동사진 등이 들어오면서 작품에 많은 소재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무정, 경성 유람기, 술 권하는 사회등 여러 작품이 언급되고 있다. 처음엔 어두운 밤을 밝히는 신기한 것으로 묘사되다가 나중에는 개인과 사회에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나타나며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식민지 일상의 불편함이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묘사된다. 보통 과학은 사실에 근거를 두면서 다소 차가운 느낌이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에도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를 연구한 이야기의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 중에는 사진, 음악, 미술, 공예, 작가 등 거의 대부분이 한 가지 예술에 준 전문가적으로 깊게 몰입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창의적인 과학자일수록 예술을 병행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며 이는 과학이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활동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했다.

 

푸른 구슬이라는 지구의 모습을 담은 사진 <블루 마블>을 보면서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게 했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보면 우주 속에 작은 점 같다는 지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웅다웅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은 나를 둘러싼 조건들을 이해하고, 그런 조건들 속에서, 또 그런 조건들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적극적인 삶을 위해서 필수적인 일이다.’(P345)

 

 문학 작품과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속에 들어 있는 과학이야기를 읽으면서 과학은 결코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장마다 궁금한 내용에 대한 QA가 있는데 마지막에 나온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대중문화로 과학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주의할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영화나 문학에 나오는 내용을 사실이냐 아니냐에 가치를 두는 것보다는 여기서 무엇을 전하려는 것인가, 그 메시지를 파악하며 고민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의 변화가 두렵기도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과학의 연결점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자주 나오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필요한 몫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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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의 말 - 파리에서, 밥을 짓다 글을 지었다
목수정 지음 / 책밥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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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밥상은 유혹하길 거부하는 밥상이었다. 넘치지도 과시하지도 않으며, 흔들림 없이 단정한, 통깨를 뿌리거나 실고추를 얹는 것 같은 사소한 장식도 엄마는 질색하셨다. 그것은 장식도 속임수도 타협도 없이 언제나 본질로만 존재하고자 하셨던 엄마가 지은 세상이었다.

…… 엄마는 실험실의 과학자 같은 진지함으로 요리를 하셨다. …… 엄마는 그 고집스런 정직함을 차곡차곡 음식에 담아 3남매를 키우셨다. 그 어떤 타박도, 별스런 칭찬도 안하시고, 하셔야 할 모든 말씀을 음식에 새겨 우리에게 건네셨다. 그 신념과 정성으로 빚어진 음식들로 나는 자랐다.


외할머니의 밥상은 풍요의 식탁이었다. 단칸방에 사셨던 할머니의 부엌에선 언제나 들판에서 온 상냥한 풍요가 상을 채웠다. 들에서 캐 와 말린 나물들 4~5가지가 들기름 향을 풍기며 옹기종기 놓였고, 도토리를 따서 집에서 쑨 묵, 소쿠리 하나 가득 만들어서 손으로 집어먹던 쑥버무리, 깨강정, 식혜……. 할머니는 음식으로 축제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자연이 주는 것들로 손끝에서 풍요를 지으며 살아가는 할머니는 삶의 기쁨을 만들어주는 선물 같은 존재였고, 할머니를 통해 매일 선물 받는 복된 시간을 누렸다.’(서문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인권, 올바른 정치, 교육 등에 관한 다양한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워낙 유명한 저자임에도 이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만큼 냉철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 그녀가 밥상 이야기를 한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파리지앵으로서 세련되고 분위기 있는 와인이라든가 서양요리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추억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여서 금세 따뜻하게 젖어들었다. 음식으로 축제를 만들었다는 외할머니의 전설 같은 과거사는 안타깝고 잠시 먹먹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토록 굴곡진 삶을 살면서도 어떻게 홀로 6남매를 키우고 시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었을까. 자식들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면서 마음속의 응어리를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안달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포기했던 것일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씩씩하고 유쾌하게, 자식들을 걷어 먹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할머니를 추억하는 부분은 짠한 감동이었다. 또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어머니의 친구 분이 끓여 온 육개장을 처음 먹었던 기억은 훗날 인생의 중요한 아이템이 되는 이야기 등... 먹는 행위란 함께 했던 이들의 사랑을 온 몸과 마음에 아로새기는 일이구나 싶었다.

 

  밥 짓는 냄새가 제일 좋을 때는 몹시 배고플 때 일 것이다. 그때만큼 환상적인 냄새도 없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배고플 때 먹는 밥이고 남이 해주는 밥을 먹을 때가 아닐까. 한 끼 한 끼의 밥이 생명을 지키는 원천임에도 귀찮아질 때가 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밥을 짓고, 식탁보를 깔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가끔 바느질을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길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기고, 김치를 담그는 그 모든 반복적 일들을 일컬어 우린 살림이라고 부른다. 그 살림과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는 남성들의 삶은 균형을 잃고 치우치기 쉽다. 그래서 그들은 도약하기도 쉽지만 추락에도 익숙하다. 세상 대부분의 거부도 그들이지만 대부분의 노숙자들도 그들인 이유다.‘(P86)


‘1차적인 인간의 노동 없이 세상은 결코 형성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 1차 노동이 나로부터 점점 멀어질 때 우린 괴물이 되어갈 거란 걸 직감한다.’(P87)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야지 하다가도 너저분한 것이 눈에 보이면 그것을 제거하려고 달려들다 보면 끝이 없는 게 집안일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있어야 말끔하게 유지되고 평온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림이라는 행위로 반복되는 노동이 우리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노동은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 내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사랑이 아니면. 그래서 여성은 그것과 멀어진 남성에 비해 더 오래 산다는 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살림에서 멀어진 남성들의 삶은 균형을 잃고 치우치기 쉬워서 도약도 쉽지만 추락에도 익숙한, 거부(巨富)도 노숙자도 남자가 많은 이유라고 했다. 이런 거라면 앞으로 나는 더욱 기쁜 마음으로 살림을 할 것이며 상대방에게도 기회를 주어 참여하게 하는 현명한 살림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유쾌한 모색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밥을 먹고 사는 남녀노소라면 모두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365일 집에서 먹는 레알’ ‘삼식이와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조화롭게 분담을 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누리는 분위기가 참 멋져보였다. ‘삼식이라는 이 단어가 나온 배경도 알고 보면, 어느 한쪽에 치우친 희생이 담긴 말이라는 것이다. 365일을 삼식이와 산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에겐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어찌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하고. 요즘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나가지 못하고 주말에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먹고 치우고 나면 또 끼니가 돌아온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굴러가는 가족은 병들고 말 것이며, 가사노동이야말로 인류가 가장 치열하게 싸워왔던 계급투쟁이라고 했다. ‘서로를 베지 않게 두텁고도 보드라운 헝겊으로 둘둘 만 협박의 언어와 함께 적절한 타협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맞다. 그런 걸 조율하는 것이 왠지 유치한 것 같아서 내가 하고 말지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경단녀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는 이 단어가 언론과 공권력에 의해서 계속 사용되는 있는 저의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여성들을 차별하는 이 단어야말로 하루빨리 없어져야 하는 말이라고. 이 경우도 출산과 육아를 위해 홀로 독박을 쓰게 되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닌가. ‘경단녀는 있는데 왜 경단남은 없는 것인지, 부모가 평등하게 육아의 의무를 나눠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100조나 퍼부었다는 저출산 대책이 육아를 어떻게 도왔는지 물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밥상 이야기는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밥상 이야기를 넘어 지인들과 함께 토론했던 밥상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음식 레시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시절 대표적인 채식주의자였으며 동물 애호가이기도 했던 그를 총애하던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가 만들어 대접하던 스파게티를 즐겨했다고 한다. 미지의 대상을 향한 호기심이 대상을 세심하게 살피게 되고, 이해하기 위해 그림으로 옮기고 건강한 식단을 위한 레시피로 발전하고 그것은 걸작<최후의 만찬>에도 리얼하게 묘사되었단다. 그림을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역시 다재다능한 천재 예술가는 그냥 태어나는 게 아니었다. 호기심은 주변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이렇게 한국과 파리를 넘나들며 과거의 밥상 이야기, 현재 우리 식탁은 안전한지 미래의 밥상은 어떠해야 하는지 사회에 대한 냉철하고 따뜻한 시선을 담아 풀어나간다. 간편식의 으뜸인 시리얼이 사람을 어떻게 바뀌게 하는지 위험성을 경고하는 부분은 놀라웠다. 시리얼에 들어있는 곡물들이 글리포세이트라는 제초제에 적셔져 키워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2016년 마리-모니크 로뱅이 자폐 진단을 받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원인을 추적하다가 알아냈다고 한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내 몸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었다. 내가 먹는 것이 를 이룬다는 말이다. 먹거리가 넘치는 풍요 속에서도 인간은 온갖 병으로 죽어가는 세상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인간의 생명을 앗아 갔는지 역사 속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글로벌 세상은 초유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쟁을 치루는 중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로지 고속 성장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모든 것을 장악하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고. 이제는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 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것은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최대한 부딪히지 않고 이동하는 것”(P246. 조르주 페렉(프랑스 작가, 1936~1982)


  ‘최대한 부딪히지 않고 이동하는 것’, 이라는 말에 왠지 아슬아슬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이따금 밥 짓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다. 저자는 이것에서 벗어나려면 먹을 사람이 없어져야 끝나는 일이라고 했다. 거의 모든 노동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인데 밥을 짓는 일은 끝이 없다고. 먹을 사람이 없어져야 끝나는 거라고.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 웃음으로 공감했다. 살아있기 때문에 모든 고통이 있는 거라고 하듯이 밥 짓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세상의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가족의 따뜻한 밥상 이야기로 시작하여 이제는 하나뿐인 지구에 남긴 멍들을 보듬을 때라는 묵직한 과제를 제시하며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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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철학이야기 -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강성률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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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에 읽었던 철학 관련 책과 달리 표지부터 흥미를 끌었다. 흔히 철학은 어렵다는 고정관념과 함께 우리에게 비춰졌던 철학자들의 이미지, 사상과 명제를 설명하는 식의 딱딱한 철학 관련 책도 철학과 친해지는 기회를 방해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야기의 내용을 상기시켜주는 그림이 삽입되어 있고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주석을 해당 페이지에 실어 놓아서 참고하기에도 편했다. 보통 주석이 맨 끝에 놓이는 것을 생각할 때 앞뒤로 왔다 갔다 하다보면 독서의 흐름이 끊기기도 하는 등 맥을 놓치기도 하는데 이런 점을 보완해 주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저자는 현재 1988년부터 광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교내외에서도 다양한 역할과 학회활동을 펼쳐오면서 칸트철학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2500년간의 고독과 자유,청소년을 위한 동양철학사,칸트, 근세 철학을 완성하다, 장편소설땅콩집 이야기7080등 다수 있다. 거꾸로 읽는 철학 이야기는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철학과 근엄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철학자들의 이미지를 거꾸로뒤집어 보고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서 다른 사고로 바라보는 지평을 열기 위해서 썼다고 한다. 저자의 말대로 성인을 대상으로 집필되었지만, 삽입된 그림으로 흥미와 호기심을 갖게 하고 핵심 단어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서 청소년 이상이라면 무난히 소화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동서양의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들어있는데, 우리의 신라, 조선시대를 살았던 유명한 선비들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야기의 구성은 1. 명언에 대한 뒷담화(?) 2. 황당한 궤변 시리즈 3. 출생의 비밀 4.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 5. 모범생과 문제아 6. 금수저와 흙수저 여섯 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철학자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상기시켜주는 것이 명언이 아닐까 싶다. 또한 황당하지만 들어보면 거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그럴듯한 궤변, 출생하고 성장하기까지의 배경은 철학자이기 전에 한 인간이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저명한 철학자의 이야기라면 더욱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많이 알려진 노자나 공자, 맹자 등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서양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그들의 내밀한 성장 배경을 알게 되어서 흥미로웠다. 이 덕분에 고정관념으로 자리한 그들의 철학 사상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1장 명언에 대한 뒷담화(?)

  수없이 인용되는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델포이 신전 현관 기둥에 쓰여 있는 말이라고 한다. ‘gnoth seauton’, 원래는 너를 알다라고 하는 평어체인데 나중에 너를 알라라는 명령체로 바뀌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40세 무렵에 그의 친구이며 제자였던 카이레폰이 델포이 신전에 가서 아폴로 신에게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도 현명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신탁을 듣는다. 정작 소크라테스는 그 새겨진 글을 외고 다니며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철학의 시작이라는 것, 그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존재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 악법도 법이다는 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해석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당시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정치적인 면과 상당 부분 맞물려 있던 것을 생각할 때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맺어져 이들 도시국가들이 30년 동안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스파르타가 승리하게 된다. 아테네에는 스파르타식의 귀족정치와 과두정치가 세워졌는데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 귀족주의적 정파에 이념적 무기를 제공하고 있었던 바, 또 한 차례의 정부 전복에 의해 민주주의자들이 권좌에 올라서게 됨으로써 누명을 쓰고 고소를 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죽마고우였던 크리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탈출을 권했지만 자신은 아테네 시민으로서 특권과 자유를 누려왔는데 그 법이 자신에게 불리해졌다고 해서 그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비겁하지 않은가, 하며 단호히 거절했다는 데서 악법도 법이다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라고 한다.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철학자의 명언이 재해석되는 느낌이다. 이밖에도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 정신적인 사랑을 고귀하게 표현하는 플라토닉 러브는 플라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재미있는 뒷담화도 들려준다.

 

2. 황당한 궤변 시리즈

  많이 들어본 유명한 궤변 중의 하나가 황희 정승의 두 계집종의 다툼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누구를 콕 찍어서 잘못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며 양쪽이 다 옳다고 했던 이야기를 그저 재미있게만 느꼈었다. 3자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유연하고 관대한 판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억울한 쪽은 있기 마련이다. 결국 황희 정승의 양시론(兩是論)’적 발언은 어느 한쪽에 자신이 부정적으로 남지 않으려는 처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궤변이 한 사람의 금전상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까. ‘궤변(詭辯)’이란 말 자체가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이리저리 따져서 말하는 모습을 담은 글자라고 한다.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며 인간의 감각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감각에 의존하는 모든 지식이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진리는 객관적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우리들 주관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고 더 나아가 소피스트 고르기아스에 이르면 유용한 변론이란 객관적 진리를 논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누구나 그렇게 믿도록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역시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언어유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허무맹랑한 말솜씨로 장난을 치는 느낌 또한 떨칠 수 없지만 궤변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3.출생의 비밀

  이 장에서는 키르케고르의 이야기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집에 태어났지만 그의 어머니 안네는 그 집의 하녀였고 전처가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버지는 안네를 강간하여 임신케 하였고 당시 교리에 금지되어 있는 재혼을 감행했다는 사실. 원래 양심적이고 종교적이었던 그 아버지는 이 사실을 두고 평생 괴로워했다고 하는데. 그런 인물이라면 좀 더 나은 방법을 썼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이 사실을 키르케고르는 스물두 살에 알게 되는데 그에게는 대지진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었다. 어려서부터 신체도 허약했고 열일곱 살에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신학과에 입학하지만 문학과 철학 쪽으로 관심이 기울어지고 방탕한 생활이 이어진다.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그런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23세에는 자살미수 소동까지 벌어진다. 그의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부분이다. 부침 있는 그의 삶은 18551020순간10호를 준비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마흔 두 살의 짧은 생을 마치게 된다. 또 병실에 누워있을 때 불화로 끊고 살았던 목사 형이 찾아왔는데 끝내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종합해 보면 자녀를 둔 부모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자녀에게 있어 부모의 위치란 얼마나 중요한지, 인간이란 강한 것 같으면서도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런 면을 보면 강하고 근엄할 것 같은 철학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인간이란 누구나 똑같은 존재라는 측은지심이 느껴진다.

 

4.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

  여기서는 아버지의 선한 영향력과 나쁜 영향력, 어머니의 선한 영향력과 부재에 따른 영향력을 이야기한다. 증자와 파스칼, , 키르케고르, 사르트르 마하비라, 맹자, 구라마습, 이이, 아우구스티누스 등 많은 철학자가 여기에 속한다. 성장하는 배경을 다루는 데서는 몇 명의 철학자는 겹치는 부분도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의 아버지는 해군 장교였고 어머니는 슈바이처의 사촌으로 자존심이 무척 강한 여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르트르가 두 살 때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얻은 후유증으로 죽어서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부터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아버지 없는 어린 시절이 오히려 축복이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좋은 아버지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나의 아버지가 오래 살았다면, 그는 나의 머리 위해 군림하며 나를 억압하고 있었으리라나는 내 위의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P115)

 

  어째서 그랬을까. 아마도 대단한 독서가였던 외할아버지의 사랑과 문학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또 하나는 어머니가 재혼하게 되어 의붓아버지 밑에서 살아야 했는데 그의 생애 중 가장 불행한 3~4이었다고 한다. 특별히 구박이나 미움을 받지는 않았지만 눈치를 보게 되는 분위기와 환경이 자유를 향한 욕구가 더 커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버지라는 존재를 모르다가 의붓아버지가 나타나자 낯설게 느껴지고 불편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아버지 없는 자유를 누구보다 더 누렸을 법하지만, 유난히 자유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는 걸 보면 감수성 있고 예민했던 그의 정신을 오래도록 지배했던 힘든 부분이 아니었을까 짐작케 했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개성과 특성이 존재하는 걸 보면 이해 못할 부분도 아닌 것 같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어머니의 선한 영향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야기다. 선한 영향력은커녕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66년 동안의 삶이 방황의 연속이었던 루소의 삶도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교육론을 이야기한 그의 작품 에밀을 한동안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읽은 적이 있었다.에밀에밀이란 이름의 고아가 태어나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25년 동안 현명한 교사의 이상적인 지도를 받는 과정을 그렸다고 한다. 루소의 성장 배경을 전혀 모르고 읽었다. 보통 고전이라면 작가의 유명세와 긍정적인 끌림으로 읽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적으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이 거꾸로읽는 방법을 착안해 낸 저자의 책이 더욱 유용하게 다가왔다.

 

  그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버린다.(나중에 다른 책에서도 접하게 되었다.) 16세 때는 집사로 일하면서 그 집의 남작부인과 연인사이로 발전하거나 매춘부와 난잡스런 관계를 맺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며 혼란스런 삶을 살았다. 가난한 시계공 이었던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과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출산 후유증으로 죽은 어머니에 대해 많은 자책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그러한 마음이 역설적으로 반영되어 에밀이란 작품을 쓴 것은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며 자랐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정신적 반항으로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리는 기행을 벌이고 정상적인 사랑을 통해 가정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을 논하면서 남의 잘못을 보면 그러지 말아야지 뉘우치며,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나약한 인간의 삶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5.모범생과 문제아

  모범생으로 간주할 수 있는 철학자로는 공자, 주자, 헤겔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문제아였던 철학자들에게 관심이 쏠린다. 문제아였음에도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는가가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안셀무스, 마르크스, 니체, 야스퍼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중 야스퍼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하이데거와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불리는 야스퍼스는 독일의 작은 도시 올덴부르크에서 부유하고 자애로운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는데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너무 약하여 부모의 병간호를 받아야 했다는 점이다. 심한 천식에 시달리고 피부병을 앓기도 했으며 모범이 될 만한 영재는 결코 아니었다고 한다. 또 김나지움 시절에는, 신분이나 계급 등의 외적인 것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을 용인할 수 없으며, 음주 등으로 소란을 피우는 것 역시 저속하며, 거창한 의식이 싫다는 이유로 어느 조직에도 가담하지 않고 고립을 자처했기에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어떤 조직에 속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에 어려움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아마도 자신의 병약함이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에 가장 커다란 불편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런 그에게 김나지움 졸업은 해방감을 느끼게 했는데, 건강상의 문제는 항상 따라다녀서 열여덟 살에는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한다. 그는 동기생인 에른스트 마이어의 누이를 만나 삶의 의욕을 느끼면서 바뀌어간다. 결혼을 하고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평생 동안 실천하면서 여든 여섯 살의 장수를 누렸다고 한다. 당시의 의학 수준과 다른 철학자들의 짧은 삶을 비교해 볼 때 대단한 일이다.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노력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취로 보인다.

 

6.금수저와 흙수저

  왕족 출신의 철학자로 의천, 석가모니, 구마라습, 아우렐리우스를 명문귀족 출신으로 플라톤, 베이컨, 러셀, 완적을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아리스토텔레스, 포이어바흐, 비트겐스타인 등, 선비나 하급관리 집안 출신, 가난한 집안 출신부터 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던 사상, 철학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조선 정조의 문신이자 실학자, 저술가, 시인, 철학자, 과학자, 공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많은 사람들이 흠모해 마지않는 위인 중의 하나이다. 유배지에서 가족의 안녕을 걱정했으며 나라의 위안을 걱정하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누님의 남편인 이승훈과 학문적으로 명성이 높은 이가환을 만났는데 이승훈은 조선에서 최초로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인물이고,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이자 성호 이익의 종손이었다. 정약용은 이들을 통해 성호의 학문을 접하고 실학사상의 토대를 다졌다고 한다.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였지만 신해박해 당시 조상의 제사를 허락하지 않는 교황의 교서가 내려지자, 대부분의 양반 신자들과 함께 배교했다고 한다. 또한 교우를 고발하고 도망간 신자를 붙잡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며 수사에 협조했다고 한다. 매부 이승훈은 천 사람을 죽여도 정약용을 죽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자신이 정약용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자백할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이 일에 대해 참회했다는 내용도 있는 걸 보면 없는 일은 아닌가 보다. 그동안 알고 있던 실학자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 맞아? 하고 반문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고고한 철학자들도 한 가지 흠결도 없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고 보면 남보다는 내가 살아야 했을 것이고 보살펴야 할 가족을 생각했을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의 감추고 싶었던 비밀 이야기를 알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왠지 전보다 인간적인 면이 느껴져서 더 친숙해진 느낌도 들었다. 위대한 사상과 명제를 낸 철학자들도 알고 보면 우리와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그 공감대만으로도 충분했다. 환경은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환경을 떨쳐내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짊어진 현인들도 있었고 역경을 이겨내고 훌륭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도 있었다. 어쨌든 모두 주어진 상황에서 치열하게 살아서 자신들의 언어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분명하다. ‘거꾸로보는 방법으로 동서양의 여러 철학자의 이야기를 제공해 준 저자 덕분에 철학은 어렵다는 편견과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알고 보면 재미있고 우리의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높여줄 수 있는 철학에 많은 독자들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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