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월기
나카지마 아쓰시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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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월기>는 당나라의 기담 <인호전人虎傳>의 제재를 모티브로 작품이 된 것이다. 나카지마 아쓰시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며, 일본 교과서에 1951년 처음으로 게재되면서 그 후로 60년이 넘도록 수록된 국민작품이다. 짧은 글 속에 섬뜩한 교훈을 주는 강렬함이 매력이다. 아무리 타고난 수재일지라도 자신이 가진 재능을 갈고 닦는 노력이 없으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즉 호랑이가 되고 만다는.


 이야기의 대략은 이렇다. 당 현종 때의 이징(李徵)은 박학다식에 출중한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젊은 나이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오늘날의 경찰 및 군사 담당 관리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비해 천한 직위를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곧 관직에서 물러난다. 고향에 머물면서 남들과 교제도 모두 끊고 오로지 시작(詩作)에 몰두한다. 시인으로서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고자.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며 생활은 점차 궁핍해지고 초조해진다. 그 무렵부터 얼굴은 험상궂어지고 피골이 상접하여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곤궁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느 지방의 관리직을 얻었는데,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상태로 그 일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없었음은 당연하다. 1년 후 어느 날, 결국 발광하여 호랑이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진사에 급제했던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원참이 감찰어사직을 수행하러 길을 떠나는 중에 우연히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지난날을 하소연하게 된다.


 예전에는 어째서 호랑이가 되었을까 괴이하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왜 이전에 인간이었던가 생각을 하게 된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p11)


 인간이었을 때, 나는 애써 남들과의 교제를 피했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다, 거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중략)나는 시로써 이름을 떨치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거나 기꺼이 시우(詩友)와 어울리며 절차탁마를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 모두가 나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이었다.(p16)


 호랑이의 모습을 한 이징은, 굶어죽을 지도 모를 처자보다도 자신의 보잘것없는 시 따위를 먼저 염려한 남자이니 이런 짐승의 몸으로 전락한 것이라며 통곡한다. 우리는 살면서 남과 비교하며 저울질 한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보다 못했던(자신의 생각에) 사람이 어느 날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한다. 인생, 생각에 따라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 하루하루 보낸 날이 모여서 ‘내’가 되는 것이니.


<이릉>은 한나라의 장수 이릉과 그를 두둔했다가 궁형을 받은 <사기>의 저자 사마천, 그리고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고난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19년 만에 돌아온 소무라는 세 인물의 삶을 보여 준다. 흉노족에 패하여 항복한 이릉은 분노로 평생을 살고 사마천은 쉰이 다 된 나이에 그런 치욕을 당했는데도 마음을 다잡아 서사의 편찬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다시 붓을 들었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은 다르다. 어떤 것이 옳다고, 이것이 정답이니까 그대로 따르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 우리는 이야기, 즉 문학을 통해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본다. 그리고 나아갈 길을 찾는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절대적인 힘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제자>는 공자의 수제자인 자로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밤에 “봉황도 나오지 않고 황하는 그림도 내지 않도다.(성왕이 출현한다는 말을 인용한 것임) 나도 끝이런가” 라고 혼잣말로 공자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을 때, 자로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공자가 한탄한 것은 천하의 백성을 위한 것이었지만, 자로가 운 것은 천하를 위함이 아니라 공자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p97)


 여기서 자로는 결심한다. 탁세의 모든 침해로부터 이 사람을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을.(p98)공자의 제자 중 자로만큼 스승에게 많이 혼나고 거침없이 반문한 자도 없었다고 한다. 긴 방랑과 고난을 함께 했고 맡은 일에 최후까지 열정을 다하고 산화한 인물이다. 사제간의 정, 그 뜨거움이 마음에 감동으로 일렁였다.


<순사가 있는 풍경>-1923년의 한 스케치


 조선인 순사 조교영의 눈에 비친 풍경이다.

전차 안에서 일본 중학생이 운전수와 순사를 깔보고 무시한다. 일본인 부인과 조선인이 싸운다. 친일 조선인의 연설을 듣고 일본 청년이 욕을 한다. 일본 신사의 정중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우쭐해하는 조선인 순사가 있다. 강우규 의사의 사이토 총독에 대한 의거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 관동대지진(1923년 9월 1일)의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창녀의 목소리. 새로 부임한 일본인 교장이 종순의 덕을 말하는 장면(일본에 있을 때는 독립자존의 정신을 말하던)이 나온다.


 1923년. 겨울은 더럽게 얼어 있었다.

모든 것이 더러웠다. 그리고 더러운 채로 얼어붙었다. 특히 S문(서대문)밖의 골목에서는 더욱 심했다. 중국인의 아편과 마늘 냄새, 조선인의 싸구려 담배와 고추가 섞인 냄새, 으깨진 빈대와 이의 사체 냄새, 길거리에 버려진 돼지 내장과 고양이 가죽 냄새, 그것들이 그 냄새를 보존한 채 길 위에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다.(p240)


보통학교의 일본역사 시간, 다소 당혹스런 표정의 교사가 있다.

“이리하여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쳐들어갔던 것입니다.”(p242)


마치 딴 나라 이야기인가 하는 아이들의 둔한 반응.

“그리하여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쳐들어갔던 것입니다.”(p242)


 마지막 장면은 순사 조교영이 식산은행 옆에서 ‘돌맹이’처럼 자고 있는 지게꾼들을 깨우며 한탄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너는, 너희는.”

돌연 무언가 알 수 없는 격한 감정이 그의 안에서 끓어올랐다. 그는 한 번 몸을 떨고, 그들의 누더기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고 울기 시작했다.

“너희는, 너희는. 이 반도는... 이 민족은...”(p250)


 정말 더러웠다. 더러워진 채로 얼어버린 겨울 풍경. 지금의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득함.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일본인 작가의 눈에 비친 비참한 조선의 현실과 일본제국주의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작품의 성격상 일본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남겨진 그의 작품은 더욱 더 읽어볼 의무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나카지마는 일본에서 제2의 아쿠타가와로 불린다. 우리나라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이 뒤늦게라도 문예출판사를 통해 나온 점, 내가 이 작품을 만난 것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문예출판사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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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신화
한승원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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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작가들의 스승이자 한국 문단의 거목인 한승원 작가의 50년 작품 활동 중에서 직접 가려 뽑은 중․단편의 소설들이 <야만과 신화>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바다(그것이 실제의 바다가 되었건, 여성으로 상징화된 바다가 되었건, 화엄의 바다가 되었건)’를 떠난 적이 없다. ‘신화’와 ‘역사’와 ‘여성성’을 ㅁㅊ떠난 적도 없다. 그는 줄곧 이 주제들을 깊이 파고 넓게 확대하고 달리 재해석하면서, 자신만의 광대한 소설 세계를 구축해온 예외적인 작가다.(p558)라고 말하고 있다.


 단편 <어머니>는 1974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바리데기 설화’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 감옥에 있는 막동이에게 면회를 가기 위해 늙은 노구에 천식을 달고 사는 어머니가 미역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윗마을로 향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젠 ‘면’자만 들먹여도 큰아들 일현은 눈살을 으등카리같이 싸짊어지고 “그놈으 반디 그만저만 댕기씨요. 그라다가 길바닥에서 죽으면 어짜실라우” 하면서 휙 돌아앉아 곰방대에 써레기나 쑤셔 넣곤 하였고, 며느리란 년은 궁상스럽게 축 처진 볼을 흐물거리며 이쪽의 늙은 마음을 위로해준답시고 “아제도 아제제마는 어마니가 살어사 안 쓰겄소?” 할 뿐, 노비를 주는 것은 고사하고, 그것 마련할 걱정 같은 것을 손톱만큼이라도 내비칠 엄두마저 내지 않는 것이니 어이할 것인가. 개잡놈 같으니라고, 주둥이에 퍼 넣을 술 한잔 값 아끼고, 노름판엘 한 번만 안 가면 그만한 돈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 아닌가.(p64)


 여기를 읽다가 웃기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에 물기가 어린다. 옛날 어릴적 풍경이 생각났다. 옛날 할머니들은 걸지게 욕도 잘했다. 가난에 절고 절어 힘든 나날을 욕으로 풀었던 것일까... 어머니는 큰 아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널빤지 위에서 올골골 떨고 있는 막동이’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부모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고생하고 있는 막동이가 더 눈에 밟혔을 것이다. 형제들이야 부모 곁을 떠나면 제각각 사느라 바빠서 반은 남이 되는 것이나 진 배 없고...

쌀말 값이라도 얻으려고 큰 아들 일현이, 작은 아들 이현이, 바라대기 딸네 집으로 순례를 하는 것이다. 목수노릇을 하는 둘째도 겨울이라 일이 없어서 봄 해가 길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에라, 내가 독살스럽고 모진 년이구나, 시상에 즈그들이 나이 서른을 넘었닥 해도, 남 모양으로 출중나게 배우기를 했는가, (중략) 그 위에 못된 창아지가 더 독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내가 모진 년이다. 내가 독사다’(p68)


 그걸 마련 못해주겠다고 앙탈을 하는 자식들의 소행이 못내 섭섭하고 노여워, 늙은 어머니는 그 저수지 둑 밑에 주저앉아 다리를 죽 뻑도 통곡이라도 해버렸으면 시원할 것 같은 심사를 억누르고, 부지런히 활갯짓을 하면서 오른손에 든 지팡이를 옮겨놓았다.(p82)


 다행인지 딸네 집에 가서 그나마 착하고 곰살맞은 사위 덕에 돈푼도 얻어오고 애를 가져 배부른 딸이 미역을 얻어 김으로 다 바꾸어다 준 덕분에 바리바리 이고 지고 막동이를 만나러 간다. 이제 스무 살 밖에 안 된 그 보름달 같이 하얗고 예쁘던 딸. 야위고 거칠어진 딸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프지만, 그래도 차디찬 곳에서 떨고 있는 막동이보다는 낫지 않느냐 하는 마음으로 딸의 도움을 뿌리치지 못한다. 보성으로 향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쇠고기국을 끓이고 따뜻한 우유를 사서 식을까봐 당신의 가슴속에 품고 부르기를 기다린다. 제일먼저 접수했는데, 열두 명이나 부르도록 막동이는 보이지 않는다. 애가 닳고 닳아 있는데, 그제야 면회자를 찾는다. “목포로 갔단 말이오, 어제. 빨리 그리로 가보시오” 하는 퉁명스런 대답만...


어머니는 “어따 어메, 어째사 쓸꼬!” 탄식하며 쿨룩 쿠울룩 터져나오는 기침에 주저앉고...우유병 하나가 떨어져 박살이 난다.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낙지같은 여자>는 로렐라이 전설 설화를 차용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나’의 집에 아기업개로 들어와 살던 이름은 순한녜. 힘이 센 그녀는 두 살 먹은 동생을 등에 업은 채로 거의 모든 놀이 상대가 되어 주었다. 멱감는 것을 좋아하고 팔과 다리가 길고 키도 후리후리한 얼굴도 예쁜 그녀다. 그녀의 오빠는 ‘나’의 큰집에서 머슴살이를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해녀라고 했고 아버지는 상 장수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중학교 생물 선생이 되고 바쁘고 지친 삶을 풀기 위해 술꾼이 되었고 어린 시절의 낙지같은 여자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은 씻은 듯이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런데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다가, 친구로부터 우연히 알게 되는 사실...


“가끔 말이시잉, 배를 타고 지내가면 배를 대라고 손을 이렇게 까부른닥 하드란께.”

“분명히 귀신이 들리기는 들린 모양인 것이 말이시, 순한녜가 손짓하는 데로 배를 댄 남자치고 썽썽하게 남어난 사람이 없다네. 참말로 도리섬에 배를 대고 그렇게 된 것인지 어쩐 것인지 알 수는 없제마는, 모두가 그런 소리를 해쌓대.(p251)


"또 묘한 것은 말이시, 그 여자가 시방 서른다섯 살인가 여섯 살인가 될 것인디, 가까운 디서 똑똑히 봤다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시방도 영락없이 처녀 같닥 하드란께.(중략)그러고 나도 금년 봄에 그물을 보러 갔다가 옴스롱 한번 봤는데 말이시, 이 예펜네가 바위 앞에서 따뜻한 볕을 받고 앉어 있데. 껌정 치마 하나만 허리에다 두르고, 위통을 활랑 벗고 말이시. 머리를 빗고 있등만. 참으로 이상스럽단 말이시. (중략)그런디 이 여자 살결은 꼭 백새 한가지여.(중략) 그 놈의 머리는 어찌께나 길다란지, 아마 거짓말을 보태면 한 발은 되겄데.“(p253)


그리고 마을에서는 순한녜를 도리섬에서 쫓아내자고 했다고. ‘나’는 순한녜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약을 사가지고 도리섬으로 들어간다.


“뭣 하러 왔소? 죽일라면 얼릉 죽이씨요. 당신네 성은 술만 묵으면 칼로 찔러 죽일란다고 쫓아댕겼제, 당신은 내 팔자 망쳐놓기만 하고 한 번도 집에 얼씬을 안 해뿌렀제, 당신 어메 아부지는 애기 띠어뿔자고 독한 약이라고 생긴 것은 죄다 쓸어다 먹였제,(중략) 당신네 식구들은 모다 내 웬수여라우, 뭣 하러 왔소? 나 미쳤다는 소리 들은께 춤추겄습디여?(p261)


"낳아논께 낯바닥은 흰떡같이 이쁩디다마는, 병신이었어라우, 열 살이 넘도록 번듯이 눠서 일어나 앉을 줄도 모르고, 누운 채로 똥오줌 퍼싸고,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어메가 누군지도 모르고...“(p216~262)


"그래서 별수 없이 쥐약을 사다가 멕였지라우.“(p262)


순간, 그녀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두 다리로 내 아랫도리를 휘감아버렸다.

우리는 물속 깉이 가라앉아 들어갔다.(중략) 나는 거대한 낙지한테 휘감겨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 마리의 문저리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는 오지 마씨요잉... 그때는 이 섬에서 한 발도 못 걸어 나가고 죽을 것인께.”(p265)


 자신이 저지른 죄를 없앨 수가 있을까. 그것을 없애려고 여자를 죽이려고 한 밤중에 도리섬을 찾아간 사람. 자식을 죽이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어 광기에 빠진 여자. 인간의 쾌락과 도덕성은 어디까지여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참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다른 책도 그렇겠지만... 실제로 보여주는 듯 한 소설적 묘사의 진수를 보고 구수한 지방 사투리 속에서 촌민들의 삶 속을 엿볼 수 있었다. 해방 전후 시대에 살았던 민중들의 삶의 궁핍함, 동족끼리 피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의 안타까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신화’적 배경이 들어있는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등 배경지식을 넓힌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삶에 지치고 울적할 때 한 권의 소설 속에 빠져 보자.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 책은 위즈덤 하우스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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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나 부인과 두더지 손님
에르네스토 페레로 지음, 파올라 마스트로콜라 그림, 김현주 옮김 / 재승출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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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리나 부인은 이탈리아의 명문가 메디치 가문 출신이었고, 학창시절 도시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한 재원이었다. 부인이 이곳 롬바르디아 지방 산동네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에 과부가 되면서부터였다.

퀴리나 부인의 정원에는 로즈마리와 세이지, 차이브, 바질, 토마토, 치커리밭, 호박이 주렁주렁 열린 밭도 있었다. 잔디밭에는 커다란 수국, 모란, 백일초 한 다발이 앤티크 장미들과 거의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며 펼쳐져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조화로웠다. 이 세상의 모든 가정과 단체에서 본받아야 할 만한 완벽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대문만 닫으면 혼란한 세상과 차단되는 공간. 정기 구독한 신문으로 매일 일어나는 재해와 폭력, 불행한 사건을 담고 있는 세상을 알 수 있었다.


잔디밭 한가운데에는 안네타 대고모님이 심은 최소한 백 년이 넘는 늙은 배나무가 있었다. 배들은 해마다 열매를 맺었고 근처 수녀들이 주워다가 잼을 만들어 구호소 수용자들에 제공하곤 했다. 이렇게 부인은 정원을 가꾸고 정리하며 그 반듯한 질서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곤 했다. 부인은 외로움도 별로 느끼지 않았으며, 혼자 지낼 수 있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다. 건강상태도 최고였다. 스스로도 완벽하게 만족할 만큼. 자신은 농부들이 좋아하는 소 품종인 ‘브루나 알피나(Bruna alpina)'에 속한다며 으스댔다. 브루나 알피나는 16세기 이탈리아에 서식하던 힘 좋고 수명도 길고 젖도 많이 나오는 암소 품종이다.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자신의 규칙에 따라 정원을 다스리는 한 죽음 따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오직 눈부신 5월의 아침 풍경만 가득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아침, 부인의 고요한 규칙을 깨는 풍경이 있었으니.

부드럽고 푹신한 잔디 양탄자를 밟으며 걷다가 풀밭을 지나왔을 때 화가 치밀고 증오심이 끓어올라 참을 수 없어 폭발하는 듯 했다.

땅이 파헤쳐져 원뿔 모양으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퀴리나 부인의 비명은 30미터나 떨어진 식료품점까지 들렸고, 이에 위풍당당하고 친절한 안토니에타 부인이 달려왔다. 일명 ‘숭고 부인’이라고 불렸다.


퀴리나 부인의 백과사전에는

‘모든 두더지가 낮이든 밤이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언제나 생기 있고 아주 활동적이다. 대부분의 두더지가 행동이 민첩하여 땅속에 굴을 파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일부 수중생활을 하는 습성이 있는 두더지들은 수영도 매우 잘한다’고.

딸인 마리아 피에라도 밤새 인터넷을 뒤져서 조사를 했다. 두더지들은 서로의 땅굴이 연결되도록 파고 악명 높은 원뿔 모양 흙더미는 땅굴 보수작업이 남았을 때 쌓아두는 것이었다. 이 흙더미로 땅굴을 깨끗하게 유지한다고 한다. 흙을 파다가 식물의 뿌리를 손상시키기도 하지만 먹지 않는다. 두더지들의 움직임이 빠른 것은 매일 자기들의 체중과 비례하는 영양분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즉 땅굴 파기는 먹이를 찾기 위한 활동이라고.

또 두더지가 외롭게 산다고 했다. 짝짓기를 하면 평균 세 마리에서 다섯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고 젖을 떼고 나면 되도록 빨리 바깥세상으로 내보낸다. 그렇게 새끼를 떠나보내고 혼자 살면서 자신의 영역을 맹렬하게 지킨다.

퀴리나 부인은 불쾌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두더지가 조금 지나치게 영리하고, 모범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새끼를 망치는 어미가 절대 없다.


“글쎄요. 두더지가 부모들은 못하는 걸 하더라고요. 요즘은 부모가 항상 대기하고 있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소셜네트워크 같은 것에 빠져 바보가 되게 만들기도 하죠. 아이들을 방치해두면 그렇게 점점 덜 스마트해지고 있어요. 이게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죠.”(p51)

“먹이 사냥이 너무 바빠서 서로 갈등이나 싸움을 만들지도 않아요. 요즘은 이런 것을 두고 자원의 최적화라고 부르죠.”(p52)

퀴리나 부인은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주고받는 것이 균형을 이룬다면 고독한 삶이 공생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일찍이 에피쿠로스도 숨어서 살라고 당부했었다. 시인들이 침입자 편에 서 있다는 것도 부인의 마음을 거슬렸다.


숭고 부인의 권유로 처음으로 통마늘로 두더지 퇴치를 시도한다.

두 번째는 땅굴 입구 근처에 병을 꽂고 그 위에 금속 막대를 올려놓는 것이었다. 바람이 불 때 부딪히는 진동으로 쫓아내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땅굴 입구에 호스를 끼워 넣고 하룻밤 동안 수도꼭지를 열어 놓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방법이다. 또 야생 고양이를 동원하고, 다음엔 금속 파이프. 모두 실패.

다음은 덫이다. 딸과 사위가 덫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여 최대한 부드러운 덫을 구입 했다. 숭고 부인과 함께 덫을 설치하고 두더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미운 적을 막상 마주할 준비가 안 됐는데... 드디어 적이 나왔다. 두더지는 파헤친 흙에 앞발을 올려놓고 미동도 하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부인쪽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브루나 알피나 암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려고 지팡이를 잡았는데도 두더지는 꼼짝을 하지 않는다. 마주한 두더지의 눈에서 왜 체키나의 눈이 보이는가. 체키나는 전쟁중에 부인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굶어죽지 않게 매일 알을 하나씩 낳아 준 암탉이다.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너희 언니’이며 가족처럼 지냈던.

퀴리나 부인이 지팡이를 들어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다가, 잠시 풀밭에 내려놓고 다시 돌아봤을 때는 두더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모두 패배로 끝났다.

이제 두더지와의 전쟁은 그만 두고 싶었다. 자신과 두더지가 공통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친구인 아델라이데에게 고백한다. 동료처럼 지내고 있으며, 애완동물이나 다름없지만 매일 먹이를 챙겨줄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그 후 문득 두더지가 부인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바로 ‘경쟁상대’였다.

“우리의 인생에는 경쟁상대가 필요해요. 그래야 제자리에 멈춰 서지 않고 해이해지지도 않죠.”

성탄절을 앞둔 퀴리나 부인의 생일에 손자들로부터 두더지 박제 인형을 선물로 받았다. 두더지의 털은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어리시절 체키나와의 추억이 물밀 듯이 밀려옴을 느낀다. 겨울이 오고 눈이 두껍게 땅을 덮었는데, 퀴리나 부인은 전혀 흔적이 없는 땅 속의 두더지가 걱정이 된다. 딸과의 통화도 화제거리가 없어서 짤막하게 끝났다. 다시 여름이 오고 화려하게 핀 수국 아래 신선한 흙더미를 발견한다.


“돌아왔어!”

두더지의 흔적에 퀴리나 부인은 마냥 생기가 돌았다. 경쟁상대가 돌아온 것이다. 우리에게 활력을 주는 경쟁상대 말이다. 우리와 공존하는 삶의 동반자인 것이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밭고랑에 죽어 있는 두더지를 본 적이 있다. 무서웠었다. 몸집은 뭉뚝하고 통통하며 발바닥이 분홍색이었던. 날렵하지도 않은 그 몸으로 어떻게 땅을 파고 다닐까 궁금했었다. 그 후 두더지는 볼 수 없었다. 땅 속의 광부 두더지는 아직도 어디선가 밭을 갈고 있을까. 세상의 만물은 모두 존재의 이유가 있겠지.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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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
M. J. 알리지 지음, 김효정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인형의 집>은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라 대히트를 친 <이니미니>시리즈의 연속작품이다. 범죄 추리스릴러 소설은 미스테리한 사건의 연속과 반전이 있어 속도감 있게 읽혀지는 것이 그 묘미라고 생각한다. 이 책도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탁월하여 금세 몰입하게 된다.


 

 인형이나 인형의 집은 본래 어린 아이들이 즐겨하는 놀이도구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섬뜩한 연쇄살인범이 그들보다 나약한 여성들을 꼼짝 못하게 가두고 생명을 앗아가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물리적으로 대항하거나 저항하기 힘든 여성, 어린이들이 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헬렌 그레이스는 여자 경찰로서 불우하고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건 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다. 경찰관은 보통은 남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거의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점도 흥미롭다. 투철한 직업의식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하나하나 사건을 풀어가는 모습에서 멋지고 아름다움을 느꼈다. 반면에 위험한 상황에 처하여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기도 하는데 그것을 초월하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느껴졌다. 또 그 내부에서도 남을 밟고 출세하려는 비열한 야심을 품은 세리 하우드 총경같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분야나 악의 끝은 좋지 않다. 결국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게 되고 그동안 쌓아올린 명예도 모두 실추되고 마는 것이다.

 

 

 짧은 호흡으로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사건을 연속으로 배열한 구성법은 추리게임을 하듯 두뇌회전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읽기의 묘미을 더해 준다.

루비의 감금과 피파 브리어스의 사체 발견으로 시작되는 사건의 전개, 범죄를 숨기려고 피해자의 휴대폰으로 트윗을 올리며 교묘히 경찰의 눈을 피해 따돌리지만, 결국 범인은 약물중독자인 엄마의 학대와 무관심 속에 자란 벤 프레이저로 밝혀진다. 급박해진 범인은 불을 질러 루비를 죽이려고 시도한다. 한편 헬렌은 그녀를 구하러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과 대치하는 장면에선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에 땀이 흐를 정도였다. 아, 헬렌이 죽으면 안되는데. 어쨌든 루비와 헬렌이 살아남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항상 엄청나고 엽기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성장과정은 불우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 자라 온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어도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나 자녀의 학대, 살인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세상이다. 성장과정의 결핍이 어떤 사람에는 성공의 밑거름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범죄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 좀 더 나은 세계, 조화로운 삶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 볼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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