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전쟁 - 걷으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
하노 벡.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이지윤 옮김 / 재승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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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금’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저 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어렵고 복잡해서 별로 알고 싶지 않는 분야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상식을 깼다. 더 알고 싶어졌다! 세금 이야기를 쓴 책을 읽으면서 웃어본 적은 처음일 정도로 재미있었다. 게다가 전문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알기 쉽게 풀어 쓴 저자의 노력이 문장 전반에 걸쳐 재치와 유머로 반짝인다.

 

 

 인간의 삶에서는 오직 죽음과 세금만이 확실한 것이라고 하면서 동서고금의 세금의 역사, 여러 터무니없는 세금에 대한 이야기, 역사적인 인물의 사건과 사례에 얽힌 세금에 관한 비애, 하나의 세금이 탄생하기까지 국가와 정치가가 결탁하는 등 우리가 알 수 없었던 뒷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세계 최초의 베스트셀러격인 성경에 나와 있는 고대의 세금에 대한 이야기로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화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는 것을 통해서 세금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세금은 고래(古來)로부터 오늘에까지 계속 진화하고 늘어 인간의 삶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19세기까지 존재했다는 ‘창문세’ 또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도입했다는 수염세,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범인을 잡지 못하면, 일정량의 공물을 바치게 했다는 살인세 등 지금으로 말하면 납득할 수 없는 웃기는 이야기다. 역사책에서만 알던 표트르 대제가 세금을 걷기 위해 얼마나 악착을 떨었는지.

 

 

  세금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탈세가 있기 마련이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세금을 전가하게 되는 이야기. 처음 듣는 ‘세금해방일’이라는 단어, 과도한 세금 때문에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 탈세의 온상이 된 제3국에 대한 이야기 등 재밌으면서도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작은 분노(?)까지도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공통적인 것은 세금은 납세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국가는 나라의 살림을 위하여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는다. 한번 늘어난 세금은 결코 줄어든 적이 없다고 한다. 선거시즌이 되면 여러 공약을 내세워 유리한 방향을 끌어내기 위하여 혈안이 된다. 이를테면 ‘부자감세’등 새로운 세금을 고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쪽이 혜택을 보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대 세금의 역사, 증세를 위해 만들어 낸 별 희한한 이름의 세금, 세금을 둘러싼 국가와 정치가의 전략에 휘말려 국민들이 얼마나 허리가 휘는 삶을 살아오고 또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삶이 있는 한 세금과 결코 떨어질 수 없다면 이제라도 우리는 좀 더 관심을 갖고 똑바로 지켜볼 일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쓰이는 것이 모두를 위한 최상의 것이지만 완벽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일까.



"사람들은 적은 세금보다 공평한 세금을 원한다."-미국의 유머 작가 윌 로저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주고, 시민의 것은 시민에게서 뺏는다'(p384)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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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연애는 열병‘이라든가 ‘연애는 맹목‘이라고 불리고 있다.
사랑과 연애는 다르다. 사랑은 겹겹이 쌓여 승화해 가는 것이지만,
연애는 타올라서 이윽고 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俗に「恋は熱病」とか「恋は盲目」とかいわれている。愛と恋は違う。愛は積み重ねて昇華して行くものだけれど、恋は燃え上ってやがては灰になってしまうものだ。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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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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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맨부커상 수상작과는 달리 좀 안 읽혔다. 초반에는 좀 지루한 느낌이었고, 과거의 기억과 현실을 오가는 때문인지 앞뒤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작품의 도입 부분부터 감정을 절제한 자제력 있는 깔끔한 문장과 작가의 감성이 느껴졌다. 오히려 담담한 절제미가 눈물을 자아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형 톰이 전쟁에서 돌아왔는데,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는 장면...)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는 문학을 통해서 간접체험 한다. 직접 체험한 사람의 심정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문학 작품을 통해 그 참상을 감정이입하며 공감하게 된다. 전에 읽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삶의 의미 찾기가 주제였다면, 이 작품은 열린 공간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포로였다는 점은 비슷하다. 오히려 더 가혹하다고 할까. 동료들 앞에서 구타를 당하고 모든 수치스러움을 견뎌야 한다. 그 관계 속에서 인간의 선악, 상실감으로 인한 무기력 등 복잡한 내면의 심리를 이토록 세밀하게 그릴 수 있을까 싶다.



 이 작품의 내용을 알기 전에 제목만 봐서는 시적인 느낌이 강했다. 일본의 와카[和歌]와 함께 일본 시가문학의 커다란 장르를 이룬다는 하이쿠가 등장한다. 17세기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의 고전 오쿠로 가는 좁은 길의 영어판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에번스가 테니슨의 율리시스를 말하는 장면과 하이쿠를 언급하는데, 그 시적 우아함과는 전혀 상반되며 오히려 그 참혹함의 대비를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타이-미얀마 간 죽음의 철도라인에서 살아남아 현재 잘나가는 의사이자 화려한 전쟁영웅이 된 외과의 도리고 에번스다. 의도하지 않게 언론과 방송의 주목을 받으며 어느새 유명(有名) 인사가 되었지만, 마음은 몹시 불편하다. 도리고 에번스가 젊은 날 전쟁터로 출정 전 우연히 만난 키스 고모부의 아내 에이미와 나눈 사랑에 대한 기억과, 차후에 철도건설 현장의 일본군 전쟁포로로서 겪는 잔혹하고 비참한 현실이 주된 이야기 배경으로, 자신의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교차하며 괴로워하는 삶의 어둡고도 치열한 현장을 보여준다.



 굶주림과 전염병과 폭력이 난무하는 빗속의 정글에서 철도 건설 현장에 투입된 포로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참혹함 그 자체이다. 주먹밥 하나로 하루 일정을 마쳐야 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도 채울 수 없을 만큼 극심한 상황이라 먹을 것과 휴식만이 간절하다. 기계도 없이 정과 망치 하나만으로 정글을 베어내고 바위를 깨서 길을 내야 하는 과정이다. 간혹 오리 알 이나 작은 야자당 한두 개를 구경하게 되면 그들은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대하듯이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을 대하듯이희망을 가진다. 어디 굶주림뿐인가. 군화도 없이 맨 발로 작업복은커녕 거의 알몸이다시피 한 몸으로 이동하다가 죽기도 한다. 철도 건설이 진척되기도 전에 시체가 쌓이기 시작한다.



 이에 일본군 사령부는 안달이 난다. 완공 시한을 두 달이나 앞당기며 채찍을 가한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명령일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도 고타와 나카무라는 잇사와 부손, 바쇼의 하이쿠에 공감하면서 점점 감상에 빠져든다. 철도가 인도 침공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 바쇼의 아름다운 시와 더불어 온 세계가 하나가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들뜬다. 철도의 완성은 일본 정신이며, 유럽인이 못한 일을 자신들이 해냄으로써 우월한 인종이라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되고 그 정신이야말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할 거라는. ()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랑에 관한

키스 멀베이니와 에이미의 어긋난 사랑은 도리고와 엘라의 사랑 없는 결혼생활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도리고의 마음에는 에이미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욕망, 끝없는 바람기가 계속된다. 아내와 자식들과의 불협화음을 이룰 수밖에 없다. 그저 자신의 육욕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절제할 수 없는 이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한 배려의 결여, 윤리적인 의식의 결여에 다름 아니다.



 만약, 에번스가 빅터 프랭클 처럼 삶의 의미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원()의 일상으로 돌아온 후반의 삶은 좀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그 자체가 감사함이 아닌가.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 모든 모임, 가족관계에서 외로움과 지루함을 느낄 틈이 어디 있겠는가. 외양만 영웅이 아니라 내적으로 성숙한 영웅으로서 희생자 가족이나 지역사회에 모범이 되는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한 노력 없이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는 없다. 그냥 자신의 마음을 따라 충족하려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세상은 얼마나 무질서한 아수라장이 될 것인가.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렇게 먹칠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악에 관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악을 저지르는 자는 의외로 원래 악한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고타는 하이쿠를 읊고 낭만을 아는 사람이지만, 천황의 명령을 따라야 된다는 명제 하에 사람의 목을 치는 기술도 마다하지 않고 배운다. 처음엔 속으로는 죽도록 겁에 질렸지만, 한 번 해냄으로써 죽어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 과정을 나카무라한테 얘기하는 장면은 끔찍하다. 그러니까 어떤 이의도 달지 말고 철도 완성의 임무를 마쳐야 한다는 말이다. 굶주림, 영양실조, 콜레라, 각기병 등 전염병, 폭력에 시달리다가 인원은 점점 줄어드는, 죽어도 불가능한 상황에 포로 백 명은 스리파고다패스 구간 근청의 캠프로 보내라는 명령이다. 버마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 약 150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한다. 기계나 연장도 추가 지급 없이 인력은 부족한 상태로 어쩔 수 없지만다른 길은 없다. 포로를 철도 건설의 원료에 불과하다는 그들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집착과 광기를 본다.



동료들의 죽음에 관한 상실감

 전쟁 포로가 되어 생사를 함께 하다보면 미우나 고우나 동료애가 싹트기 마련이다. 전쟁에 관련된 작품을 많이 접했지만, 이토록 처참한 내용은 처음인 것 같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희망을 떠올리며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하는 장면은 애잔하다. 덩치가 크고 건장했던 타이니가 일본인이 정한 할당량을 더 빠른 시간에 해내어 죽음을 목전에 둔 동료들의 미움을 받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점점 해골이 되어간다. 거기에 더욱 잔인해지는 경비병들의 매질까지,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다. 다키 가디너는 그가 싫지만, 그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한 명이 죽어나갈 때마다 자신이 죽어가는 것이다.


 다키는 그와 오리 알 한 개와 주먹밥 하나를 나누어 먹는 장면은 눈물 젖게 만든다. 타이니는 마치 성체를 받듯이 두 손으로 받아 둘이서 캄캄하고 축축한 어둠 속에서 한 입 두 입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는다. 생사를 같이 했던 동료 중 스케치 재주가 있던 토끼 헨드릭스, 괴저로 다리가 썩어 수술을 받던 잭 레인보우 등 하나씩 죽어간다. 활활 타는 동료의 주검을 본다. 그 상황을 에번스도 그 누구도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 끔찍한 공포에서 도망칠 길이 없고 인간이 숭배하는 어떤 신보다 폭력이 더 위대한 곳이다. 바지에 똥을 지리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던 다키는 똥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에 절망하고 우리가 되어간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관한

일본의 패전으로 포로들의 지옥 같은 악몽은 끝이 난다. 그리고 이들을 삶과 죽음으로 갈라놓았다.


그들은 죽음의 냄새를 막으려고 담배를 피우고, 죽음이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농담을 주고받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되새기려고 음식을 먹었다. 다키 가디너는 자신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을 계산하면서 매번 자신의 운이 좋아진고 있다고 믿었다.’(P50)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서 온갖 것에 희망을 걸고, 순전히 환상에 대한 믿음으로 살았지만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잔인한 세월을 보낸 뒤 이제 트라우마로 고생한다. 가족과 불협화음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도 정상적이지 않다. 마음은 온통 동료들의 시체가 쌓인 정글에 머물러 있다.



 전범을 처벌한다는 신문기사가 나고 재판이 시작되지만, 고타나 나카무라는 그 벌이 미약하거나 피해간다. 그런 악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는데, 처벌은커녕 선한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추악한 가식으로 무장한 선() 이다. 인간의 내면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환경에 재빠르게 적응하는 동물이 인간이라고 했던가. 천황의 명을 받들며 살기 위해 온갖 악행을 쌓더니, 이제는 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선을 가장한다.



 일본군의 경비병이었던 최상민의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겁 많은 선량한 소년이 악의 우두머리의 하수인이 되었다가 사형수 신분이 되었다. 일본인 가정에서 하인으로 숙식과 매달 6엔의 봉급과 매질을 견디다가 매달 50엔을 준다는 말에 경비병이 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로지 돈을 위해 살았던 그는 내 돈 50엔을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빈곤한 가정, 시대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로지 돈 만을 쫓은 삶이 이런 결과를 만든 건 아닐까. 학습한 악()은 그대로 전이된다.



 철도 라인의 삶이 선()상의 삶이라면 그 후의 삶은 원()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반복되는 삶, 죽음이 삶이 되고 삶이 죽음이 되고 그것이 계속된다. 여기서 에번스가 떠올렸던 빛이란 어둠의 그늘에서 간절히 바랐던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구에게 억압되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갈 자유, 자연속에서 호흡 할 자유 말이다. 전쟁의 한 가운데 포로가 되어 한 배에 탄 동료들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가 죽으면 내가 죽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하루하루가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가혹한 굶주림과 병약해진 몸으로 서로 살아남기 위해 견뎌내는 몸부림이 너무 가혹하다. 작가는 큰 틀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그 아래에서는 인간관계의 내면 심리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선과 악, 증오, 부끄러움의 내밀한 마음이 아프도록 절절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비교적 안정을 찾아가는 가운데 모든 것은 점점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조금씩 잊어간다. 선악의 주고받음도. 평온한 일상은 지루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시시포스가 절벽 꼭대기까지 바위를 굴려 올리는 것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중에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비인간적인 전쟁 범죄는 어떻게든 단죄를 받아야하며 그 기억은 잊어서는 안 된다. 연합군 중에 오스트레일리아 군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네들의 이기적인 광신을 위해 희생된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모르는 많은 상흔의 실상이 이렇게 문학작품으로 많이 나와야 한다. 마치 이건 꿈이 아닐까, 저 너머의 세계, 꿈에서도 만나기 싫은 세계를 들여다 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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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마음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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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던 고슴도치의 소원에 이은 톤 텔레헨의 두 번째 어른 동화 소설이다. 네덜란드 작가 톤 텔레헨은 처음 만나는 작가이다. 전작의 주인공은 소심하고 걱정 가득한 고슴도치였다는데, 이 작품은 대책 없이 무모한 코끼리를 보여준다. 자꾸만 떨어져 다치고 후회하면서도 매일 다른 나무에 오른다. 주변의 다른 동물들은 그런 코끼리를 이해 할 수가 없다. 원서에는 없다는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도 들어 있어 코끼리의 마음을 한층 더 가깝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아담한 판형에 여유있는 여백은 바쁘게 살아가느라 놓치기 쉬운 편안한 휴식 같은 느낌을 준다. 읽기에 적당한 활자와 파스텔톤의 그림도 사랑스럽다.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는 코끼리의 모습을 보니,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마라는 옛 속담이 떠오른다. 이는 얼마나 고정관념에 묶인 말이며 인간의 꿈과 목표에 한계를 긋는 말인가. 예전보다 유연해져서 이 속담을 곧이듣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더러는 그렇지, 내가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겠어하며 자포자기(自暴自棄) 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극명하게 대조가 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곤충도 나온다. 땅 속에 사는 두더지와 지렁이, 하루살이, 바퀴벌레, 심지어 진딧물 같은 작은 생물까지 나오는데 웃음을 자아낸다. 이들은 우리 사람으로 말하면 소외감을 느끼거나 자존감이 약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제각각 코끼리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 바쁘다. 커다란 귀와 코가 달린 자신의 모습이라든가 코끼리의 행위(나무에 오르기)를 상상해본다. 어떤 동물은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어떤 동물은 엄청 부러워하기도 한다. 끔찍하고 엄청난 일이 일어날까봐 걱정한다. 상상의 늪을 헤매다가 문득 현실로 돌아와, 결국은 내가 나여서 얼마나 다행인지모른다며 안심한다. 한 마디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여러 곤충, 동물들의 생각을 엿보는데, 우리의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에 무릎을 치게 된다. 어떤 일을 시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시작은 했는데, 여기저기서 걸림돌을 발견한다. 좀 더 편안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고 이걸 꼭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여기 거북이의 머릿속을 보자.

내가 코끼리라면, 코와 귀가 가장 만족스러울 것 같아. 그리고 하루 종일 나무에 올라가야 하더라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거야. 그래도 거북이 등딱지 하나 장만해둬야지.’

(중략)

만약 나무에서 떨어지면 등은 바닥을, 몸은 하늘을 향한 채 등딱지로 떨어질 거거든. 내 등딱지에는 혹이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어.’(P103)

 

 아마도 여기서 등딱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습관이 아닐까. 실패하더라도 덜 다치도록 하는 완충재 같은 것 말이다. 완전히 코끼리는 되지 않겠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변화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다리 하나는 이쪽에 걸치고 있다가 실패할 경우 돌아올 곳을 만드는 것이다.

 

 다양한 동물들의 생각은 우리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이리재고 저리재고 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 이건 이런 경우구나 하고 내 결점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찔리고 웃음이 난다. 작은 곤충, 땅속 동물, 바다, 땅 위에 사는 여러 동물들을 등장시킨 것은 수없이 다양한 환경과 다른 처지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코끼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리거나 빈정거리던 친구들이 조금씩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기에 이른다. 이걸 보면서 우리는 나를 둘러싼 가족이나 지인들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돌아다보게 한다. 힘찬 응원을 보냈는지, 어땠는지.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살짝 위트 있는 그러나 좀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걱정은 우선 멈추고 일단 한 번 시도해보라고 격려를 해 준다.

 

친애하는 코끼리에게

 

방금 네가 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어.

너는 지금쯤 나무 밑 땅바닥 어딘가에 쓰러져 있겠지.

너는 아플 거고, 어쩌면 여기저기가 죄다 부러졌을지도 몰라.

그리고 다시는 나무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겠지.

매번 나무에 오르고 오를 때마다 떨어지는 너를 우리가

끔찍한 바보로 여긴다고 생각할 거야.

그래 우리는 네가 바로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존경스럽기도 해!

우리는 못 하는 건 절대 안 하지만, 너는 하잖아.

우리는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고민하고 재고 따지는데,

너는 일단 시작하고 보잖아.

우리는 실수를 하거나 잘못 판단할까봐 두려운데,

너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 중요한 것을 아는 것 같아.

(중략)

그러니까 코끼리야, 우리 말 듣지 말고 계속 나무에 오르길 바라!(P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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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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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제목이 주는 느낌이 묘하게 고전적이고 품위가 느껴져서 호기심을 끌어당겼다. 영국이 낳은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로버트 해리스의 종교 스릴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종교에 대한 소설은 처음인 것 같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황이란 위치는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사명감 이외에도 마음의 위안을 주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살아 있는 동안에 직접 만날 일도 별로 없는 고귀한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그 성직자들의 세계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처음엔 몰입이 잘 안 되는데 중반을 넘어갈수록 허리를 곧추세워 앉게 만든다. 사건이 사건이니 만큼 언론과 방송은 교황청에 주목을 하고 있으며 선거의 분위가 상황을 중계하듯이 실감나게 세세하게 묘사된다. 성직자는 속세의 생활과는 매우 다르고 고귀한 인품이며 한없이 넓은 마음을 기대했는데, 읽어 나가다 보니 웬걸 보통 사람들과 똑같다. 성직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니까 역시 그럴 수도 있겠다. 성직자들의 야망이 속속 드러나고 서로를 질투하며 험담하는 분위기가 분분하다. 중간 중간 거론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복선을 깔아놓고 여지없이 반전으로 폭죽을 터뜨린다. 독자가 생각지 못하고 건너뛸 것 같은 이야기가 반전이 된다.


 전 세계 117명의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예배당에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에 들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콘클라베다. 콘클라베,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vis). ‘열쇠를 지니다는 뜻으로 식사와 잠을 제외하고 교황을 선택하기 이전에는 이곳 시스티나 성당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웬일인지 공식 명단에 없던 한 명의 추기경이 있었으니 의중 결정 추기경으로 이름을 올린 베니테스 추기경이다. 그리하여 118명의 추기경이 되었고, 선거인단 3분의 2, 79표를 얻어야 교황에 선출된다. 원칙에서 벗어난 이 추기경의 숫자는 이야기에 어떤 반전을 예고하는 건 아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추기경 단장 로멜리는 콘클라베 선거 관리 임무를 떠맡게 된다. 국가 출신도 다양한 추기경들이 후보에 오르면서 기득권의 입김이 거세진다. 물론 로마의 교회를 살리기 위해 교황직을 되찾아야 한다며 이탈리아에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본격적인 비밀회의가 시작되자,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정치판의 선거를 방불케 한다. 후보를 음해하고 방어하는 공작이 난무한다. 만국의 세계평화를 위해 봉사하는 성직자로서 이래도 될까 씁쓸해지기 시작한다. 우선 유망한 후보는 알도 벨리니, 조슈아 아데예미, 조지프 트랑블레, 고프레도 테데스코 추기경이다. 전통적인 선거는 다섯 번째에 결론이 나왔다는데, 여섯 번 일곱 번째가 넘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과연 누가 될 것인가. 횟수가 거듭함에 따라 로멜리 자신의 지지도 점점 올라간다. 자신은 자격이 안 된다며 사양하면서도 지지율이 높아지자 내심 우쭐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가 아닌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도덕적으로 고결하고 완전무결한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된다면 그보다 더 금상첨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직자도 사람일진대, 아무런 흠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과오를 파헤치느라 여념이 없다. 총체적비리로 인해 트랑블레는 성하의 마지막에 면담으로 해고를 당했다는데, 모든 것을 숨기고 잡아뗀다. 비밀스런 밀실에서 은밀히 주고받은 대화를 무엇으로 증거를 확인할 것인가. 증인이 있는데도 중상모략이라고 밀어붙인다.


 과연 교황을 선출하고 흰색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막판 뒤집기 묘미를 보며 수년 전 대통령 선거가 생각난다. 밤을 새워 지켜본다며 잠깐 졸던 중 역전승의 환호에 잠이 달아나고 새벽이 밝아오던 기억. 일곱 번의 투표는 연습이었던 것일까? 여덟 번째에 드디어 교황이 탄생한다. 이 콘클라베의 마지막 반전은 참 웃긴다고 할까. 그간의 통념을 완전히 깨며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다. 신보다는 관직에 연연하는 성직자들의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전통적이고 경직된 남성 우월의 권위적인 성직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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