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평점 :
문학상 수상작품을 읽게 된 건 실로 오랜만이다. 벚꽃이 피던 4월에 읽기 시작했는데 6월 중순이 되어서야 마칠 수 있었다.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인 이주란의 <겨울 정원>과 후보작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수상작을 포함하여 인상적이었던 후보작 한 편의 감상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겨울 정원>은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마당 있는 집에서 나무를 심고 꽃들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로망이 있다. 텃밭을 일구고 정원 일을 하다가 힘들면 낮잠도 자고 나만의 작업실에서 글을 쓰면 좋겠지, 상상도 해본다. 소설 속의 주인공 혜숙도 정원을 좋아했다. 막내 언니까지 다 떠나보낸 60세의 혜숙이 친구의 배려로 정원이 있는 주택에 살게 된다. 혼자 오랫동안 살다가 독립해 나갔던 딸 미래가 다시 집에 돌아오고 활력이 생기는 듯했다. 모녀의 생활은 단출하고 소박하다. 혜숙은 오피스텔 청소 일을 하고 미래는 소설을 쓴다. 어느 날 미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고백하더니 그 사람과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고 흥분했다. 행복해하는 딸을 보며 혜숙의 마음은 조금 동요가 이는 듯했다. 큰글자도서 모임에서 만난 사람과 1년 넘게 교제하며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었는데. 혜숙은 딸 미래에게 생겨난 그 마음이 내게도 다시 찾아올까 못내 아쉽고 슬퍼지는 것이었다. 화자인 혜숙의 차분하고 절제된 감정 묘사에서 어떤 연민을 느끼게 했다. 속마음을 딸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면 덜 슬펐을까.
김성중의 <새로운 남편>은 지금 우리 앞에 바짝 다가온 AI 시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자는 ‘열린 가족 문화 조성을 위한 인공지능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프로젝트는 쉽게 말하면 ‘인공지능 남편’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화자는 ‘새로운 남편’으로 부르기로 한다. 결혼 재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면서 중증의 돌봄 중독, 동반 의존증을 보이는 기혼 여성이 대상이며 내담자에게 소개하고 체험해 보게 하는 내용이다. 인공지능 남편은 ‘프로테시스(prothesis)’ 장치 즉 문제적 남편을 치우고 그 자리에 가져다 놓은 보철물이자 전기신호다. 실제 남편과 똑같은 외형과 목소리를 하고 있는데 공격적인 말투나 통제적인 잔소리가 거세된 ‘이빨 빠진 호랑이’ 정도로 바뀐 모습이고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 속에서의 의사소통, 이것이 핵심이다.
몇 명의 내담자가 체험한 인공지능 남편 이야기는 참 흥미로웠다. ‘나쁜 점이 거세된’ 남편이었지만 원래 남편과 똑같은 모습으로 바꿔버렸다는 점이다. 육체가 없는 홀로그램과 지내면서 원래의 남편과 똑같아지다니.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를 증명한 셈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어떤 것에 중독이 된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중요한 일을 넘기고 시간을 낭비하고 결심해 놓고 지키지 않고 넋을 잃고 작은 일에 분개하기도 한다. 이런 타성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야 하는데.
‘자기 인생을 살라고? 그 여자들한테 물어봐. 자기 인생이라는 게 원래 있었는지 말이야. 그녀들은 남편에 관해서는 많은 정보가 있어. 언제 격분하는지, 어느 때 달아나야 하는지. 모르는 건 자신에 대한 정보야.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지……고립 속에서 의무가 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루틴이 이 자리를 잡은 거야. 노예를 풀어주고 자유롭게 살아보라고 하면 그 노예가 어디를 기웃거리겠어?’(p59)
화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을 향해 말한 외침이다. 대개의 여성의 인생이란 거의 비슷하지 않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다. 요즘 그야말로 AI가 초호황의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산업 로봇은 물론이고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까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머지않아 가정에서도 인간과 로봇이 공생하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이런 소재의 소설까지 나오는 걸 보니 인공지능 시대가 마냥 두려운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흥미롭고 경이롭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