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잠깐, 일본과 백제의 관계를 알아보고 넘어가자. 기원전 - P79

300년 무렵 도래인이 일본에 문명을 전해준 이후 한반도와 일본은활발히 교류했는데 그 중심에는 백제가 있었다(일본에 처음 한자를 전해준 왕인 백제 사람이다). 당연히 일본 조정에 친백제계 세력이 생겨났고 사이메이 덴노 또한 친백제계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파견된 총 4만 명의 일본군은 백강(지금의 금강으로 추정)에서 나당 연합군과맞붙었지만 참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많은 백제 귀족이 일본에 망명했고, 이들 덕분에 일본 사회는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 P81

도쿠가와의 에도 시대에 오사카는 ‘천하의 부엌‘으로 불리며 전성기를 맞았다. 전국에서 생산한 쌀과 특산물, 다양한 상품들이 오사카에 모였다가 에도로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물자의 이동이 주로 강과바닷길을 통했기에 ‘물의 도시‘라는 별칭도 붙었다. 오사카阪: 큰 언 - P83

라는 이름이 생긴 것도 이 시기였다.
‘천하의 부엌‘이라는 별명은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의미보다는
‘천하를 먹여 살릴 만큼 물산이 풍부하다‘는 뜻에 가깝다. 에도가 정치의 중심이라면 오사카는 일본 최고의 경제도시였다. "모우카리맛카?"(벌이는 좀 위) 하는 오사카 특유의 사투리) 인사말이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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