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 P181
때때로그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지내나 하고 물어요. 그럴 적마다 죽지못해 살지요.‘ 하고 아무 말도 아니했어요. 그러는데 한 번은 가니까큰애를 누구를 주면 어떠냐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데리고 있다가먹이면 먹이고 죽이면 죽이고 하지, 제 새끼를 어떻게 남을 줍니까?
그리고 워낙 못생기고 아무 철이 없어서 에미 애비나 기르다가 죽이더래도 남은 못 주어요. 남이 가져갈게 못됩니다. 그것을 데려 가시는 댁에서는 길러 무엇합니까. 돼지면 잡아서 먹지요.‘ 하고 저는 줄생각도 아니 했어요. -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