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게는 나이가 있지만 시인이 쓴 훌륭한 작품에는 나이가 없는데도, 원고 청탁이나 문학상마저도 자꾸 젊은 쪽으로 기울어지고있다. 나이든 시인이라고 작품이 늙은 것도 아니며 젊은이라고 해서작품이 반드시 젊은 것도 아니다. 나이든 시인도 젊은 시를 쓸 수 있고 또 쓰고도 있고, 젊은 시인 중에는 도사연(道然)하는 시를 쓰는시인들도 더러 있다. - P115

천 개의 곡조를 다룬 후에야 음악을 알게 되고, 천 개의 칼을 본후에야 명검을 알게 되듯이 천 개의 시를 쓴 후에야 명시를 알게 되는 것이다. 바람이 아니라 사람의 폭력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서 내가 아팠던 것은 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살아온나이 든 시인들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어야 젊은 시를 쓴다고 잘못판단하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절차탁마(切)란 말과 시(詩) - P115

란 말에 얼마나 공감할까. 아마도 낡은 옛말로 치부해버릴지도 모른다. 시 쓰기에 너무 골몰하다 여윈 젊은 시인이 얼마나 되며, 시라 골수에 사무치는 고통을 느낀 젊은 시인이 또 얼마나 될까. - P116

결국 문학은 평자들이 말해왔듯, 인간이 어떻게 삶을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치는 것이란 생각이 새삼 든다. 실제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우연과 비극을 눈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라고 개탄하는어느 평자의 말에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런 것은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닫아걸고 살기는 열어놓고 살기보다 한결 강력한 삶이다"라는 파스칼 키냐르의 말이 좋아, 원고지 앞에 앉아 ‘백지의 공포‘라는 말을 통해서 스스로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고통을 고백한 말라르메를 생각한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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