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그르누이는 아무 냄새도 없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런 행운이 자신에게 닥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의혹으로 인해 그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 P175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꼭 해야 할 일이 끝나면 그는 서둘러 자신의 동굴로 돌아가기 바빴다. 동굴안에 있을 때에만 정말로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낮에는 스무 시간 이상을 칠흑 같은 어둠과 완벽한침묵 속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돌로 된 바닥 위에 담요를깔고 벽에다 등을 기댄 채 어깨를 바위틈에 꼭 끼운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런 상태에 그는 만족하고 있었다. - P179


그는 단지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은둔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그 어느것에 의해서도 바뀔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의 실존 세계에 빠져있었다. 바위틈에 누워 있는 그는 마치 시체가 되어 버린 듯 거의 숨도 쉬지 않았다. 심장도 거의 뛰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세상의 살아 있는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 강력하고 기이한 채험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 P180

그르누이의 마음속 우주에서는 사물은 없고 단지사물의 냄새만 존재했다(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를 적절하고그럴듯한 하나의 풍경으로 묘사하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불과하다. 우리의 언어는 냄새로 맡을 수 있는 세계를 묘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P1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