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는 그들 세 식구뿐이었다. 스토너가 온 뒤로 푸트 일가는늦잠을 자는 버릇이 생겼다. 스토너는 부모가 식사를 하기 전에도식사를 마친 뒤에도 자신의 계획이 바뀌었음을,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음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한두 번 말하려고 해보았지만 새 옷을 입은 부모의 적나라한 갈색 얼굴을 보니 두 사람이 여기까지 먼 길을 온 것과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보낸 그간의 세월이 생각나서 말하지 못했다. - P33
그는 부모에게 반드시 해야 하는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자신의결정을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결정을 무를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경솔하게 선택한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고, 자신이 버린 세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자신과 부모가잃어버린 것을 슬퍼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 세계에서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 P34
그는 학생의 입장으로 강의를 들을 때 해방감과 성취감을 느꼈다. 그런 수업에서는 아처 슬론이 수업 중에 처음 그에게 말을 걸었던 그날처럼, 그 자신이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던 그날처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는강의에 빠져들어 문학의 본질을 이해하고 문학의 힘을 파악하려고 씨름하면서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했다. - P41
"3막 4장." 매스터스가 말했다. "그러니까 신의 섭리인지 사회인지 운명인지, 하여튼 그것이 우리를 위해 이 누옥을 지어준 거야. 우리가 폭풍을 피할 수 있게 대학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걸세.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학생들이나 이타적인 지식추구나그밖에 사람들이 말하는 이런저런 이유를 위해서가 아니야. 우리가 이런저런 이유를 내놓고 평범한 사람들, 그러니까 세상에서 잘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몇 명 받아들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그저 보호색일 뿐이지. 중세교회가 평신도는 물론이고 심지어 신에 대해서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가장을 하는 걸세.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반드시 그래야 하니까." - P47
학생들과 교수들의 작은 무리에 휩쓸려 다니다 보니 아처 슬론의 연구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앞을 지나가면서 그는 슬론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언뜻 보았다. 그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쓰디쓰게 울고 있었다. 뺨의 깊은 주름을따라 눈물이 개울처럼 흘러내렸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처음으로 그녀와 둘이서 오랜 시간을 보낸 그해 12월 그날 저녁의 한 시간 반 동안 한 것만큼 그녀가 자신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자신과 그녀가 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그런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는 또한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확신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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