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이 곧 나다. 부족해보여도 지금 자기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실패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는 점에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쓰면서 실망하고 그래도 다시 쓰는 그 부단한 과정은 사는 것과 꼭 닮았다. 김수영의 시 「애정지(愛靑墨鏡)」에 나오는 대로 "생활무한(生活無限)"이고 글쓰기도 무한이다.
- P58

그것을 인정하고 상세히 쓰다보면 솔직할 수 있다. 상처는 덮어두CREAD기가 아니라 드러내기를 통해 회복된다. 시간과 비용을 치르고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아픔을 가져온 삶의 사건을 자기위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말하기의 계기가 필요하다. 글쓰기는상처를 드러내는 가장 저렴하고 접근하기 좋은 방편이다. 일단 쓸 것.
- P63

이 과정이 아마도 해석의 힘을 길러준 것 같다. 철학자 니체의 말대로 고통은 해석이다. 우리는 고통 그 자체를 앓는 게 아니라 해석된고통을 앓는다. 성폭행을 당했으니 여자 인생 끝이라는 해석, 여자가행실이 부주의해서 생긴 일이라는 해석, 치욕스러운 일이니 입을 다물라는 해석 등등 난무하는 말들의 장대비까지 맞는다.  - P72

대학교 3학년 때 신춘문예에 당선된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의 어머니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스물여덟 살에 청상이 되어 삯바느질로 삼형제를 키우던 어머니가 순천 시내 서점 주인에게 "우리 아들이 읽고 싶은 책은 마음대로 읽게 하고, 사고 싶은 책은 그냥 가져가게 하면 월말에 들러 값을 치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승옥은 고등학교 마칠때까지 책이란 책은 거의 다 읽었고 그것들이 글을쓰는 바탕이 되었다며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독하고 권했다고 한다. - P81

새의시집은 나의 변화를 알려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때는 도저히 감각의 주파수가 안 맞던 시가 계절이 바뀌고 나면 읽힐 때가 있다. 매번읽을 때마다 새 책같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사이 나는 살았고 뭐라도겪었고 변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 시집은 나에게 너무 어려워"
혹은 "이 책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제쳐두는 것은 자신을 고정된사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절대 변하지 않고 화석처럼 살겠다는 이상한 다짐이다.  - P97

무기력해져가는 현실에 한숨만 쉬던 내게 "동정은 이 세상의 고통을증대시킨다"는 니체의 발언이 천둥처럼 다가왔다.
"동정은 쾌락을 포함하고 우월함을 적게나마 맛보게 하는 감정으로서, 자살의 해독제가 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잊게 해주고 우리의마음을 충만하게 해주며 공포와 무감각을 쫓아버리고 말을 하게 하고 - P116

사유 연마하기탄식하게 하며 행위를 하도록 자극한다. 동정에는 무언가 고양하고우월감을 주는 점이 있다."
니체의 말대로라면, 동정의 수혜자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동정하는 자 자신이다.  - P117

그러니 글쓰기 전에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이 글을 통해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글을 쓰기 전에 스스로에게 중얼중얼 설명하면서 자기부터 설득하는 오붓한 시간을 갖자. 두툼한 책이든 한 페이지 글이든 한 줄로 정리하고시작하는 것이 글에 대한 예의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면이것이다. ‘관습적 해석에 저항하는 글을 재미있게 쓰자 - P129

좋은 글에는 ‘근원적인 물음‘이 담겨 있다. 나는 왜 언제부터 그 일을 알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꿈을 갖게 되었는지, 일을 하느동력은 무엇인지, 일에 대한 환상이 어떤 지점에서 깨졌는지, 이 일을계속 할지 말지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어떤 느낌,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그것을 당연시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더 깊고 진지하게 파고드는 작업, 그게 문제의식이다. 우선은 나를 향해 ‘왜‘라고 질문하는 것 말이다.
- P136

좋은 디제이는 바로 나한테만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한다. 소곤소곤 말을 건네는 어조나 내용이 연인 같은 친밀감을 제공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디제이가 사진을 붙여놓듯이내 글을 들려주고 싶은 구체적 대상을 정하고 써야 한다. 그래야 글이어떤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살아 있는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 P164

직업과 역할의 통념에 눌려 있던 예술가적 본성을 회복할 때 누구나좋은 필자가 될 수 있다. 좋은 글은 그 자체로 다른 생각의 자리, 다른인격의 결을 보여준다. 글은 삶의 거울이다. 글은 삶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것이 글 쓰는 사람에게는 좌절의 지점이기도 하고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 P176

현장으로 내려갔기에 잘 쓴 게 아니라 충실한경험에서, 곧 삶에 밀착한 경험에서 좋은 글이 나온 것이다. 삶이 쓰게 하라‘는 것. 작가의 윤리와 책무에 헌신하고 글로 생산하는 작가에게 존경이 솟는다. 그래서 나는 글이 힘을 잃고 지리멸렬해진다고 느낄때 조지 오웰을 읽는다. 그의 맵시와 유머와 기품이 어우러진 문장을 부러워하며 ‘혹독한 내려감‘에 존경을 보낸다. - P183

인터뷰를 하고 나면 우리는 느낀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누구를 안다고 말하는 것의 조심스러움을 할머니나 엄마의 인터뷰처럼 가족의 배치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으로만날 때 더 극적이다. 반전의 맛이라고 할까. - P186

 "사람은 자신의 거처와 상당히 관계가 깊어서, 집을 잘 관찰하면 거기 사는 사람에 대해많은 것을 알게 되게 마련이다"라고 괴테는 말했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절감한다. 특히 인터뷰를 글로 쓰려면 불필요한 것들이 하나도 없다는 걸 느낀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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