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해를 전문가에게 의탁하기보다스스로 성찰하고 풀어가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며 그중 가장 손쉬운하나가 내 생각에는 글쓰기다. 글쓰기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공업으로, 부단한 연마가 필요하다. 자기 안에 솟구치는 그것에 대해 알아채는 감각, 자기 욕망과 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감성적 역량, 세상을 읽어나가는 지식과 시선 등을 갖춰나가는 것이다. 그러면삶의 장인이 될 수도 있고 아니될 수도 있지만 더 망가지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다.  - P43

몇 편 쓰고 나면 학인들은 너도나도 글감 부족을 호소한다. 어떤 이는
"경험의 돌려막기‘가 한계에 달했다고 말해 동료들의 큰 공감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열 편 남짓 글을 쓰고 나서 예외 없이 글감의 고갈에직면하는 이유는 삶 혹은 나에 대한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어쩌면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고, 존재의 빈곤은 존재의 외면일지모른다. - P52

글쓰기는 ‘나‘와 ‘삶의 한계를 흔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삶은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의 지루한 반복이다. 기쁨과 슬픔을 자아냈던 대소사의 나열은 삶의 극히 일부분이다. ‘나‘의 범위 역시 피와살이 도는 육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신의 총체이기도 하며 관계의총합이기도 하다. 나는 나 아닌 것들로 구성된다. 내가 쓰는 언어를보자. 그간 읽었던 책, 접했던 언론, 살았던 가족, 만났던 애인, 놀았던친구의 말의 총합이다.  - P53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하나는 기분이 심심해지는 일이고 하나 - P55

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 주변에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정작 글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피곤하고 바쁘다며 집필 유예‘의 근거를 댄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말은 그 일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 P56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일단 쓸 것. 써야 쓴다.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문장을 쓰고 그걸 다듬어서 문단을 만들고 그 문단의 힘으로 한 페이지 글을 완성할 수 있다.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서 영감을 기다리고지적 자극을 위해 벤야민을 읽고 벤야민을 읽다 보면 마르크스가 궁금하고 마르크스를 공부하려면 자본론』을 펴야 하고・・・・・・ 무능력에서 출발하면 글은 영원히 쓸 수 없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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