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예술가로서 시인의 영혼은 인간사가 벌어지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테니슨에게 있어 이는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것을 의미하지요.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든, 인류에 대한 사랑이든, 사랑은 낮은 계곡에 있으니까요. 따라서 이 시에서 ‘예술의 궁전‘은 부정되고 파괴될 게 아니라 인간화되어야 합니다. - P115

남성 예술가에게도 이렇게 희생이 요구됐다면 여성 예술가에게는 어땠을까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힌 헤스터 프린의 가슴에 화려하게 수놓아진 주홍글씨 A가 간통녀Adulteress 일뿐 아니라, 예술가Artist 또는 작가Author를 의미한다는 의심이 드는 건 왜일까요? 위대한 예술가 역할을 맡은 남자가 ‘삶을 사는 Live Life‘ 건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졌는데(그들에겐 자질구레한 일상도 오롯이 예술을 위한 행위니까요), 여기서 ‘삶은 산다‘는 것은 특히나 술, 여자, 노래를 즐긴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 P128

앞서 언급한 이자크 디네센의 소설을 보면, 젊은 여배우 말리는연극 <템페스트>에서 쇠렌슨 경이 맡은 푸로스퍼로의 상대역에어리얼을 연기합니다. 말리는 고통스럽지만 예술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요. "그러면 그 대가로 얻는 게 뭐죠?" 그녀가소렌슨 경에게 일리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자 그가 답하지요. "세상의 불신과 끔찍한 외로움이지. 그게 다야."
- P129

내가 작가가 되었을 무렵엔 여성 작가, 특히 여성 시인이 되면얼마나 고약한 일을 겪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메인 그리어도 정성을 들여 집필한 자신의 저서 《단정치 못한 시들을통해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여성 시인들의 슬프 인생사와 암울한 죽음에 대해 설명했지요. 에밀리 디킨슨의 은둔 생활,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고립된 삶,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마약 중독과 거식증, 샬롯 뮤의 자살, 실비아 플라스의 이어진 자살, 앤 섹스턴의 또 이어진 자살 솟구치는 피는 시다." 실비아 플라스는 목숨을 끊기 10일 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것을멈출 수 있는 건 없다. 상상력의 여사제는 결국 바닥의 붉은 웅덩이에서 생을 마감할 운명인 걸까요?
- P135

하지만 ‘길은 좁고 문은 협소한‘ 예술지상주의로 향하는 길에놓인 ‘절망의 늪‘을 피해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다른 길을 택하면 어떻게 될까요?" 공개토론회에라도 회부될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토론회가 열리는 곳은 지옥일까요? 하지만 ‘사회적 책임‘이라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결국 ‘예술의 궁전‘에 놓인 금박 의자에 언어의 덮개를 얹는 정도의 위업은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거야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요.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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