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 무릎을 꿇고 앉은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작은 나무야, 늑대별(큰개자리에 속하는 별로 일명 시리우스라고도 함. 겨울 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항성이다 옮긴이) 알지? 저녁에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보이는 별 말이야. 어디에 있든지간에 저녁 어둠이 깔릴 무렵이면 꼭 그 별을 쳐다보도록 해라. 할아버지와 나도 그 별을 볼 테니까. 잊어버리지 마라." 나는 잊지 않겠노라고 했다. 늑대별은 와인씨의 촛불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윌로 존에게도 늑대별을 보라는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할머니에게 부탁했다. 할머니는 꼭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하시고는 내 양어깨를 잡고 눈을 들여다보셨다. "체로키들이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맺어주었단다. 그것을 잊지 마라, 작은 나무야. 어떤 말을 들어도.....… 그것을 기억해라." - P276
"가지 마, 작은 나무야..... 가지 마...."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때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바람에 나는 할아버지 뒤에서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다. 바람이 불더니 슬픈 소리를 내며 내 노란 코트 자락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 말라가는 찔레나무는 길로 비어져나와 내 발을 붙들었다. 문상비둘기 한 마리가 길고 외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응답하는 소리가 없는 걸 보니 나를 위해 우는 게 틀림없었다. - P277
처음 그 별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는, 그 별을 보며 떠올릴 일들을 낮 동안에 미리 생각해두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는 얼마 안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나에게 추억들을 보내주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아침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산꼭대기에 앉아 있다. 햇빛을 받은 얼음이 찬란한 빛을 뿜으며 반짝거리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린다. "산이 깨어나고 있어." 그러면 나는 그 창가에 서서 이렇게 대답한다. "네, 할아버지, 산이 깨어나고 있어요." - P291
그는 그 굵다란 막대기로 내 등을 내리쳤다. 처음에는 몹시 아팠지만,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예전에 가르쳐주신 적이 있다. 내가 발톱을 뽑아야 했을 때……… 인디언이 고통을 참는 방법을……… 인디언들은 몸의 마음을 잠재우고, 대신 몸 바깥으로 빠져나간 영혼의 마음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고통을 바라본다. 몸의고통을 느끼는 것은 육체의 마음뿐이고, 영혼의 마음은 영혼의 고통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매를 맞으면서 몸의 마음을 잠재웠다. - P294
할아버지다! 할아버지가 사무실에서 나와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상자도 내려놓고 할아버지를향해 달렸다. 나는 온힘을 다해 달려, 팔을 벌린 채 무릎을 꿇고 계신 할아버지의 가슴속으로 뛰어들었다. 우리 두 사람은 한참 동안말없이 그렇게 껴안고만 있었다. - P303
"작은 나무야, 왜 그러니?"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구두를 벗어버렸다. "산길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할아버지." 비로소 흙의 따뜻한 온기가 다리를 지나 온몸으로 퍼져갔다. 껄껄대며 소리내어 웃으시던 할아버지도 주저앉아 구두를 벗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양말까지 벗어서 구두 속에 쑤셔넣으시더니, 우리가 걸어온 길 쪽을 향해 구두를 힘껏 집어던지셨다. "이따위 것들은 너희들이나 가져라!" 할아버지가 고함을 지르셨다. 나도 걸어온길 쪽으로 내 구두를힘껏 집어던지면서 할아버지와 똑같이 외쳤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웃기 시작했다. 어찌나 많이 웃었던지 나는 땅바닥에 주질러앉았고,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거의 땅바닥을 뒹굴다시피하셨다. - P308
헛간 앞을 지날 때 샘영감이 콧소리를 내며 내 뒤를 몇 발자국따라왔다. 골짜기길을 다 지나고 ‘칼길‘ 로 해서 ‘하늘협곡‘ 까지 나는 쉬지 않고 달렸다. 멈추고 싶지가 않았다. 바람이 나와 함께 노래부르고, 나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다람쥐와 너구리, 작은 새들은 내가 지날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찬란한 겨울 아침이었다. - P311
몸의 마음만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하거나 신경쓰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로, 자연 역시 몸의 마음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고 이해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은 나에게 지옥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내 출생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으며, 악의 씨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연은 그런 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있노라니 나도 그런 말들을 잊을수 있었다. - P312
그 해 겨울은 특히 혹독하게 추웠다. 그래서 위스키를 만들 때면증류기의 긴 관이 얼지 않도록 불을 때는 게 큰일이 되었다. 때로는 혹독한 겨울도 필요하다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보다 튼튼히 자라게 하는 자연의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얼음은 약한 나뭇가지만을 골라서 꺾어버리기 때문에 강한 가지들만이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게 된다. 또 겨울은 알차지 못한 도토리와 밤, 호두 따위들을 쓸어버려 산속에 더 크고좋은 열매들이 자랄 기회를 제공해준다. - P316
"바보같이! 이불이 붉은 독수리표 입담배로 범벅이 되잖아!" 사실 그랬다. 나도 울었지만 나는 할아버지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몸의 마음이 졸기 시작하고 영혼의 마음이 그것을대신했다. 할아버지는 윌로 존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머리를 껴안은 채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몸의 마음이 다시 깨어났다. 할아버지가 모자를 집어달라고 하셨다. 내가 건네드리자 할아버지는 그것을 머리에 쓰셨다. 내가 손을 잡으니 할아버지의 얼굴에 가만히 웃음이 번졌다.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 그러고 나자 윌로 존이 그러했던 것처럼 할아버지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 P326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시지 않았다. 할머니는 저 멀리 산꼭대기 쪽을 올려다보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가 돌 - P328
아가신 걸 알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어하시던, 그 주황과 초록과 빨강과 노랑 무늬의 드레스를 입고 계셨다. 할머니의 가슴 앞섶에는나에게 쓴 편지가 꽂혀 있었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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