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생각으로는 우리가 산을 짓밟으면서 앞으로 나갈 것 같았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산이 손을 벌려 온몸으로 감싸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발자국소리가 조금씩 울리기 시작했다. 주위에 뭔가 꿈틀거리는것들이 있었다. 만물이 다시 살아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은 휘파람소리와 숨소리들이 나무들 사이에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 P15
어느새 반달은 맞은편 산등성이 뒤에 숨은 채 뿌연 은빛만을 하늘 가득히 토해내고 있었다. 덕분에 계곡에는 회색빛 아치 같은 것이 드리워져 우리 모습을 희미하게 밝혀주었다.할머니가 뒤에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인디언 노래였다.굳이 가사를 붙여 부르지 않아도 어떤 노래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듣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해졌다. - P16
그때 누군가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침대 옆 마룻바닥에앉아 계시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널따란 치마자락을 마루에 펼치고, 흰머리가 많이 섞인 땋은 머리를 어깨에서 무릎으로 늘어뜨리고 앉아 계셨다. 할머니도 나처럼 창 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이윽고 할머니가 낮고 부드러운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