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글쓰기를 다르게 말하면 세속적인 성공의 뒤안길에서쓴다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그 시간을 소외의 시간이 아니라내면을 다지는 풍요의 시기로 생각할 수 있어야 오래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빠른 성공이 아니라 건강한 성장이니까요. 혼자 쓰는 시간 동안 자기 탐색의 자유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 P31
생각해보면 어떤 형태의 글이든 매일 쓰는 행위가 참 중요한 것같아요. 그때 글을 꾸준히 쓰며 필력을 키웠는지는 장담할 수없지만, 계속 쓰게 하는 근력은 확실히 기른 것 같거든요. ‘쓰면 되는구나‘ ‘내가 뭐라도 매일 써냈구나‘ 하는 뿌듯함이 훗날직업적 글쓰기를 시작할 때 도움이 됐어요. 글 쓰는 일로 돈을벌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겁은 나지만 그래도 해보자고용기를 내는 데 힘이 되었습니다. 저력이라고 부르죠. 작가로서 살아가는 데 근간이 된 힘을 노조 활동기에 글을 꾸준히 쓰면서 얻었습니다. - P32
절실함은 생존 본능에서 나옵니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절실함은 두 가지에서 비롯하죠.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힘, 배고픔에서 벗어나려는 힘. 고통스럽고 배고픈 거 너무 싫잖아요.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죠. 이것들로부터 제 글쓰기도 시작됐고요. 마음이 너무 괴롭고 생각이 엉켰을 때 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잠들지 못해서 매일 썼습니다. 자유기고가로 일할땐 기한 안에 글을 납품하지 않으면 원고료를 못 받으니까, 원고료가 없으면 쌀독에 쌀을 채울 수 없으니까 글을 썼어요. 글쓰기의 기한, 즉 마감이라는 사회적 약속 그리고 그것을 지켰을 때 주어지는 원고료라는 보상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 P35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생각한다는 것은 늘보던 것을 낯설게 본다는 뜻입니다. 제가 출산 전엔 유아차를끌고 가는 엄마의 모습을 봐도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아기가너무 귀엽네." 하고 말았는데 육아를 해보니까 전과 같은 풍경이라도 아기만 보이는 게 아니라 저 아기랑 씨름하는 엄마의하루가 얼마나 길고 답답하고 힘겨울까 싶은 거죠. - P37
고백하자면, 스스로 재능을 의심해보진 않았던 것 같아요. 표현하고 나니 쑥스럽네요. 글쓰기 천재라서 그랬다는 건 아니고요. 저에게 글쓰기는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을 낭비하기 아까워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글 쓰는 게 그냥 재밌었고, 취미처럼 쓰다가 직업이 돼서 꾸준히 썼고, 생의 어떤 시기에 쓰고 싶은 말이 차올랐고, 그래서 또 썼고. 이런 과정을거쳤단 말이죠. 그러니까 제 글쓰기 생애에 ‘재능‘이란 단어가개입할 여지가 없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네요. - P43
그래서 "재능이 없으면 글쓰기를 그만두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어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재능인가? - P43
김중미 작가가 강연에서 청소년을 만날 때마다 늘 "어떻게 작가가 되셨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데 그때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저는 어떻게 작가가 되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사람의 삶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2 정말 공감했습니다. 사람의 삶을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중미 작가의 말을 저는 이렇게이해했어요. 사람의 삶을 잘 이해하려는 노력이 글을 쓰게 한다, 즉 그 노력이 우리를 작가로 만들고 작가로 살게 한다고요. - P44
글쓰기의 출발은 소박하죠. 기억 작업이고 자기 구원입니다. 저도 저 살자고 썼던 게 크고요. ‘아, 사는 게 참 힘들구나. 사람은 고통스러우면 안 되는 존재인데 이렇게 고통을 받으며사는구나.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 고통이 조금씩 견딜 만해지는 과정을 기록하면 이걸 읽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지.‘ 이 정도의 생각으로 글쓰기를 시작해본 겁니다.
글 쓰는 일은 지겹고 괴로운 반복 노동입니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기보다 찬란한 계절에 내가 꽃놀이나 단풍놀이를 안 가고 하루에 대여섯 시간 책상 앞에 앉아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와 씨름할 수 있는지, 그 고통을 감내할 만한 동력이있는지, 나는 왜 쓰고자 하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쓰기의 말들》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쓰는 고통이 크면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3 글 쓸 때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자기 의심은 오직 쓰는 행위에 몰입할 때만 자취를 감춥니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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