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을 살면서 훌륭한 이야기꾼들을 꽤 만나 보았지만 그중 레즈니코프가 챔피언이었다. 그날 레즈니코프의 이야기는 30~40분씩 이어지기도 했는데, 그는 이야기가 요지에서 아무리 멀리 벗어나도 흐름을 완벽하게 통제했다. 그는 이야기를 잘하는 데 꼭 필요한 인내심을 갖추고 있었고, 이야기가 흘러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주 사소한 돌발 상황까지도음미할 줄 알았다. 여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게 처음엔 정처 없는 방랑으로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정교하

고 체계적으로 원을 그린 것이었다. 예를 들면, 그는 할리우드에 살다가 왜 뉴욕으로 돌아왔을까? 이 이야기는 무수한 작은사건을 동반했다. 공원 벤치에서 어떤 남자의 형제를 만난 일,
누군가의 눈동자 색깔, 어느 나라의 경제 위기. 15분 후 내가이야기의 미로 속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다고 느끼기 시작했을때, 그리고 레즈니코프 역시 길을 잃었으리라 확신하고 있을때, 그는 천천히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할리우드를 떠나게 된 거지요. 그가 지극히 명확하고 확실하게 선언했다. 돌이켜 보니 모든 이야기가 완벽하게 아귀가 맞았다. - P150

레즈니코프가 세상을 떠나고 몇 년이 지난 후 라호이아에서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최근 레즈니코프의 문서들을 사들인캘리포니아 대학 도서관 미국 시 아카이브에서 일하는 친구가쓴 편지였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레즈니코프가 소장하고 있던내 시집 『폭로』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책의 여백에짧은 메모가 아주 많이 적혀 있었으며, 시를 정확하게 읽고 리듬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시에 강세 표시를 해놓았더라고 친구는 전했다. 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레즈니코프에게 그 어떤말도, 행동도 전할 수 없었기에 그저 이승에서 감사의 마음만을 품었다.
에드윈 알링턴 로빈슨과 찰스 레즈니코프, 고인이 된 두시

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레즈니코프가 훨씬 더 좋은 곳에 있을 것이다.

1983년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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