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미술 비평가들은 이 그림에 나타난 삼각형 구도의 안정감에 아기뿐 아니라 엄마까지도 포함시킨다. 그림을 보면 한눈에 엄마가 커튼과 베일이 만들어낸 삼각형 안에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그림이 그려진 1872년에 아기 엄마를 보는 시선과 현대의 시선이 같을까? 삼각형이 ‘보호‘ 역할을 한다는 그 시대의 시각이 현대에 와서는 삼각형 안에 갇혀 있는‘ 엄마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엄마들은 자신을가둔 그 구도를 벗어나는 꿈을 꾸고 있을 것 같다. - P17

그림 속 에드마는 결혼과 동시에 화가의 길을 포기했다. 가정을 이루고 생명을 키우는 일이 자신에게 ‘미술, 그림, 화가‘ 그 이상의 가치를지닌 것이기에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던 시절을 잊을 수는 없다. 요람 속에서 잠든 아기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는 에드마를 결혼 이전으로 끌고갔고, 평화로운 천사의 모습을 바라보며 화폭이 아닌 머리 속에 한 장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리 집에도 세 명의 ‘에드마‘가 있다. 에드마 모리조 Eama Morisot에서에드마 퐁틸롱Edma Pontillon으로 진로를 바꾼 세 명의 에드마들, 딸과 두며느리들, 나는 베르트 모리조의 그림 <요람>의 모델 에드마의 표정에서 우리집 세 젊은 엄마들의 표정을 읽는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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