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 정도 소리쯤 남들은 아무렇지 않으려나. 하지만 깊은밤 홀로 방에 틀어박혀 달그락 소리 하나 없는 가운데 조용히구상을 가다듬고 문장을 쓰는 나 같은 사람은 아주 미세한 소리조차 이상하리만치 잘 들린다. 때로는 그 소리가 신경을 돕시 건드리거나 흥분시킨다. 반면 붓은 아무리 빨리 써 내려가 - P191

도 절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따라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붓으로 쓸 때, 원고지도 일본지가 편하다는 사실을 굳이 말할 것까진 없을 터. 일본지는 그 외에도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간사이 교외에 살고 있기에 원고를 기자에게 직접 건네주지 않고 거의 언제나 우편으로 보낸다. 그러려면 무게가 나가지 않고 부피가 크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종이가 좋다. - P192

연필은 원고지 사이에 카본지를 끼우고 복사할 때 쓴다. 조금 소리가 나고 저항감이 있고 적당한 연필깎이가 없다(요사이나온 바리캉식 연필깎이는 제법 쓸 만하다, 책상에 붙박아 두는 기존 - P194

녀석은 풍류가 없어 괴롭다)는 결점이 있긴 해도 지우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압지도 필요 없고 책상이나 손이 더러워질 일도 없다. 긴장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쓰기에는 연필이 제일이지 싶다. - P195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딱 이맘때가 제일 좋지 않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새잎의 시기, 선명치 않은 바깥 공기에닿으면 어쩐지 창작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고 펜이 술술 나가지않아서 생각한 대로 글을 쓸 수 없다.
도대체 어느 때가 글을 쓰기에 좋은 계절이란 말인가. 그런사치스러운 이야기를 할 처지가 아니지만, 한여름 또는 한겨울처럼 덥다면 몹시 덥고 춥다면 몹시 추운 그 극한의 시기가 좋다. 하루로 말하면 낮보다는 밤에 글이 훨씬 빨리 써진다. 낮동안 원고 다섯 장을 쓴다고 치면, 밤사이에는 열다섯 장을 쓴달까.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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