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몰라 니진스키는 음악가들이 다길레프를 두고 음악가가 아니라고 말했으며 화가들은 그가 딜레탕트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반대로 음악가들은 다길레프의 화가적 능력에 대해, 화가들은 그의 음악가적 능력에 대해 후하게 평가했다고 이야기한다.  - P50

다길레프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 알렉산드르 베누아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발레에서 시각적, 청각적 심상의 근본적 혼합을 지적하고 싶다.
바그너가 꿈꿨으며, 예술적 재능이 있는 모든 이가 꿈꾸는 총체 예술Gesamikustwerk의 이상은 발레에서 달성된다."  - P54

가장 저속한 비평가만이 그 유혹에 항의한 이 매력적인 침공은 모두가알다시피 극심하기보다는 순수하게 미학적인, 하지만 어쩌면 드레퓌스사건이 일으킨 것만큼이나 강렬한 호기심의 열병을 파리에 가져왔다.  - P57

1911년, 정규 발레단에서 무용수를 빌려오는 고질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얼마간의 독립을 이룰 목적으로다길레프는 자신의 발레단 ‘발레뤼스 드 다길레프‘를 창단했다. 그리고 이 발레단은 1911년부터 1913년까지 몬테 카를로, 로마, 베를린,
런던, 빈, 부다페스트 등 유럽 지역을 돌며 관객들의 열광적 찬사와놀라움, 황홀경을 몰고 다녔다. 많은 젊은 유미주의자는 넘치는 환희를 기록으로 남겼다. 프루스트는 「세헤라자데의 첫 공연에 대해 레날도 안에게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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