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만은 그에게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원래부터 낭만적인 상상의 세계에 젖어 있던 나는, 수수께끼 같은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떤 신비로운을소설의 주인공처럼 보였던 그의 모습에 강한 애착을느꼈었기 때문이다. 그도 나를 좋아했기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와는 평소의 날카로운 독설을 제쳐 두고여러 가지 주제에 관해 소탈하고 놀랄 만큼 기분 좋은 태도로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 P22
그 시절에는 난폭함이 유행이었는데, 나는부대에서 첫째 갈 정도로 난폭한 행동을 즐겼소, 우리 는 과음을 자랑거리로 삼았고 나는 제니스 다비도프6)가 칭송했던 그 유명한 부르쪼프 보다 더 많이마셨소. 우리 연대에서 결투는 종종 있는 일이었는데, 나는 그 모든 결투의 증인이었거나 당사자였소. 연대의 동료들은 나를 우상처럼 생각했지만, 늘 교대되어부임하는 연대장들은 나를 필요악으로 간주했소. - P28
그런데 내 총구에 몸을 맡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그자는 선 채로 군모에서 잘 익은 체리 열매를 골라내 먹으며 씨앗들을 뱉고 있더군. 그 씨앗들이 내 발 밑까지 날아 왔소. 그자의 태연함이 나를 격노하게 만들었소. 순간 ‘이자가자기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데 내가 그것을빼앗은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 - P31
"당신은 이 ‘유명 인물이 누군지 짐작이 갈 거요. 나는 모스크바로 갈 생각이오. 그자가 예전에 체리 열매를 먹으며 그랬던 것처럼 결혼식을 앞두고도 그렇게 태연한 태도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지 지켜볼작정이오!" - P33
이 총에 장전된 것이 체리 열매 씨앗이 아닌 게 유감이군…. 총알이 씨앗보단 무겁잖나. 어쨌든 지금 우리가 하려는 건 결투가 아니라 살인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난 총을 들지 않은 상대를 조준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세. 제비를뽑아서 누가 먼저 쏠지 정하자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 P43
집 안의 누구도 두 사람의 도망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 전날 밤에 그녀가 썼던 두 통의 편지는 불태워졌고 하녀는 노부부가 역정을 낼 것이 두려워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사제, 퇴직 기병 소위, 콧수염 기른측량 기사, 소년 창기병은 각자의 이유가 있어서 말을아꼈다. 마부 제레쉬까는 심지어 술 한 잔을 걸친 자리라 할지라도 쓸데없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열 명도 넘는 공모자들은 이런 식으로 비밀을철저히 지켰다. 하지만 열병을 앓는 가운데 끝없이 헛소리를 하던 마리야 가브릴로브나의 경우에는 무심코 비밀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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