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원고를 부탁하면 일단 받아들인다. 하지만 대부분 쓰지못하고 의리를 저버린다. 전에는 이런 일이 별로 없었는데, 날씨가 신체에 영향을 주면서부터 유독 잦아졌다. 부탁받으면 상대방의 성의를 봐서라도 어떻게든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맡았다고 해서 반드시 써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왜냐하면 쓸 수 없을 때 쓰라고 하는 것은 집필자를 죽이는 일이라서다. 집필자를 죽이면서까지 원고를 받으려는 행위는 최초의성의를 사욕으로 바꿔버린다.
- P39

쓸 수 없는 날에는 아무리 해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나는 집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 안이다.
아니, 볼일도 없는데 여긴 뭐 하러 들어왔지. 밖으로 나오다 이번에는 격자문에 머리를 내리친다. "으음, 으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따위 글을 써봤자 뭐가 된단 말인가. 그저 노동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 것을.


-요코미쓰 리이치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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