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죽음의 시간이 불확실하다고 말하지만, 이런말을 할 때면 그 시간이 뭔가 막연하고도 먼 공간에 위치한 것처럼 상상하는 탓에, 그 시간이 이미 시작된 날과 관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또 죽음이 - 혹은 우릴 민저 부분적으로 차지하고 나서 그 후엔 결코 손에서 놓아주지 않는 - 이렇게 확실한 오후, 모든 시간표가 미리 정해진 오후에 일어날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 P11

 길에 놓인 의자는 비록 평형을 잡는다는몇몇 조건에 따르긴 하지만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인간이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려면, 의자나마차 안에서 몸을 기댈 때에도, 대기의 압력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모든 방향에서 행사되므로) 어떤 힘의 긴장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몸을 텅 비우고 대기의 압력을 견뎌 낸다면, 우리가 파괴되기 이전 순간에는 더 이상 무엇으로도 무력화하지 못하는 끔찍한 중압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 P13

마찬가지로 병과 죽음의 심연이 우리 몸속에 열릴 때면, 또 세상과 우리 자신의 육체가 우리에게 덮치는 혼란스러운 동요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때면, 그때 근육의 무게를 유지하고 골수까지 파고드는 전율을 견디면서 평소에는 그저 사물의 소극적인 자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던 그런 부동 자세를취하는 일이나,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안정된 눈길을 유지하는 일조차도 모두 생명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극심한 투쟁이 된다.
- P13

우리는 죽음에 직면하는 순간이 아닌, 여러 달 전부터, 때로는 여러 해 전부터 죽음이 추악하게도 우리 몸속에 살러 온 그 순간부터 자신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본다. 병자는 낯선 자와 대면하고 낯선 자가 자기 머릿속을 왔다 갔다 하는 소리를 듣는다. 물론 그자의 모습을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그자가 규칙적으로 내는 소리를 들으며, 또 그 습관을 짐작한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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