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떠났다. 기차역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시골길로 들어섰는데, 울타리 친 아름다운 목초지 사이로 난 커브 길에서 벗어나 양쪽에 경작된 밭이 있는 모퉁이에 이르는 동안 그 길은금방 콩브레의 길처럼 친숙해졌다. 밭 한가운데에는 여기저기 사과나무가 보였고, 이제 꽃이 지고 암술 송이 밖에는 없는사과나무는, 그러나 나를 매혹하기에 충분했다.  - P115

부인은 단지 그 일이 매력적인 소일거리이며 붓 아래서 태어나는 꽃들이 대단치는 않지만, 그래도 꽃을 그리다 보면 적어도 자연의 꽃들과 더불어 살게 되고, 특히 꽃을 모방하려고 할 때면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그런 아름다움은 결코 싫증나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발베크에서 빌파리지 부인은 눈을 쉬게 하려고 자신에게 휴가를 주고있었다.
- P119

 나무들은 망령처럼나와 함께 데리고 가 달라고, 생명을 돌려 달라고 부탁하는 듯보였다. 그 소박하고도 열정적인 몸짓 속에서, 나는 말을 사용하는 힘을 잃어버린 탓에 원하는 대로 말도 못 하고, 또 우리가 자신의 말을 짐작하지 못할까 봐 안타까워하는 연인의 무기력한 그리움을 알아보았다. 이윽고 교차로에서 마차는 나무들을 떠났다. 내가 유일하게 진실이라고 믿었던, 나를 정말로 행복하게 해 주리라고 믿었던 것으로부터 날 먼 곳으로 데리고 가는 마차는 내 삶과 닮았다.
- P134

내가 우연히 어느 고장을 지나갈 때면, 그때 그것은내게 미학적인 감정보다는 훗날 거기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덧없지만 열광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얼마나 여러 번, 나뭇잎 냄새만 맡아도, 빌파리지 부인의 맞은편 간이 의자에 앉았던 일이, 빌파리지 부인에게 마차 너머로 인사를 보내던 뤽상 - P137

부르 대공 부인과 마주쳤던 일이, 저녁 식사를 하러 그랜드 호텔로 귀가하던 일이 현재에도 미래에도 더 이상 우리에게 되돌아오지 못하는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맛볼 수 없는, 그런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행복의 순간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 P138

"난 할머니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거예요." "그런 소리 하지 마라." 하고 할머니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더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단다. 그러다 만약 내가 여행이라도떠나게 되는 날이 오면 어쩌려고 그러니? 반대로 난 네가 아주 분별력이 있고 아주 행복하기를 바란단다." "며칠만 떠나시는 거라면 난 아주 분별력 있는 아이가 될 거예요. 할머니가돌아오실 시간을 세면서요." "하지만 내가 몇 달을 떠나는 거라면……(그런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몇 해를.....… 또…."
우리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감히 서로를 바라볼 수조차없었다. 그러나 나의 고뇌보다 할머니의 고뇌가 더 고통스러 - P149

운 듯 보였다. 그래서 창가로 다가가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분명한 소리로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습관의 존재라는 걸 아시잖아요. 사랑하는사람들과 헤어지고 나면 처음 며칠은 불행하겠죠.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면서도 익숙해져 가고, 그러다 보면 내 삶은 안정되고 평온을 찾겠죠. 그들과 헤어져 지내는 것도 견디겠죠. 몇 달……몇 년을 ..…."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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