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는 내가 외교관 직을 포기하는 것보다 문학에전념하는 모습을 보는 편이 더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냥 둬요." 하고 아버지가 소리치셨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는 일에 기쁨을 느껴야 하오. 이제는 어린애가 아니잖소. 지금은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알고, 취향도 거의 변하지 않을거요. 또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 거요." 이런 아버지의 말씀이 준 자유 덕분에 앞으로의 내 삶이행복할지 어떨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어쨌든 그날 저녁 이 말은 내게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언제나 아버지의 예기치않은 다정한 몸짓을 접할 때면 아버지의 수염 난 붉은 뺨에입을 맞추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단지 아버지의마음을 언짢게 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 P103

 아버지는 "이제는 어린애가 아니잖소, 지금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알고, 취향도 거의 변하지 않을 거요……."라는 말씀으로 나 자신이 느닷없이 ‘시간‘ 속에 있다.
는 걸 깨닫게 해 주었고, 내가 아직은 정신 나간 양로원 입소자는 아니라고 해도, 작가가 책 마지막에 유달리 잔인하다고할 수 있는 무관심한 어조로 "그는 점점 더 시골을 떠나려고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곳에 정착했다……."라고 말하는 그런 소설의 주인공이 된 듯한 슬픔을 안겨 주었다.
- P105

어쩌면 또한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이 모든 감각 활동들이 우리 시선만으로 감각 너머에 존재하는 걸 알려고 애쓰면서 수많은 형태나 온갖 맛, 그 살아 있는 사람의 움직임에는 너무도 무관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을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움직인다.  - P117

아무리 기억해 내려고 애써도 사랑스러운 그얼굴을 다시 그려 볼 수 없었고, 결정적으로 정확하게 내 기억에 떠오르는 건 회전목마 아저씨나 보리 사탕 장수 아주머니처럼 인상적이지만 별 볼일 없는 얼굴들뿐이어서 짜증이 나곤 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꿈속에서조차만나지 못하는 이들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아는 것만으로도지긋지긋한 그 사람들을 꿈속에서 끊임없이 보게 되면 몹시화가 난다. 고통의 대상을 떠올릴 수 없기에 그들 스스로는 거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질베르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기에 그녀의 존재를 망각하고 그녀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기꺼이 믿었다.  - P117

 내가그의 딸에게 보낸 편지를 스완 씨가 가로챘던 것일까? 아니면질베르트가 날 더욱 조심하게 만들려고 아주 오래된 일을 한참 후에야 고백했던 것일까? 내가 얼마나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는지 모른다고 그녀에게 말했을 때, 질베르트는 사람들이 그녀가 해야 할 일이나 쇼핑 또는 방문에 대해 말했을 때처럼, 망설임과 비밀이 가득한 그런 모호한 표정을 지으면서 갑자기 이런 말을 하고야 말았다. "알다시피 우리 부모님은 널 좋아하지 않아!"  - P1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