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이미 오래전에 침대에 고정되고, 휠체어에 고정돼 있지만내 마음은 언제나 밤이면 야행을 나간다. 밤이면 불구의 몸에서 벗어나고, 대낮의 마법을 벗어나고, 현실을 떠나 속세의 소란함이 잠시 멈춘 밤의 세계를 여행한다. 모든 꿈꾸는 자들의 말을 듣고, 속세의 역할을 벗어던진 떠도는 영혼들이 밤의 하늘과 광야에서 또 다른연극을 하는 것을 지켜본다.  - P148

그때 알았다.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 들었던 소리가 바로 이 성당의 종소리였음을, 바로 저 뾰족한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임을.
저녁노을은 더욱 짙어져 종탑 꼭대기에 햇빛은 이미 사라졌다. 숲에 바람이 불자 참새들은 바람을 따라가고 까치들은 기쁘게 울었다.
종소리는 침착하고 평온하게 오래 울려 퍼졌고, 은은하게 흩날리며저녁노을과 이른 달과 함께 이어져 하늘의 깊은 곳까지 퍼져 나갔다.
어쩌면 땅의 끝까지도.….
- P155

저녁만을 기다렸다. 나는 꾀병을 앓기 시작했고, 어떡하든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있으려고 온갖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지금도 나는 유치원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우는 아이들을 보면 조마조마하다. 저 유치원에서도 혹시 그처럼 무서운 놀이가 있는 건 아닌지 상상한다. 그 생각만 하면 밝은 대낮에도 어디선가 귀신이 배회하는 것처럼 으스스해진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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