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샌가 지금부터 30리 길을 걸어 다음 온천까지 가는 계획을 세웠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절망과 비슷한 감정이 나의 마음에 잔혹한 욕망을 더해갔다. 피로 또는 권태가 일단 그런 감정으로 변해버리면 나는 언제나 마지막까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끝까지 가봐야 했다. 해가 완전히 지고 겨우 그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주변에 아직 빛이 있을 때와는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었다.
- P130

이 얼마나 괴롭고도 절망적인 풍경인가. 나는 나의 운명 그대로인 길 안을 걷고 있다. 이것은 내 마음 그대로의모습이고, 여기에서 나는 햇빛 속에서 느끼는 어떤 기만도 느끼지 않는다. 내 신경은 어두운 전방을 향해 뻗어 있고, 지금은 나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이 얼마나 기분좋은 일인가. 형벌 같은 어둠, 살을 에는 듯한 혹한. 그 속에서 내 피로는 즐거운 긴장감과 새로운 전율을 느낄 수있다. 걸어라, 걸어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걸어라.‘
나는 잔혹할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걸어라. 걸어라, 걷다가 죽어버려라.
- P132

나는 오랜 시간 거리를걸었다. 계속해서 내 마음을 짓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레몬을 손에 쥔 순간부터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 같아서 나는 거리 위에서 굉장히 행복했다. 그렇게도 집요했던 우울함이 이런 과일 하나로 풀리다니, 때로는 확실하지 않은어떤 것이 역설적으로 사실인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가사의한가. 
- P147

발톱 없는 고양이! 이렇게 믿을 곳 하나 없이 슬픈 마음이 또 있을까? 상상력을 잃어버린 시인, 조현병을 앓는 천재와도 닮아 있다.

이런 상상은 항상 나를 슬프게 한다. 이 완전한 슬픔 때문에 이 결말이 타당한지조차 이제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않는다. 그런데 발톱이 빠진 고양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

눈알이나 수염이 빠진다면 고양이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드러운 발바닥 안의 껍질 속에 숨겨져 있는, 갈고리처럼 굽고 비수처럼 날카로운 발톱! 이 발톱이 고양이의 활력이자 지혜이며 정령이고 전부라는 사실을 나는믿어 의심치 않는다.
- P158

그것은 자못 필연적인 싸움이었다. 발단이라고 한다면내가 그 남자의 술을 거절한 일이다. 평소에 나는 그 남자에게 악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마음을 한 치도 괴롭힐 만한 싸움이 아니다. 네마음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건 겁쟁이 기질뿐이다. 당당하게 결투하라.

부상을 두려워하지 마. 그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로써 너의 겁쟁이 기질도 흘러나올 테니.
- P175

그림자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닙니다. 점점 모습이 드러나면서 그림자는 자신의 인격을 갖기 시작하고, 그와 동시에 이쪽의 자신은 점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달을 향해 스르르올라갑니다. 그냥 마음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에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뭐랄까 영혼이라고 할까요. 영혼이 달에 - P188

이 골짜기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휘파람새와 박새도 하얀 햇빛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나무의새싹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몽롱한 이미지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해. 그런 균형이 있어야 비로소 내 이미지가 명확해지거든. 내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하게 메말라 있어. 내 마음속 우울함이 완성될때만 내 마음은 온화해지지.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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