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어찌되었든 사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종이봉투를껴안고 걸으면서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은 아무튼떨려나지 않게 매달려 있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나는 어딘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장소에.
- P87

고양이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왜 지금 갑자기 돌아왔는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고양이에게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너 대체 일년 가까이 어디서 뭘 하다 온 거니. 잃어버린 너의 시간의흔적은 어디 남아 있는 거니 하고,
- P98

나는 고양이가 돌아온 마침 그때에, 내가 삼치를 사 왔다는게 기뻤다. 그 사실은 고양이와 나에게 축복해야 할 좋은전조처럼 생각되었다. 이 고양이에게 삼치라는 이름을 지어 주자고 생각했다. 나는 고양이의 귀 뒤를 쓰다듬으면서,
알았어, 너는 이제 와타야 노보루가 아니라 삼치야 하고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럴 수 있다면 그 이름을 온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알리고 싶었다.
- P99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영수증을 가져와요. 비용은 우리 쪽에서 지불할 거니까.
가능한 한 고급한 것을 사도록 하고, 그리고 세탁비도 지불할 테니까. 한 번이라도 입은 와이셔츠는 반드시 세탁소에보내도록, 알았어?"
- P107

 우물 속은 따뜻하고 고요하고, 깊이 숨겨진 대지의 푸근함이 내 피부를 진정시킨다. 파문이 잔잔해지듯 내 가슴속 아픔도 점차 잦아든다. 그 장소는 나를 받아들이고, 나는 그 장소를 받아들인다. 방망이를 꽉 잡는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 머리 위를 바라본다.
- P117

 몇 번 심호흡을 하고, 깊은 원통형 암흑의 공간에 몸을적응케 한다. 여느 때와 똑같은 냄새가 나고, 똑같은 공기의감촉을 느낀다. 우물은 전에 한 번 완전히 메워졌던 적이 있지만, 공기만은 신기하리만큼 예전과 똑같다. 곰팡내가 나고, 조금 눅눅하다. 내가 처음 이 우물 속에서 맡았던 것과똑같은 냄새였다. 우물 속에는 계절도 없고, 시간도 없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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