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를 수용할 장소도 그들을 위한 식량도 없으니, 죽일 수밖에없는 겁니다. 이건 잘못된 일이에요. 난징에서도 몹쓸 짓을참 많이 했습니다. 우리 부대도 마찬가지였어요. 수십 명을우물에 던져 넣고, 위에서 수류탄 몇 발을 던집니다. 그 외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짓을 했어요. 소위님, 이 전쟁에 대의 따위는 없습니다. 이건 그저 살육이에요. 그리고 짓밟히고 죽는 것은 결국 가난한 농민들입니다. - P295
일본을 생각하면 자신이 어째 세계의 끝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마르고 더러운 풀과 빈대만 버글거리는 광활한 토지를놓고, 군사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거의 아무런 가치가 없는불모의 땅을 놓고, 목숨 걸고 싸워야만 하는지 저는 이해할수 없었지요. 고향 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저 또한 목숨을버려 가면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곡물 한 포기자라지 않는 허허벌판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리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 P302
정말 깊은 우물이었습니다. 제 몸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꽤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기껏해야몇 초였지, ‘긴 시간‘이라고 할 만한 시간이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어둠 속에서 떨어지는 동안, 저는 실로 많은 생각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먼 고향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출정하기 전에 딱 한 번 품었던 여인을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게 남동생이 아니라 여동생이있다는 것을 다행스러워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죽더라도, 적어도 그녀만은 징집되는 일 없이 부모님 곁에 남을 수 있습니다. 저는 찹쌀 경단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몸이 마른땅에 부딪쳤을 때, 저는 그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 P337
저의 진짜 인생은 그 외몽골의 사막에 있는 깊은 우물 안에서 끝나 버렸다는 겁니다. 저는 그 우물의, 하루에 10초에서 15초 정도 비추는 강렬한 빛 속에서, 생명의핵을 전부 불태워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빛이 제게는그 정도로 신비했습니다. 뭐라 잘 설명을 못하겠습니다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그 이후로 저는 뭘 봐도, 어떤 경험을 해도, 마음속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 P352
저는 한쪽 팔과 십이 년이라는 귀중한 세월을 잃은 후에야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히로시마로 돌아가 보니, 부모님과 여동생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군요. 여동생은징용되어 히로시마 시내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다 원폭 투하 당시에 죽었습니다. 아버지도 그때 마침 여동생을 보러갔다가, 역시 목숨을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자리보전을 한 끝에 1947년 세상을 등졌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속으로 결혼을 다짐했던 여인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묘소에는 제 무덤이 있었습니다. 제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저는 자신이 정말 텅 빈 껍데기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던 거지요. - P353
야마모토는 제 꿈속에서, 수도 없이 거죽이 벗겨져 뻘건 살덩이로 변했습니다. 그가 내지르는 비통한 비명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저는 우물 속에서 산채로 썩어 가는 꿈도 몇 번이나 꾸었습니다. 때로는 꿈이 진짜 현실이고, 이렇게 살아 있는 저의 인생이 오히려 꿈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 P354
혼다 씨가 할하강가에서, 제가 중국 대륙에서 죽는 일은없다고 했을 때, 저는 기뻤습니다. 그 말을 믿고 안 믿고를떠나, 그때 저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아마 혼다 씨는 그런 제 심정을 알고, 저를 진정시키기 위해 가르쳐 주었던 거겠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기쁨도 아무것도없었습니다. 일본에 돌아온 후로, 저는 언제나 속이 텅 빈 허물처럼 살았습니다. 그렇게 허물로 오래 살아 봐야, 그건 진정으로 산 게 아닙니다. 허물이 된 마음과, 허물이 된 육체가낳은 것은 껍데기 인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오카다 씨에게 이해를 구하고 싶은 것은, 사실은 그 부분뿐입니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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