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했어야 했다. 그러나그렇지 못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어머니로서는 무척이나고통스러웠을 양보를 하셨으며, 나를 위해 품어 왔던 이상을어머니 쪽에서 처음으로 포기하셨으며, 그토록 용감했던 어머니가 처음으로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승리를 거두었다면 그건 어머니에 맞서 얻은 승리였고, 병이나 슬픔 혹은 나이가 그런 것처럼, 내가 어머니의 의지를 약화하고 이성을 굴복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얻은 승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날 밤은 나에게 새로운시대가 시작된 날로, 슬픈 날로 남을 것이다.  - P75

 엄마는 그 문장들을 적절한 어조로 공략하기 위해, 문장 이전에 존재하면서 문장을 구술하게 한, 하지만 단어자체에는 표시되지 않은 따뜻한 억양을 찾아내셨다. 그 억양덕분에 엄마는 책을 읽으면서, 동사 시제에서 느껴지는 온갖생경함을 완화했고, 반과거와 단순과거에는 선한 마음이 깃든 부드러움과 다정함이 깃든 우수를 부여하셨다. 그리고 한문장이 끝나면 다음 문장으로,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읽어 가면서, 길이가 다른 문장을 균등한 리듬으로 만들었고그렇게도 평범한 산문에 일종의 감상적이고도 연속적인 생명을 불어넣으셨다.
- P82

내 마음의 가책은 가라앉았고, 나는 어머니가 내 곁에 있어주는 이 밤의 감미로움에 몸을 내맡겼다. 나는 이런 밤이 두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았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대해 품고 있는 가장 큰 욕망, 이처럼 슬픈 저녁 시간에 어머니를 언제까지나 내 방에 간직하고 싶어 하는 이 욕망은 생활의 필요나 다른 사람들의 소망과는 너무나 상반되어서, 오늘 밤처럼 그 욕망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뭔가 어색하고 예외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이면 고뇌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엄마가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을 테니까!  - P83

우리 과거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 P85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 P86

 그러나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
- P90

작은 종잇조각들을 적시면,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면서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작은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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