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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일본의 미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1년 2월
평점 :
강상중 저자의 전작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을 작년 6월에 읽었는데 다시 신작이 나와서 반가웠다. 여러 권의 그의 저서를 읽고 재일 한국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알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해에 태어난 저자는 죽음의 이미지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으며 이러한 전쟁의 종말에 관한 책을 쓰고 싶었다 한다. 2003년에 출판된 『일조 관계의 극복』과 같이 그런 연장선에서 쓰인 책이지만, 이 책은 남북의 통일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체념과 타협 속에서 쓴 책이라고 해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그 어느 때 보다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과정을 짚어보면서 서로가 성장과 발전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상호협조해야 하는지 진단하며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세계 경제가 혼란한 상황에 빠지고 각자 자국을 위한 내셔널리즘에 빠져있는 위기의 상황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는 낙관론을 제시하고 있어서 시선을 끌었다. 한일관계는 물론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벌인 외교 협상과 합의, 조약들을 언급하고 있어 정치사적인 흐름을 알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1. 전환의 위기 2. 북한은 왜 붕괴하지 않았을까? 3. 남북 화합과 ‘역코스’의 30년 4. 전후 최악의 한일관계 5. 코리아 앤드 게임 6.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 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냉전하에 형성된 현재 한반도의 분단 체제,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새로운 질서 구축, 이 새로운 질서 구축에 일본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일본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일본의 미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적, 지정학적으로 볼 때 일본이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고 말한다. 남북한 문제나 한일관계를 둘러싼 정치 상황에 대해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을 전체적인 선에서 살펴볼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
한일관계는 어떻게 과거 어느 때보다 최악의 상황이 되었을까.
지금까지 그럭저럭 유지되던 한일관계가 결정적으로 어긋나게 된 사건은 ‘강제징용 판결’이 나오면서부터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양국 사이의 청구권은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간주되었으나 2018년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명령을 확정하며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하면서 일본은 큰 충격을 받는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2019년 8월 수출 관리 화이트국에서 한국을 제외하게 되고 이에 반발하여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북한은 왜 붕괴하지 않았을까.
「제네바 합의」를 불과 몇 달 앞두고 김일성이 급사하고 북한이 조기 붕괴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무성했지만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 후 몇 년 동안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국교 정상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놓쳤다고 한다. 또 북한이 붕괴 될 거라고 믿었던 미국은 조시 부시 정부는 북한에 대해 강경 노선으로 돌아서고 이 과정에서 북한의 거듭된 도발과 배신이 비핵화를 실현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정책적으로 명확하지 않고 일관성이 부족했던 미국과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곧 붕괴될 거라는 희망으로 북한 측에서 보내오는 교섭을 주저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희망 사항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는 북한이 원하는 체제의 존속을 인정하면서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남북화합을 향한 잃어버린 30년
여기서 말하는 30년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보다 앞선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과 2019년 북미 정상이 만난 극적인 장면까지 과정을 다루고 있다.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비핵화와 동시에 남북 화해의 시도들이다. 좀 생소한 단어였는데 ‘피스키핑(Peace keeping)’(휴전선의 유지, 고정) 과 ‘피스메이킹(Peacemaking)’(휴전선 해체와 평화협정 체결에 의한 평화 체제 확립) 으로 정권의 지도자의 성향을 설명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적 미숙함과 더불어 일본과의 마찰, 대북 관계의 냉각, 미국과의 불협화음을 겪으며 ‘피스메이커’로서의 입지가 좁아졌으며, 오바마 정권은 동북아의 혼란에 대해 ‘전략적 인내’로 대응한 결과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한다. 이것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해결에 있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냉전시기에 미국에 끌려다니던 것에 비하면 북한과 미국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한국이 적극적으로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수 있는 점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최악의 한일관계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한일 양국이 현재와 같이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은 역사 인식의 한계에서 빚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문제는 1980년대 초 이후부터 대두되었다고 한다. 애매모호한 합의라고 할 수 있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 보상이 아닌 ‘경제 협력 방식(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등의 내용은 양국이 서로 다른 의도로 맺어졌기에 해석에 따른 깊은 골이 있었다. 한일 공동 개최한 월드컵 경기나 한류 붐을 촉발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때도 있었지만 현재 상황은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최악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이 2007년 1월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 일본계 미국인 마이크 혼다 의원이 제출한 ‘일본 정부는 위안부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결의안이었다. 한일 양국의 역사 문제를 넘어 국제적 여성 인권 문제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제징용 문제가 제기되고 그에 대한 보복 조치로 수출 관리 화이트국에서 한국을 제외로 이어진 배경, 일본 불매운동, 지소미아 파기의 위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과정의 사례를 읽으면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역사적으로 볼 때 원래 이웃 나라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국가간의 교류가 중단된다면 여행, 문화의 단절을 야기하고 심각한 경제적 파국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까지 양국이 바라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일 기본조약」을 필수적으로 상호 준수는 물론, 독일의 경우를 거울삼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국민감정에 발을 맞추어 양국이 타협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5장에서 셀리그 해리슨(Selig S. Harrison)의 명저 『셀리그 해리슨의 코리안 엔드게임(원제: Korean Eㅜ오흗)』에서 영감을 얻은 내용으로 남북 통일을 향한 역사의 나선형 계단을 언급하며 희망을 얘기한다. ‘엔드 게임’이란 전쟁과 대립이 종식을 향한 최종 단계에 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선형 계단을 언급하면서 남북의 공존과 통일,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여정도 역사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고 있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한다.
이제 더이상 ‘혐한’과 ‘반일’에 갇혀 있을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초유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파탄 직전으로 내몰린 상황을 우리는 충분히 목격하였다. 이제 이렇게 비타협적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코로나19 사태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故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오마주로서 쓴 것임을 밝히고 있다.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햇볕 정책이야말로 남북의 관계개선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핵심이라고 인식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이 정치를 다루는 일선에서 많이 읽혀서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하는데 좋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한쪽 편에서 바라보며 예민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냉철한 사고로 해석하고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보통의 독자라도 지금의 한일관계를 낳게 한 배경과 양국의 정치적인 상황이나 미래에 대한 관심으로 읽는다면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영원한 ‘디아스포라’라는, 스스로 '변경을 몸에 두르고' 살아간다는, 양국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과 애정이 담긴 강상중 저자의 얘기라서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