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는 숲길을 나만 아는 속도로 천천히 걸어볼 때, 식물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속에서 아무 할 일 없는 무위의 인간(Homo Otiosus)‘이 되어 잠시나마 인생의 달디 단 휴식을즐겨볼 때, 심신에는 이를테면 적막 같은 것이 찾아든다.
이 적막 같은 것을 나는 나지막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숲은 우리를 나지막하게 해준다. 숲에서 충분히 쉴 때, 우리 안의 말소리와 욕망의 높이는 낮을 대로 낮아진다.
- P91

평온한 쾌활함이란 자기의 삶을 즐겁게 통솔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마음의 여유, 무사태평한 마음, 타자를 향한 호기심과 관용, 경탄하는 마음, 무한으로 자신을 개방할 수 있는 능력,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함축한다. 에피쿠로스, 데모크리토스, 세네카 같은 서구의 철학자들 그리고 노자나 소강절 같은 중국의 사상가들이 말한 ‘평정의 즐거움‘ 말이다.
- P96

평소 오감각을 너무 적게 쓰고 살아가는 사무형 인간이라면, 신체의 상부에 혈류량이 지나치게 많았다면, 노동하고 생산하면서 교감신경을 과다하게 활성화시켰다면, 숲에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감각이 있는 한 우리는 이곳 숲에서치유된다.

숲은 자활(自活), 자가 치유의 장소다.
- P100

풍경이 내면으로의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되레 도와줄 때가 있다. 그 순간 숲의 경관은 걷거나 바라보는 산책자의신체에 감겨온다. 어머니의 자궁에 감싸인 태아가 자궁의 환경을 자신과 이질적인 환경으로 느끼지 않는 것처럼, 어느 순간 바깥 경관은 산책자의 실존을 감싸준다.

이런 순간을 체험하려면, 우리는 숲길에서 인간이라는 지위를 과감히 포기하고 서둘러 그리고 적극적으로 동물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동물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야만 상태로 전락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주에서 받은 동물의 오김각을 되살려야 한다는 뜻이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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