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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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드 <런치의 여왕><하얀 거탑>을 정말 재미있게 본 적이 있는데 그 작가의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조건 읽어도 실망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읽어나갔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주인공급의 생생한 인물 묘사를 통해서 아키쓰 역은 누구, 마코토역은 아, 그 배우가 어울리겠군, 상상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전에 본 일드가 생각났다. 금융권을 소재로 한 이야기인데 남녀 콤비 직원이 의뢰를 받고 은행의 부조리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해당 점포를 방문하고 조사를 통해 원인을 밝혀내고 징계를 하는 내용이었다. 조직 사회는 수직관계의 특성상 편파적인 상황을 낳고 여러 가지 부조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부하직원들은 억울해도 그런 상황을 떠안게 되는데 실제로도 그런 시스템이 있다면 직장생활 할 만하지 않을까 했었다. 두 콤비의 역할이 악당을 혼내주는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후련함을 느꼈던 기억이다.


  이 작품도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괴롭힘 문제를 다룬 이야기다. ‘파워하라라는 원래 단어 ‘Power Harassment’(パワ?ハラスメント)의 줄임말이다. 실제로 이런 전담 부서가 설치된 회사가 있을까. 직장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희롱, 성차별, 근무조건, 승진 등을 둘러싼 온갖 억울한 일도 많을 것이다. 부조리한 면을 줄이고 서로 열린 마음으로 의사소통할 수 면 살맛나는 일터가 되지 않을까. 아마도 좀처럼 그런 일이 없으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대리만족으로 위안을 삼거나 선순환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쿄에서도 먼 지방 도야마 추오점 점장으로 근무하던 아키쓰는 이례적인 인사 발령 전화를 받는다. 마루오 홀딩스 도쿄 본사 컴플라이언스실 실장으로. 이 갑작스런 발령은 마루오 슈퍼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던 완전 안심크림빵에서 1엔짜리 동전이 나온 사건이 터졌기 때문인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키쓰는 명령을 받고 움직일 뿐이다. 7년 전 부하직원에게 파워하라를 했다는 이유로 좌천된 자신이, 도쿄 본사에 그것도 사내 해러스먼트를 다루는 실장으로 임명되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쨌든 이 사건부터 해서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실장의 임무다. 더구나 기존 슈퍼와는 다른 고차원의 시나가와 점 오픈을 3일 앞둔 시점에 벌어진 사건에 사장을 포함한 임원진들의 분위기는 긴박한 상황이다.


  한편 마코토는 전임 실장 구리하라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서 2주 동안이나 공석인 중에 최강의 상사를 보내주겠다는 마루오 사장의 말을 듣고 왠지 불안한 마음이 되는데. 와키타 상무의 파견 비서 미나코로부터 미리 아키쓰의 명함을 건네받은 마코토는 깜짝 놀란다. ‘최강의 실장이라는 상사가 지방의 점장이었다니. 대면 장면도 참 웃겼다. 마코토에게 선배라는 호칭을 붙이며 너스레를 떠는 아키쓰를 보고 새초롬해지는데... 이 둘은 최강의 콤비가 될 수 있을까. 여기에 법률 고문으로 야자와 변호사가 함께 하게 되는데, 처음엔 모래알처럼 따로 노는 듯 불안해 보였지만 차츰 마음을 열고 호흡을 맞추어가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첫 번 째 크림 빵 사건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피해자 오가와 마이의 집에 가서 얘기를 듣고 빵을 사간 렌마점을 들러본다. 아키쓰는 벌써 탐정의 촉수가 느껴진다. 마이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고 하니 변호사 야자와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멋대로 녹음했다며 따를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7년 전 부하직원의 배신으로 좌천당하고 쓴맛 단맛 다 겪어본 아키쓰가 이런 일로 주춤하지 않는다. 예전 점포개발부에서 날렸던 추진력이나 판단력이 다시 돌아온 듯하다. 렌마점에서 방범 카메라 영상을 확보해서 분석해 보니 44초의 영상이 잘린 것을 알아낸다. 비밀은 그 44초에 있을 텐데...


  왜 하필 1엔짜리 동전이었을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렌마점에서 일하는 주임 사사베는 아버지 친구 마루오 사장의 연줄로 입사했는데 본사에서 쫓겨나 잔뜩 위축되어서 일도 변변히 못하고 파트타이머들에게 짐짝 취급을 받다 주의를 준 모토 점장에게 원한을 품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불특정인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다니 무서운 세상이다. 1엔짜리 동전은 뢴트겐에 찍히지 않는 경우가 있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사사베의 잘못을 사정없이 추궁한다.


왜 점장님이 1엔짜리 동전을 주우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건 당신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두세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주의 한 번 주지 않는 것을 방치라고 합니다. 그게 훨씬 더 잔혹하고 무자비한 파워하라입니다.”(P70)


, 이런 말을 하는 아키쓰, 정말 멋졌다

잘못을 보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폭력인가.


  사건의 전말을 밝혀냈지만 이것을 어떻게 공개할 것인가가 문제다. 결국은 짜인 각본대로 엄중히 조사를 했지만 어떤 경로로 이물질이 혼입되었는지 판명되지 않았고 제조된 빵을 전부 회수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으로 공표한다. 물론 사사베의 잘못도 묻힌 거나 다름없다. 진실을 그대로 밝혔을 때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진실을 밝히는 일에서 이익의 여부를 먼저 따지게 되는 상황에서는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언제나 약자의 손해보다 강자의 이익이 중시되는 사회가 아닌가.


  또 이어지는 시나가와 점 오픈을 코앞에 둔 시점에 파트타이머 18명이 전부 그만두겠다는 사건, 상품개발부 도쿠나가의 블랙육아 사건, 수도권 개발부장 히데미의 집단 따돌림의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한다. 여기엔 아키쓰 실장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탐정 기질의 촉수가 발휘되고 있다. 눈치가 빠르고 추리력이 단연 돋보였다. 컴플라이언스실 특성 상 사원 메일을 볼 수 있다는 비밀을 마코토가 말하자, ‘1엔짜리 동전을 키워드로 검색하는 부분은 기발했다.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솔직함과 치밀함도 엿보였다. 미리 식당 할인권을 뿌려놓고 개발부원의 회식장소 옆방에 자리잡고 우연을 가장하여 현장을 덮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아키쓰의 일 처리 방식에 불만이던 마코토와 변호사 야자와도 감탄사를 내두르게 된다.


  마지막에는 도쿄 쓰키지의 마루오 슈퍼에서 벌어진 카스하라 사건이다. 상품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트집을 잡으며 난폭한 행동을 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현장에 가서 잘 무마시킨 아키쓰는 그 즈음에 이 일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와키타 상무의 파워하라를 조사하라는 사장의 밀명도 떠올리며 거절할까 생각도 하지만 그것이 빌미가 되어 다시 좌천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등... 그러다가 아키쓰가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키쓰의 휴대폰으로 123억 엔을 내놓으라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며 회사는 발칵 뒤집어진다. 암호 같은 숫자 123은 무엇을 뜻하는가. 과연 아키쓰는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기지를 발휘하여 살아 돌아오는데, 그 장면도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정말 인기 있는 드라마 작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와키타 상무가 왜 자신을 배신했는지 그 궁금증이 비로소 풀린다. 납치사건의 내막에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권력자의 검은 마음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결국 하나의 괴롭힘은 또 하나의 괴롭힘을 낳고 서로 게임을 벌이는 형국의 이야기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관계 속에서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는 이면에서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삶의 단면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존재이지 않을까. 공감할 수 있는 소재여서 재미있게 읽었다. 관련 드라마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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