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성춘택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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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초,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을 읽고 나서 어렴풋하게만 알던 고고학의 세계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 30년 동안 발굴의 현장을 누빈 고고학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단순히 무덤 속에서 황금을 꺼내는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이었다.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언젠가는 과거를 남기게 마련이다. 파괴해야만 고고학이 성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쟁과 비슷하다는 점을 언급한 것도 흥미로운 아이러니였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만나게 된고고학의 역사가 시선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고고학 분야 최고의 대가가 쓴 훌륭하고 매력 넘치는 읽을거리.’

산뜻하면서도 매력 있고 이해하기 쉬운 책

정통하고 활력이 넘친다.’ 등등...


 많은 학자들의 추천 평도 솔깃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재미있었다. 4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루하고 지루한 연대기적 구성이 아니라 중요한 사건과 흥미로운 발굴, 인물을 위주로 다루고 있다. ‘역사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딱딱함은 전혀 없다. 학창시절 무조건 외워야 했던 역사적 사건이 환해질 만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 이다. 고고학은 물론 생태학, 지질학, 문화인류학 등을 함께 만날 수 있는 통섭의 식탁이라고 할까. 변화무쌍한 시대의 변화처럼 고고학도 진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땅을 파지 않고도 땅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니. 리모트센싱 기술로 파라오와 관련된 의학 지식을 해명하고 인골의 치아 에나멜 표본을 분석하여 사람들이 어디에서 태어나 성장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과거 사람들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생생하게 되돌려 놓는다.


고고학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고고학 이야기는 지주와 여행가의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고고학이 탄생하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인데 초기에는 오래된 유물에 관심을 갖고 수집하는 호고가(好古家)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10대 시절, 비오는 날 부모님과 함께 잉글랜드 남부의 스톤헨지(Stonehenge)를 보고 나서 고고학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10대 어린 남자 아이가 큰 돌 사이를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글을 읽어 나가다 보면 저자가 자신의 일에 얼마나 열정적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고고학이 중요한 이유, 고고학과 인류의 삶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설파한다. 고고학이 출발할 때만해도 지구상에서 인류의 역사가 6,000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발굴과 증명을 통해 300만 년 이전으로 돌려놓는다. 앞으로 또 어떤 발견이 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만큼 과거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는 존재가 또 있을까 싶다. 아마도 태고부터 유전자에 그런 것이 새겨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과거에 대한 호기심과 과거지향적인 관습적인 생각이 고고학을 발전시켰을 지도 모른다.


고고학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고고학은 우리 인류를 찾게 해준다. 고고학은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공통 조상을 밝히고, 인간의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알려준다. 우리는 놀랍도록 다양한, 모든 곳의 사람들을 연구한다. 고고학은 인간이다.’(P21)


 저자는 이 책에서 고고학의 지향점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한다. 그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도 가치가 있겠지만 궁극적인 것은 인간을 연구하고 그 들의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며,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성찰할 수 있다고 하겠다.


고고학은 어떻게 세계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게 되었을까


 군사전략의 천재였던 나폴레옹이 고고학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집트를 재조직하는 일에 골몰하면서도 여러 분야의 학자들을 구성했는데 그 중 지도자인 드농은 고대 이집트를 학문 세계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정복 전쟁에 실패하고 이국적인 이집트 미술과 건축에 열광하던 유럽인들의 경쟁에 밀려 그들의 진지한 조사결과는 부각되지 못한다. 이때만 해도 고고학이라는 학문은 태동되지도 않았고 너도나도 보물 사냥에 나서던 때였다. 한편 존 가드너 윌킨슨은 유물에는 관심이 없었고 명문과 기념물, 고분을 필경했으며 진정으로 과거를 연구하는 사람이었는데 베껴 그린 상형문자가 나폴레옹의 학자들보다 더 훌륭했으며 현대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놀랄 만큼 정확하다고 한다. 샹폴리옹의 상형문자 해독과 윌킨슨이 가진 열정과 노력으로 학술적 연구가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고고학을 전 세계적 학문으로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한 그레이엄 클라크를 배출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고고학을 단순히 오래전 인간 사회에 대한 연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토록 좁은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저 고고학 발굴과 유물만으로 과거를 복원할 수는 없다. 고고학은 생물학이나 지질학 같은 다른 학문과 함께 발달했다. 인간의 기원 같은 어려운 주제를 마주할 때는 여러 학문의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동물 화석과 지질학을 모른 채 인류의 기원을 이해할 방도는 없었다. 서기전 4004년 이전에도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주려면 돌과 흙층에서 오래전 절멸 동물과 사람이 같이 살았다는 증거가 필요했던 것이다.(P72)


 1859, 과학계와 고고학에서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한다. 존 에번스와 조지프 프레스트위치가 솜 강변에서 주먹도끼와 매머드 뼈를 보고 돌아온 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으로 폭탄선언을 한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란으로 고고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새로운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다시 자연선택이라는 기제가 논의되고 12년 후 인간의 유래에서는 진화의 문제를 탐색한다. 종교계의 반발도 있었지만 사회과학자인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1820-1903)에 의해 사회진화론이 등장하게 된다. 이로써 인간 사회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사회로, 점차 고도로 다양한 사회로 발달했다는 그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고고학자가 되면 좋을까


고고학자가 되기를 동경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읽다가 이 문장을 발견했는데 인상적으로 느껴져서 소개해 본다.


 유물 분석 전문가가 되려면 특별한 인성도 필요하다. 유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특히 더 그러하다. 끝없는 인내와 흔히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세세한 특성을 물고 늘어지는 열정과 과거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 작업이다. 몬텔리우스는 그런 성품을 갖추고 있었다. 훌륭한 언어학자로서 느긋하면서도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여러 강의에 나서면서 고고학을 대중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하기도 했다.(P113)


 몬텔리우스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국립역사박물관에서 일생을 보내면서 관장의 자리까지 올랐는데, 수집과 유물을 다루면서 생애를 보낸 최초의 박물관 고고학자 중 하나라고 한다. 그는 교차편년방법을 개발했으며 고고학의 성과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임할 때, 그 분야에서 빛나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고고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흔히 고고학을 떠올리게 되면 왕족들의 화려한 보물이나 장엄한 건축물을 먼저 떠올린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그늘에 가려진 이름 없는 백성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의 파이윰 분지의 카훈(kahun)에 있는 일꾼들의 마을 조사에서는 일반인들의 잔혹한 삶이 드러난다.


 보통 사람들은 들에서 일해야 했을 뿐 아니라 적은 배급만 받고 공공사업에 동원되었다. 인골에는 고된 노동의 흔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힘들고 단조로운 삶이었다. 그러면서 나라와 지도자를 떠받쳤지만, 이 사람들의 의도와 취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거대한 기념물과 고분에 관심을 가졌던 그 당시 대부분 사람들과 달리 페트리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된 노동에 의지했던 복합사회였음을 알고 있었다.(P169)


 파라오 세누스레트 2세의 엘라훈 피라미드를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고된 삶을 말해주고 있다.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우리 역사나 다른 나라에서도 이름 없는 소시민들의 가혹한 역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연대를 측정할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세월을 어떻게 측정하는 것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미국의 화학자였던 윌러드 리비Willard Libby (1908~1980)는 시카고 대학에 재직하며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고안하기 시작하는데, 고고학 유적을 역년에 따라 연대 측정을 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결국 노벨상을 받게 된다.


그것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우주 광선이 대기 중의 질소를 만나 14C라는 방사성탄소가 일정하게 생긴다고 가정한다. 일반적인 비방사성의 탄소와 함께 공기 중의 14C도 광합성을 통해 식물에 흡수되고 동물도 식물을 먹음으로써 방사성탄소가 몸에 들어간다. 동물과 식물이 죽으면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끊겨서 더 이상 방사성탄소가 들어오지 않는데, 이 순간부터는 방사성인 14C는 일정한 비율로 붕괴하여 그 함량이 줄어들게 된다. 즉 죽은 식물, 나뭇조각, 뼈에 남아있는 14C의 함량을 측정하면 얼마나 오래전에 죽었는지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표본에서 방사성탄소의 함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5,730년이라고 결론짓기에 이른다. 가히 고고학 연구에 있어 혁명이라고 할만 했다. 고고학은 여러 학문이 연결되어 통합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엿보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심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진시황 이야기다. 영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맸지만 중국을 통일하고 겨우 11년 만에 마흔 아홉 살에 죽음을 맞이한다. 1974년 무덤으로부터 2.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물을 파던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는데. 장정 70만 명이 땅을 파서 무덤 공간을 만들었다니 그 규모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시황제의 병마용은 국제적인 관심을 끌며 수십만 명이 찾아오는데 공기 오염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단다. 발굴 과정에서 테라코타 병마용이 훼손되는 문제도 있지만 수은 중독의 위험 때문에 시황릉의 봉분은 발굴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을 이야기한다. 당시 수은은 영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는데... 지나친 욕심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화를 부른다고 했던가. 저자는 리모트센싱, DNA, 동위원소 분석 등 세련된 과학적 방법으로 화려한 시황릉의 놀라운 발견을 기대하고 있다.


아이스맨 외치의 삶이 밝혀지다.


 ‘아이스맨 외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늘날 고고학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다. 19919월 독일의 등반가 헬무트 지몬 부부는 알프스 산 골짜기에서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역 검시관은 등반사고의 희생자로 여겼지만 시신의 상태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판단 아래 고고학자를 불렀는데... 전문가들이 시신을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서기전 3150년 사이 유럽의 신석기시대 말~청동기시대 초의 연대로 밝혀진다. 사고 당시의 키와 나이 등 무슨 일을 하며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든 것을 밝혀낸다. 무려 5,000년 전에 죽은 사람을 말이다! 집안에서 마신 연기 때문에 검어진 폐, 끊임없는 노동으로 인해 갈라진 상처, 비어있는 위장으로 배고픔에 허약해진 상태를 읽어낸다. 하지만 DNA분석으로 네 명의 적과 싸우다가 화살을 맞고 피를 흘려 죽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마치 탐정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이렇게 놀라울 만큼 완전하게 한 사람의 생애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알프스 산에서 냉동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신 의학 기술은 고고학 연구에서도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의료 영상 분석으로 미라를 벗기지 않고도 연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된 뼈에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하고 한 사람이 살았던 일생을 밝혀낸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사람이 죽으면 살았을 때 다친 부분이 멍으로 남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뼈가 있는 말이었다.


고고학의 미래는 어떨까.


 고대의 유물과 유적을 발굴하고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한 고고학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추어적인 형태에서 세계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고고학계에서 여성 고고학자들의 활약도 볼 수 있었다. 사막 여행가이자 정부의 관료였던 거트루드 벨과 발굴가로서 미국 고고학을 개척한 학자로 칭송을 받는 해리엇 보이드 호스의 발자취는 고고학자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저자가 자주 언급한 이야기가 있는데, ‘고고학은 늘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또 발굴은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발굴 방법으로는 제대로 연구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크고 복잡한 앙코르와트를 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 기술을 이용하여 인구를 추산하고 밀림이 아니라 도시 한가운데 위치했던 흔적을 찾는 과정은 놀랍기만 하다. 최근에는 드론까지 동원되어 고고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하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고고학은 이제 전문가들만의 분야는 아닌 것 같다. 현재는 언젠가 과거가 된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도 언젠가 과거는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과거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과거를 통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현실이 조금 지루하고 허탈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속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탐정소설처럼 흥미롭고 생생한 이야기 속에서 눈을 뗄 수가 없을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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