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심리학
윤현희 지음 / 믹스커피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그림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여러 책 속에서 만남을 거듭하면서 점점 알고 싶어졌다. 어린시절에는 벽이든 아무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끄적거리곤 했는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왜 그림과 멀어졌을까. 바쁘게 살아가는 생활 패턴도 있겠지만, 제도권 교육도 그에 일조하지 않았나 핑계를 대본다. 인상파, 후기인상파, 입체파 화가 등의 이름을 외우고 그림의 제목을 암기해서 시험을 치른 경험 말이다. 문학을 넘어 미술, 음악 등 다양한 관점의 접근으로 치유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책들이 많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이다. 그림을 접하고 보니, 인간의 창조적인 천재성이 만들어낸 걸작이자 인류 최초의 예술 작품이라는 알타미라 동굴이 떠오르고, 인간의 역사에서 시각언어인 그림이 문자보다 더 먼저였다는 것에 수긍하게 된다.

 

 이 책은 심리학자인 저자가 부친을 떠나보낸 슬픔을 위로받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많은 예술가들의 그림에 공명하고 심리학적인 접목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왠지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화가들의 내밀한 삶의 이야기까지 소개하고 있어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의 인생에 대한 소회도 담고 있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고 미술 작품을 읽어내는 능력이 한 발짝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긍정심리학, 아들러 심리학, 게슈탈트 심리학 등 다양한 심리학을 만날 수 있다. 문학작품에서 작가의 삶이나 가치관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림에는 그것을 온전히 드러낸다고 해도 좋을 만큼 오롯이 화가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었다.

 

1장 나이브 아트와 긍정심리학 2장 아방가르드 화가들과 아들러 심리학 3장 추상의 세계와 게슈탈트 심리학 4장 화가 내면의 상처와 표현주의 5장 여성 화가의 정체성: 전문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처음 만나게 되는 화가는 여러 경로로 알게 되었던 모지스 할머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세련된 기교를 사용하지 않으며 순수한 즐거움과 소박함을 화폭에 담는데 이것을 나이브 아트(naive art)’ 혹은 원시 미술(primitive art)이라고 하며 아웃사이더 아트라고도 한단다. 모지스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슬픔을 달래기 위해 76세에 붓을 들고 가슴속에 남아있던 꿈,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사람들은 늘 '너무 늦었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어려서부터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76살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은 천천히 하세요. 때로는 삶이 재촉하더라도 서두르지 마세요.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니까요. 언젠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P21)-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중에서

 

 무언가를 이루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말을 많이 접하면서도 조급증을 떨쳐버릴 수 없는 우리에게 모지스 할머니의 이 말은 따뜻한 위로와 무한한 용기를 준다.

 

앙리 루소의 <야비드가의 꿈>

 

 이외에 이 부류의 화가로 헤르만 헤세, 앙리 루소, 구스타프 클림트를 소개한다. 이 중 앙리 루소의 독특하고 신비스런 분위기의 그림은 나름의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신조어 소확행을 실천했던 화가였다. 프랑스가 번영과 발전을 이루며 좋은 시절로 불리는 벨 에포크(belle epoque)의 절정이던 19세기 말, 세관원으로 일했던 앙리 루소는 가난하고 가정적으로 불행했지만 주간의 업무가 끝난 주말에 붓과 그림 도구를 챙겨들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 여행할 형편은 아니어서 파리를 떠난 적이 없었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주말 화가라는 야유를 받았던 루소의 작품은 피카소의 관심을 사로잡으면서 빛을 발하는데... 다른 화가들과 공동 작업장으로 사용했던 몽마르트의 작업실로 앙리 루소를 초대하고 기욤 아폴리네르는 그의 그림을 높이 평가하는 시를 헌정하기도 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긍정의 심리학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화>

 

 2장에서는 아방가르드 화가로 디에고 벨라스케스, 마네, 드가, 폴 세잔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화>가 새롭게 다가왔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사과 그림말이다. 원근법이 무시되고 시점 또한 복수의 소실점으로 역동적인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정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옆면과 뒷면, 윗면에서도 볼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은 그간의 고정관념을 깨트려주고 대인관계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는 해석이 멋지게 다가왔다. 전통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회화의 새로운 접근을 확장시켜주는 혁신적인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캔버스라는 평면적인 종이에 이러한 가치관과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그림에 조금씩 눈을 떠가는 기쁨이란 이런 것일까.

 

 

 3장에서는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하여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 파울 클레와 게슈탈트 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용어가 와 닿지 않았는데 독일어인 게슈탈트란 전체혹은 형태라는 의미의 단어란다. 우리가 현상이나 대상을 부분적 요소로 지각하기보다는 하나의 통합적인 의미를 가진 전체로 지각하려는 경향성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관심있는 부분은 전경(핵심˙본질)이 되고 반대의 경우는 배경(비본질적 요소)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할 때,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예술의 정수만 표현하고자 애썼던 피카소의 그림을 이해하는 첩경이 아닐까 한다.

 

 일찍이 그의 천재성을 알아차린 거트루드 스타인은 “19세기의 회화는 프랑스에서 프랑스인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20세기의 회화는 스페인 사람에 의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며 피카소의 영향력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 독일의 아트 딜러 다니엘 칸바일러는 피카소의 그림에는 낭비가 없다. 장식과 기교가 배제되어 있어 오히려 호소력이 짙다.”고 평가했다. 아홉 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데생했다는 천재 화가 피카소도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며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라고 했다. 핵심만을 포착하는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예술의 정수를 발견한 피카소의 <해부도>는 웃고 싶을 때 보기 좋은 그림이라고 소개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이루어진, 특히 동그란 몸통 부분을 보면서 정말로 웃음이 났다. 우리네 삶도 이것저것 복잡하게 따지지 말고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심플한 삶을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다.

 

 

 4장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트 뭉크, 에곤 실레, 모리스 위트릴로의 작품과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맨 처음 고흐를 만난 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부터였다. 그 후 고흐의 전기, 영화를 통해서 제대로 알아갔다. 여기서는 이제 막 관심이 생긴 뭉크에 대해서 언급하려 한다. 불안의 아이콘이 된 <절규>를 중학교 미술책에서 보았던가. 아름답지 못한 그림에 유령같이 느껴져 별로 좋은 기억은 없던 그림이다. 최근 어떤 책에서 언급된 뭉크의 삶을 대략 알았고 이 책에서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 강박적인 종교인이었던 아버지의 냉혹한 양육 방식은 부정적인 정서를 뿌리내리게 했다. 탄생한 순간부터 죽음과 질병의 천사가 자신을 따라다녔다던 뭉크의 고백처럼 그의 그림에는 불안, 우울 공포, 질투, 피해망상 등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숨 쉬고, 고통받고, 느끼고, 사랑하는,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겠다. 본 것을 상상하며 그리지,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지는 않겠다.”(P227)고 밝힌 생 클루 선언은 그림에 대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길을 충실히 걸었던 결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공감과 불안과 공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지 않았을까. 가끔 기사화되어 끔찍한 사건을 야기하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뭉크 또한 신경쇠약과 조현병이 있었다고 해서 놀라웠다. 자신의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직시하면서 예술활동으로 승화시켰기에 오늘의 뭉크가 있었던 것이다. 고난의 삶을 극복한 숭고한 정신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있기에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위로받고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수잔 발라동의 <푸른 방>

 

 5장에서는 베러트 모리조, 메리 카사트, 수잔 발라동, 루이스 부르주아 등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전문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전통적 가치를 거부하며 시대를 앞서간 여인들의 용기 있는 인생이 들어있다. 이 중 수잔 발라동은 사생아로 태어나 사생아를 낳고(4장에 나오는 모리스 위트릴로가 아들임.) 프랑스 미술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추대되기까지 한, 우뚝 선 불꽃처럼 살아갔던 화가이다. 생활고와 미혼모라는 악조건 하에 분투하면서도 역사상 여자가 여자의 누드를 그린 것은 전무후무 할 만큼 당찬 화가였다. 그녀가 그린 여자의 누드는 남성의 시선이 투사한 에로티시즘의 홍조도 없는 진실 그대로의 몸이다. 르누아르의 모델이었던 수잔이 비밀스럽게 키운 화가의 꿈을 고백하며 화첩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의 계약 관계는 끝난다. 굴곡 많았던 수잔의 삶은 아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결국 두 모자는 그림으로 국가의 인정을 받으며 안정되고 명예로운 노년을 보내게 된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이 또 있을까.

 

수잔 발라동의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가 그린 <노트르담 성당>

 

나에게 예술은 나 자신의 정신분석학이자 나만의 공포와 두려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당신에 대해서 직시하고 알아야만 한다. 그런 고찰이 당신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P319)

 

 여자 뭉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평생을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직시해야 했던 루이스 부르주아가 매거진 GQ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 공포와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고통을 잊기 위한 방편으로 예술을 했고 예술은 자신의 정신분석학이었다는 것이다. 긍정의 심리학을 엿볼 수 있는 화가들도 있었지만, 더 많은 예술가들이 내면의 고통과 불안을 온전히 들여다보며 영혼을 치유해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극복하고 빛나는 별로 우뚝 선 그들의 삶을 읽고 뭉클한 감동이 일었다. 무엇이든 풍족하고 편리한 시대에 나만 힘든 것처럼 꾀를 부리고 태만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 오롯이 지금, 현재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족적을 헤아려 좀 더 오늘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화가들의 삶과 심리학이 곁들여진 이야기를 통해 어려웠던 그림이 쉽게 느껴졌다. 그림을 통해서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대의 확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또한 자신에게는 위로와 힘을 준다는 것도. 저자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모든 연령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가꾸는 일이지만,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에 칸딘스키의 그림과 색채이론의 응용이 감정인식과 공감능력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다’(P171)고 했다. 우리는 심각한 소통의 부재와 공감능력의 상실시대에 살고 있다. 어린 학령기부터 누구나 그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개발하여 우리의 감성을 촉촉하게 해주는 미술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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