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칠 년 전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을 읽고 나서, 나의 독서 편식 상황을 깨닫고 경계를 넘는 책읽기를 시도해보고자 독서 목록을 정비하며 새로운 기분으로 들떴던 적이 있다. 우선은 경제 관련 서적과 동기부여에 관한 책으로 시작해서 좀 깊이 있는 철학과 사상에 관한 책으로 넓혀가야지 했지만 쉽고 빨리 읽히는 책에 손이 가는 바람에 더 나아가지 못하는 책읽기가 되었다. 블로그 활동을 하게 되면서는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나마 가끔 열리는 리뷰 대회를 통해서 평소와 다른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되어 매번 감사한 마음이 다. 이 책도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된다니! 제목 또한 강렬하고 좀 어렵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는데 서문을 읽으면서 그동안 생각했던 철학에 대한 편견을 깨끗하게 환기시키며 기대감으로 고조되었다. 그동안 철학에 대한 접근이 지적 호기심과 폼을 잡고 싶은 허영이 아니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지적 충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철학자를 떠올릴 때 맨 먼저 칸트가 떠오른다. 어김없이 오후 3시면 산책을 해서 마을 주민들은 칸트를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는. 그리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잇는 그리스 철학자들. 몇 해 전 플라톤의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 책의 서문을 접하고서야 깨닫게 된다. 철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며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얼마만큼 대답을 해 줄 수 있는가,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을.

 

 저자 야마구치 슈는 바로 이러한 우리 앞에 닥친 삶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인들이 철학의 본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굳은 믿음으로 이 책을 기획했음을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1949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제의 계기로 로버트 허친스 교수의 교양 없는 전문가야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라는 주장을 들어 왜 우리가 철학을 배워야만 하는지 네 가지의 이점을 들어 들려준다.

 

1.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2.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3. 어젠다를 정한다.

4.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 책의 부제는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이다. 1부는 무기가 되는 철학으로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과 그동안 왜 우리가 철학 앞에서 좌절해야 했는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2부는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50가지 철학 · 사상으로 사람, 조직, 사회, 사고에 관한 핵심 콘셉트를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이다(P28)라고 지적했다는데 이것을 미처 몰랐더라도 우리는 가정을 넘어 조직이라는 사회에서 부딪히는 문제가 인간관계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에서 다룬 주제의 핵심이 더욱 와 닿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에 이 책을 쓴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그동안 철학에 관심을 갖고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리스의 철학자를 시작으로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 순으로 방대하게 이어지는 철학자와  무거운 주제에 압도되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너무 오래전의 사상이고 현실과 호환이 안 되거나 동떨어진 내용인 경우도 있어서 어렵고 진부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저자는 여타의 철학 입문서와 달리 시간 축으로 구성하지 않았으며 현실의 쓸모에 기초하며 철학 이외의 영역도 다루었음을 밝힌다. 저자의 이런 신선한 의도를 접하면서 어떻게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기대감을 갖고 읽어나갔다. 니체의 르상티망부터 시작하는데 학창시절 철학자와 사상가의 명제를 암기하여 시험을 치르던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세상에, 어떻게 철학자에 대한 사상을 그렇게 배우게 되었을까 싶다. 그러니 졸업하고 나선 철학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옛날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한 명의 어린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 온 마을이 달려들었다는 시대가 아니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익을 주었으나 마음은 고독한 시대이다. 개인적인 삶의 모습이 버튼 하나만 터치하면 눈앞에 나타나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너무나도 쉽게 느끼는 시절이다. 점점 소외감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가고 서로의 마음을 모르게 되고 그런 환경으로 쉽게 변화해 간다. 아무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일을 모의하고 그것이 터져야만 내막을 알게 되는 사회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 사람의 내면에서는 무언가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시기심과 시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 포함한 폭넓은 개념으로 니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을 든다. 어렵게 느껴졌던 철학 용어가 환해지기 시작한다. 자주 언급되는 이솝우화의 여우과 신 포도이야기 속 여우의 심리와 고급 브랜드 상품을 구입하며 르상티망을 해소하고 있다는 철학적 견해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준다. 이렇게 타인의 시기심을 이용하면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이어진다는 흥미로운 철학을 왜 가까이 하지 않았을까.

 

 반면 좀 놀라운 부분도 있었다. 거대한 자연에 비하면 개인은 나약한 존재다. 열심히 살고 노력을 하면 언젠가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대부분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장 칼뱅의 예정설을 접하고 놀라면서도 우리가 사는 현실의 상황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수긍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구원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선행을 쌓느냐 못 쌓느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P76)

 

 이 주장은 기원은 신약성서로마서830절에 신은 미리 정해진 자들을 부르고, 부른 자들을 의로 삼으며 의로 삼은 자들에게 영광을 내렸다는 말에서 미리 결정되었다는 키워드로 도출된다는데. 오늘날 조직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인사고과에서 밀려나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핵심 내용은 뒤에서 공정한 세상 가설을 설파한 멜빈 러너(Melvin Lerner)보이지 않는 노력도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거짓말로 연결되어 혼란스런 마음을 부추긴다. 이미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1만 시간의 법칙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얼마나 많은 책에서 다룬 내용이었던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고 싶은 일에 1만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면 결국은 이루게 된다는 희망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세 개의 명제를 들어 풀이하는데.

명제1 : 천재 모차르트는 노력했다.

명제2 : 노력하면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가 될 수 있다.

명제3 : 노력 없이는 모차르트 같은 천재가 될 수 없다.(P260)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여기 예를 든 명제는 논리 전개에서 흔히 발생하는 초보적인 실수로 사실은 전혀 명제의 증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법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상이나 악기, 종목, 과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바람과 현실의 세계를 직시하지 않고 맹목적인 믿음일 때는 위험한 주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공정한 세상 가설에 사로잡히면 사회나 조직을 도리어 원망하게 될 수 있다는 사례는 정말 헛헛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부터 우리는 그런 말을 많이 들어왔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고.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며 의무라는 것을 명심하자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너무 씁쓸하지 않은가. 힘없는 개인이 살아가기 위한 토대가 되는 소박한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은. 하지만 어차피 사람은 작은 희망에도 일어설 수 있는 존재다. 대표적인 실존주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하라는 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물음에 몰두했다. ‘앙가주망(engagement)’ 은 ‘참여(commit)’를 의미한다. 참여한다는 것을 사르트르는 우리 자신의 행동과 이 세계에 대한 책임두 가지로 정리했다. 자신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여기에는 자유가 따른다

 또 사람의 일생에서 우발 사건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바로 그 예가 전쟁이란다. 흔히 전쟁은 나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전운동이나 병역을 거부하고 도망칠 수도 있었는데 받아들인 것은 선택했다는 것이고 결국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논리정연하고 냉정한 지적에 섬뜩해진다. 이것은 사르트르가 말한 인간은 자유의 형벌에 처해 있다는 진정한 의미로도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무엇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지만 넘치는 자유 때문에 괴롭기도 한 존재인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정한 세상 가설예정설을 실체를 알았다고 해서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사르트르가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에서 소개했다는 현대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우리는 세계라는 작품을 제작하는 데 공동으로 관여하는 아티스트이기에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하루하루 생활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희망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인생을 예술 작품처럼 창조해 내야만 자신의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역설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지금까지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갖고 삶에 임한 적이 있었던가, 돌아보게 하였다.

 

 지금 우리는 거대하게 시스템화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매뉴얼화 된 시스템이란 얼마나 편리한 것인가.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물이 흐르는 듯한 일처리를 보장한다. 철학을 배워야 하는 네 가지 이유 중 네 번째의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언급을 상기시키는 부분을 만났다. 바로 20세기의 정치 철학을 논하는데 필수 아이콘이 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접하게 된다. 수많은 책을 통해 만났는데, 극도로 세분화되고 시스템화 된 우리의 현실은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 가기에 쉬운 상황이 아닐까 섬뜩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P100)

 

 나치 독일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처리하기 위한 계획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있었고, 작년에 읽었던 맨부커상 수상작인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도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했다. 하이쿠를 읊고 낭만을 아는 대위 고타가 천황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의 목을 치는 기술을 연마하고 그 과정을 부하인 나카무라에게 얘기하는 장면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이 무섭고 떨리지 두 번 세 번의 연습을 거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시스템이란 이런 것이다. 극도로 세분화된 시스템 속에서는 잘잘못을 따질 수가 없다. 애매하고 교묘하게 역할을 분담하여 악에서 빠져나가려는 발버둥에 헤아릴 수 없는 무고한 인명은 왜냐고 묻지도 못한 채 희생되고 마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고등한 인간이니까 말이다. 더불어 시스템화 된 조직에서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게 하는지 일침을 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 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겐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이 모여서 조직이 되고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각각의 주제를 컨셉트로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물론 좀 어렵게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철학 용어만큼은 암기식 공부가 도움은 되었던지(?) 학창시절의 기억을 금세 소환해주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조직, 사회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면 개인이 삶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 속에 흘러가는 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우리 앞에 있다. 흔히 지금을 살아라’, ‘현재를 살아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과거 속에 젖어서 살며 오지 미래를 걱정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과 같은 세상이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앨런 케이(Alan Curtis Kay)의 말을 만나게 된다. 감동과 더불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가 1972년에 저술한 논문 모든 연령대 어린이들을 위한 컴퓨터(A Personal Computer for Children of All Ages)를 사례로 들어 미래의 예측실현을 이야기한다. 사실은 미래 예측을 의도했다기보다는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원하는 것을 구상하는 과정에서의 간절함이 결국 실현으로 이어진 것이다. 막연히 불안해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노력에 힘을 싣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철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심리학, 과학, 문화인류학 등 50명의 철학자, 사상가의 50개의 생각이 들어있다. 분명히 읽기 전보다는 생각을 키워 주었으며 교양이 듬뿍 쌓인 듯 느껴진다. 옳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 고정관념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씁쓸한 마음이 되기도 했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상기할 때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즐겁고 나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1위 경영 · 인사 컨설팅 기업 콘페리헤이그룹의 시니어 파트너이자 히토쓰바시 대학교 경영관리 연구과 겸임 교수로 일하고 있는 저자의 내공이 담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한 치 앞을 헤아릴 수 없는 우리의 삶을 효율적인 삶으로 이끄는 철학적 소신을 안겨 줄 것이라 믿는다. 또 멀어졌던 철학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용기와 도전의 마음을 심어준 유익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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