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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서관 기행 - 오래된 서가에 기대앉아 시대의 지성과 호흡하다, 개정증보3판
유종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2월
평점 :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도서관 나들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빽빽하게 꽂혀있는 서가의 책을 보노라면 내 책도 아닌데 내 것 인양 마음이 뿌듯하다. 새 책의 향기, 한 장씩 책장을 넘기는 소리마저 리듬이 느껴진다. 언제 저 많은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위축되기도 하지만, 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한 권 한 권 읽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기자라는 직함으로 여러 곳을 누비고 다니던 시절, 틈틈이 청계천 헌책방을 순례하며 잡지 창간호를 수집하는 취미로 시작하여 사서였던 아내를 만난 인연이 도서관과 깊은 운명이 되었다고 한다. 이미 2010년 출간된 책인데, 이번 수정판에는 쿠바 호세 마르티 국립도서관, ‘블랙 다이아몬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덴마크 왕립도서관, 아드몬트수도원 도서관 이렇게 세 곳을 추가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을 시작으로 우리나라까지 16개국 70여 곳의 도서관의 모습을 담아 놓았다. 단순한 도서관의 소개가 아닌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역사와 철학,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보통 한 국가에 한 두 개의 도서관을 소개하는데, 러시아, 미국, 중국, 한국은 다수의 도서관을 소개한다. 또 'Story in Libray(이야기가 있는 도서관)’은 도서관과 관련 있는 인물의 에피소드나 유익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Visit Here(여기도 가보자)는 각국의 대표도서관을 소개하면서 근처에 있는 다른 도서관을 소개하는 코너다. 도서관이 있는 도시와 관련된 인물이나 영화 이야기 등 풍성한 읽을거리로 독자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여태껏 보지 못한 도서관 겉과 안의 모습의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도서관이 아니라 아름다운 건축물을 구경하는 느낌이다. 도서관이 그렇게 아름다워도 될까, 책을 보관하는 장소인데 너무 사치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 저 아름다운 공간에 앉아서 책을 읽어보고 싶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각국의 도서관마다 특색이 있고 상징성이 있다. 세계 최초의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이다. 기원전 3세기 초 지중해변에 설립한 이 도서관의 탄생이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관계가 있다니 흥미롭다. 그의 제자 데메트리오스가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게 도서관 건립을 제안함으로써 탄생했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파괴되었던 이 도서관은 1990년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호소하여 유네스코와 여러 나라가 참여하여 2002년 재건한 것으로 무려 1600년 만에 새로 태어났다.

화강암으로 만든 외벽에 세계 120여 개의 문자를 새겨놓았는데, 우리 한글은 ‘세’, ‘월’, ‘강’, ‘름’, ‘의’, ‘관’의 여섯 글자가 자리 잡고 있다. 과연 최초의 도서관이라는 상징성과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건축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절세의 미녀, 팜므파탈로 알려진 클레오파트라가 어려서부터 이 도서관을 애용했던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재원이었으며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원전으로 읽었던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는 것이다. 숨겨져 있던 이야기에 클레오파트라가 새롭게 느껴진다.
러시아의 도서관은 문학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막심 고리키, 체호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 육필 원고, 소품에 이르기까지 직접 돌아보는 저자의 감동에 읽는 나 자신도 울렁울렁 할 정도다. 자료에 대한 방대한 정보, 건축물에 대한 양식 설명, 내부 구조, 도서관의 구성원 등을 세세히 알려주는데 그 어마어마함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단순히 보고 끝나는 여정이 아니라 저자의 도서관 기행에 대한 로망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여실히 전해진다.
맥도널드보다 도서관이 많다는 미국은 과연 도서관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한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보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 보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도서관과 사서의 위상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 마치 빈약한 과거를 미래로 보상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그러한 미래에 대한 설계가 있었기에 짧은 역사지만 최대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것은 조국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고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다”라고 했다. 그뿐 아니라 오바마도 그에 못지 않은 ‘도서관 마니아’였다. 접근하기 쉬운 맨해튼 한복판에 자리 잡은 뉴욕공공도서관은 도서관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못한다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시민의 사랑을 받는 도서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전보다 도서관이 눈에 띄게 많아져서 반가운 마음이다. 저자도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 도서관’을 추진하여 전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손쉽게 마트에 가듯이 도서관을 즐겨 찾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되면 개인이 성장하고 그 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벽화와 천장, 이국적인 바닥재/ 조명과 조각)

'블랙 다이아몬드' 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덴마크 왕립도서관 전경.
여러 역사를 돌아다볼 때 책이란 무엇인가, 도서관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한 국가의 문화이고 국민의 정신이다. 한 나라를 정복할 때는 분서를 하는 예가 적지 않았다. 진시황이 그러했고, 나치 독일이 그러했다. 거꾸로 생각하면, 책은 미래라는 것이다. 도서관이야말로 평등하게 혜택을 볼 수 있는 가치 있는 복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들어가서 책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우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도서관은 전국에 35개가 있지만 국가가 운영하는 곳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누구라도 시각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현실을 보면 두루두루 공평하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멋진 도서관의 모습에 흠뻑 빠졌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의 향내와 책 읽는 아름다운 분위기에 젖어들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