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 인류 고전 15권에 묻고 스스로 답하다
박병기 지음 / 인간사랑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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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라는 책의 제목이 제법 묵직한 울림을 준다.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에서 국가나 개인이 하루하루 살아가며 견디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국가적으로는 부도덕한 권력자들이 혼란을 야기하는 정치적 무력함을 겪어야 했고, 이웃나라 일본의 원자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선 노출과 중국의 심각한 대기오염, 북한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 등 대내외적인 여건에서도 위험과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제각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성공하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치며 앞만 보고 달리는 세상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안되는 게 세상사 아니던가.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차 등 비교심리로 인한 상대적 빈곤감은 피로사회로 만든다. 이럴 때 잠깐 쉬어가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거리 두기를 전제로 오래된 고전에서 사유와 성찰을 하며 삶의 의미 찾기를 위한 필수 요건이 되고 전통적인 유효성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올해부터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고전과 윤리라는 진로선택과목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금강경,논어같은 동양 고전과국가,니코마코스윤리학등 서양 대표 고전을 다루고 있다. 특히신약성서,꾸란을 포함시켜 종교 간의 만남과 대화를 위한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저자는 고전과 윤리교과서 대표저자로서 이 과목에 들어있는 15권의 고전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를 안내하는 내용과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과목의 도입으로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으로 시험공부에만 몰두했던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하다. 그동안 제도 교육은 국영수 과목에 치우쳐서 예체능 과목은 등한시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도덕과 윤리는 하루아침에 싹트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중단되었던 윤리에 대한 과목을 학습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반가운 마음이다.


 이 책의 구성은 1부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 2부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 3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 맺기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를 정립하고 나아가 타인 등 공동체와 그리고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와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한 지향점을 두고 있어 성장할 수 있는 관계망을 보는 듯하다. 우리 시대의 삶의 양상은 어떤 모습일까. 성공은 차치하고 일단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으로도 벅차다. 요즘처럼 언론이 부도덕한 정치인들이나 많이 알려진 유명 인사들의 사건들로 시끌벅적한 때는 사람이란 과연 왜,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 한 세상 길어야 백 년인데, 남의 것을 탐하고 피해를 주며 그렇게 살고 싶을까 싶다. 이러한 배경에는 오로지 성공을 향하여 앞만 보고 달린 결과가 아닌가 한다.


관계 맺기가 얼마나 어려운 시대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혼밥’, ‘혼술등 뭐든지 혼자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세상의 흐름에 저자는 금강경을 소개한다.

수보리 장로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다원(須陀洹)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할 것인가?”

아닙니다. 부처님! 수다원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수다원이라는 말은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참된 수다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경』「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P31) 

                

 ‘사다함이나 수다원은 불교 수행자의 경지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데,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지 중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수다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는 사람이라는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니, 과연 보통사람인 우리는 이 수다원의 경지를 삶의 목표로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뜻이 너무 크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우리는 작게라도 노력할 수 있다. 늘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실천하는 것으로 수다원에서 아라한(깨달음을 얻어 이 세상에서 참으로 평화롭게 사는 사람)에 이르는 수행의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하니.


 2부에서 다루는 꾸란은 다종교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낯섦의 대상인 이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대목이다. 눈만 내놓고 온 몸을 꽁꽁 동여맨 복장의 사람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우리를 움츠리게 만든다. 영어식 발음으로 배웠던 코란이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며, ‘성스러운 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한다.


꾸란을 믿는 자들이나 구약을 믿는 자들이나, 그리스도인과 천사를 믿는 시바인들이나, 하나님과 내세를 믿고 선행을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을 것이다. 그대들에게는 두려움도 슬픔도 없을 것이다.”(P81)

부모를 위해서, 친척과 고아, 구걸하는 자여행자를 위해서 자선을 베풀어라. 그리하면 그 모든 자선의 행위를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2215

선행이거나 정의의 일이거나, 사람 사이에 화해시키는 일이 아닌 맹세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변명하지 말라.” 2224(P83)


 위의 인용을 통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차별하지 않는 이슬람의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고, 개인의 마음의 평화는 물론 인간관계, 사회 정의, 세계 평화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종교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낯섦을 금세 떨쳐버릴 수는 없다. 원치 않더라도 언제 어느 때든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듯이 다른 사람 다른 종교를 이해함으로써 다가 올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의미 있으리라 생각된다.


 3부에서 인상적인 것은 지난 해 619일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에 대한 것이다. 일상에 파고든 문명의 이기는 편안함에 젖어서 좀처럼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후쿠시마 원전 같은 엄청난 재앙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딜레마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지도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이 과제를 각자의 삶과 사회 전반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철학으로 저자는 노자의 도덕경을 소개한다.


하늘은 도()를 본받고 그 도는 자연(自然)을 본받는다.(P186)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도 기꺼이 머물기 때문에 도에 가깝다.(P187) 도덕경

예부터 극심한 자연재해를 만나면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하거나 기도하면서 하늘의 명령이 우리의 본성을 이룬다는 생각을 체계화한 것이 유교철학으로 완성되었다. 하늘의 뿌리를 자연으로 본 것이 도가이며 그 기록이 곧 도덕경이다. 어지러운 일상을 잘 살아내는 대안은 경직된 윤리(倫理)가 아닌 자연의 흐름을 읽고 물처럼 살아가는 무위(無爲)를 강조하며 물 흐르듯이 자연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삶을 강조한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또 교양을 위한다거나 특권층인 것처럼 과시하는 마음으로 고전을 대하지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는 금물이다. 그 고전의 저자나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한계는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다른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현재 실정에 맞는 재해석하여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전을 읽더라도 삶과 연결할 수 없다면 별 의미도 없을 것이다.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겠다는 무모한 도전보다는 마음에 끌리는 부분이라도 조금씩 접하다 보면 고전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도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학부모는 물론 고전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독자가 읽는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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