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 진다 - 전후 70년, 현대 일본을 말하다
우치다 타츠루.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우주소년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일본어공부를 하고 있지만 일본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졌던 적이 없어서 알아두는 것도 여러모로 좋겠다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일본의 지성이라는 시라이 사토시와 우치다 다쓰루의 대담집이다. 주로 현대 일본의 국가 문제를 이야기하며 애국또는 우국의 심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대화 내용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무겁고 부끄러운 주제의 이야기도 돌려 말하지 않고 과감하고 시원스럽게 꼬집는 화법이 위트와 함께 몰입하게 하는 힘인 것 같다.


 시라이 사토시는 이전에는 레닌을 연구했는데 20113월 동일본 대지진과 그 후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애국이나 우국을 말하는 내셔널리스틱한 상황을 직시하기로 한다. 우치다 다쓰루는 원래 프랑스 문학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사상보다는 문체의 리듬이나 신선한 수사에 마음을 끌리는 편인데 시라이 사토시의 화제의 책 영속패전론을 접했던 감동과 놀라움의 예찬을 아끼지 않는다. 어쩌면 서로 성향이 다르고 거의 한 세대 정도의 연배 차이가 있음에도 서로 잘 통하는 조화로운 대담이 놀라웠다.


 1장은 왜 지금 전후사를 다시 보아야 하는가를 주제로 이야기한다. 시라이 사토시가 영속패전론를 쓰게 된 계기는 동일본 대지진, 특히 원전 사고였다고 한다. 전부터 자국에 대해 대단히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빈틈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던 만큼 충격을 넘어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외교 전문가도 아니고 일본 전후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망설였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해보자는 결심으로 밀어붙인 이야기다.


 이 대담 내용의 이해를 위해서는 정치철학의 세계에서 말하는 애국주의애국심으로 번역되는 말, 즉 패트리어티즘(patriotism)과 내셔널리즘(nationalism)을 정의를 확실히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전자는 자연적인 것’, 후자는 조작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간단히 말하면 패트리어티즘은 선하고, 내셔널리즘은 악하다는 것이다. ‘애국심은 불량배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유명한 경구처럼 두 번째 의미의 애국에 해당한다. 아베 총리부터 혐오 발언을 일삼는 극우 성향의 시민 활동가, 향토에는 조금도 애착이 없으면서 유치한 전쟁을 취미로 타 국민을 향한 공격성만을 드러내는 악성 내셔널리스트들이 판을 치는, 이른 바 불량배들의 애국주의가 끝을 모르고 창궐하고 있기 때문에 이 대화에서는 애국주의를 분명하게 내세우기로 했단다.


우치다: 뒤틀렸지요. 어디에서나 패전국의 내셔널리즘은 뒤틀리게 마련입니다. 원리적으로 깔끔한 내셔널리즘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패전국 국민은 좀처럼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을 시작했고, 온갖 전쟁 범죄를 저질렀으며, 끝내 패한 나라의 모습을 긍정하는 데에 심리적 저항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셔널리즘이 성립하려면 자국이 벌인 부끄러워해야 할 범죄든 인류사에 자랑할 만한 공헌이든 똑같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국가가 한 모든 일을 내 일처럼받아들이는 국민만이 깔끔한 내셔널리즘을 누릴 수 있습니다. 좋은 것만을 받아들이고 변변찮은 일에 관해서는 모른다는 식으로 반응해서는 제대로 된 내셔널리즘이 성립하지 않습니다.(P33)

 

시라이: 그런데 아베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올림픽을 무사히 개최하기 위해서는 2020년까지 중국, 한국,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영토 문제를 몰아붙일 정치적 선택지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웃 나라가 보이콧하면 그것만으로도 모스크바올림픽의 재판(再版)이 되는 셈이니까요. 아베 정권은 영토 분쟁의 긴장을 고조시켜 지지율을 높여온 측면이 있는데, 계속 긴장감을 높이려고 시도했다가는 더 이상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입니다.

지난번 아베 총리는 미국 네오콘 계열 싱크탱크로부터 허먼 칸 상을 받고 크게 기뻐했지만, 정작 유엔 총회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이쯤 되면 보수 미디어는 노발대발하며 예의 미일동맹의 위기를 외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런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영속패전 체제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눈에 막이 씌었는지 현실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P86~87)


 현실을 꿰뚫고 바라보는 두 사람의 대화를 읽으면서 웃기기도 하고 속이 후련해진다. 또한 뭐든지 세계 제일의 기록을 지향하는 일본인의 알 수 없었던 면이 보여서 흥미로웠다. 패전 후 대미 종속 체제 속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아시아를 향해서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이것을 시라이 사토시는 메이지 이래 제국주의 정책이 성공하고 1945년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전중 세대였던 우치다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오래 머물렀지만 무엇을 경험했는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에서 조차 너희들은 민주주의의 자식이다. 모든 전쟁 책임으로부터 결백한 너희들이 일본의 미래다라는 말을 되풀이해서 들어왔기에 훗날 전쟁 책임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깜짝 놀라곤 했다는 기억을 말한다. 가해 경험을 말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억압된 기억은 반드시 증상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전후 70년이 지나서야 절절하게 느꼈다고 한다.


 무라카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의 중국 경험은 듣지 못한 채 침묵을 유언처럼 물려받았다. 중국과 관련한 껄끄러운 문제를 다루었다는 중국행 슬로보트를 언급했는데 난 처음 알았다. 아버지 세대의 침묵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문학적 주제로 잡고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이러한 노력들이 있어 다행한 일이다.


 그렇다면 영속패전이란 어떤 개념일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배 형태로 전쟁이 마무리 되었지만 전후 일본은 그 패배를 속인다. 이것을 시라이 사토시는 패배의 부인으로 부르는데, 왜 패전을 부인해야만 했을까. 전쟁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전후에 다시 지배적 지위에 계속 머물렀던 점을 꼽는다. 비슷한 상황이 떠오른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파들이 후에도 높은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던 우리의 경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패전 사실을 가능한 한 애매모호하게 처리해야 했는데 미국이 원했기 때문이고 이것은 대미 종속 구조를 형성한 근본 원인이 된다. 전후 일본이 지켜온 국가 전략의 기본이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이었지만 냉전 구조가 무너졌음에도 자립은커녕 자민당은 미국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영속패전의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고 꼬집는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해석개헌으로 야욕을 드러내는 아베 정권과 그 추종자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아베 신조로 이어지는 매우 건전하지 못한 동일혈족의 권력 집중이다. 저자는 그보다는 그 혈족의 트라우마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언급한다. 근대 일본의 트라우마는 메이지유신으로부터 150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주제로 떠오르지도 못했고 언어로 표현되지 못했음을 언급한다. 그런 정신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현대 일본의 정치인이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신랄한 지적이다.


 패전을 부인은 많은 것을 야기했다. 헌법을 소중히 여기자는 내용으로 강연을 했지만 주최 측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후원을 거부당한 사례를 들어가며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무사안일주의를 지적한다.


‘(중략) ‘윗사람의 마음을 제멋대로 헤아리는 잔챙이들이 지금 일본의 정치 기구를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 하급 관료들이 멋대로 이렇게 해야 위에서 좋아하지 않을까라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죠. 자신의 생각이 아니니까 책임질 생각도 아예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윗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라는 추측에 기초한 판단이기 때문에 책임은 모조리 윗사람에게 돌립니다. 그러나 위사람은 그런 지시를 내릴 생각이 없었을 터라 당연히 책임 따위는 지지 않습니다. (중략) 오늘날 일본은 견습생 사환이 주인님의 의향을 헤아리고 그것만으로 시스템이 움직이는 구조입니다.’(P126~127)


 어느 나라든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싶다. 윗선에 잘 보이려고 미리 좋아할 만한 것을 연구하고 밀어붙이고 결국 문제가 터지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느라 바쁘다.


우치다: (중략) 오키나와 반환 이우 43년 동안 멍하니 손가락을 입에 물고 미국에서 토끼를 풀어주기를 기다리는 일본은 한비자수주대토(守株待兎)’ 일화에 등장하는 농부와 영락없이 닮았습니다. 확실히 일본은 대미 종속의 보상으로 두 번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랬었다고 영원토록 대미 종속의 길을 걸으면 좋은 일이 계속 있으리라고 추론하는 행위는 논리적으로 오류입니다. (중략) 일본은 어느새 대미 종속 전략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고, 대미 종속이 미국으로부터 일본의 국익에 필요한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전술적 우회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P205~207)


 위에서 두 번의 좋은 일이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한 것과 1972년 오키나와 시정권(施政權)을 돌려받은 것이다. 정치가 돌아가는 현실을 꿰뚫고 있는 지성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바라본다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겠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나온 2000년 무렵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1980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의 흐름은 태평양전쟁 때와 같다고 말했단다.목적도 모른 채 전쟁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이겼다며 기뻐한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전황이 나빠져 큰 어려움에 처하고 만다. 지금(2000년 무렵)이 전시 중이라면 임팔 작전 근처의 시기에 해당한다는 내용이다.


 1980년대 일본은 경제 전쟁이라는 형태로 미국과 치른 전쟁을 치러왔고 그 당시 미국을 박살냈다는 이야기다.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유적 통찰도 감탄스럽다.


사과란 상대에게 이쪽의 사죄 의사가 전달될지 아닐지의 문제이지, 무슨 말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단순한 언어 차원의 이야기는 아니지요. 실제로 미안한마음이 있으면 어떤 표현을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같은 국민인 한, 죽은 자들이 저지른 죄를 떠안을 의무가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나 자신이 죽은 자들의 핏줄로 이어졌기에 죽은 자가 저지른 죄나 짊어진 빚은 나의 채무입니다.‘(P229~230)


 잘못된 역사를 사과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다보면 그것이 사실인 양 착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억압된 침묵은 언제가 터지기 마련이고 현재는 국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젊은 층이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우치다의 사과에 대한 이 견해가 귀하게 느껴진다.


 우치다가 일본인의 극단적인 성격을 논하는 부분은 섬뜩했다. 이 부분 또한 진실을 왜곡한 채 세월을 보낸 억눌림이 이런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베를 지지한다는 사람들마저도 아베가 실정을 범하여 자민당 내에서 아베 끌어내리기가 시작되고 각 파벌이 모이는 모습이 뉴스에 나오면 즐겁게 방송을 본단다. 마치 게임을 보듯이. 분열성 인격 장애가 보인다는 아베를 논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후텐마 기지를 둘러싼 문제와 관련하여 오키나와현 지사의 양보를 받아내기가 무섭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든가 집단적 자위권 용인을 내각회의에서 결정한 직후에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것으로 대미 종속과 대미 자립을 번갈아 들고 나오는 기이한 행동을 언급한다. 참 코미디가 따로 없다.


 자국의 감추고 싶은 비밀을 들춰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움 받을 용기를 무릅쓰고 당당히 주장하는 이런 지성이 있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일 것이다. 정작 정권의 관계당사자에게는 거슬리겠지만. 아무튼 의외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그런 만큼 리뷰로 멋지게 담고 싶었지만 일본의 정치나 사회의 상황을 담아내는 것은 나의 한계인 듯하다. 분명한 것은 일본의 근현대사를 이만큼이나 알게 되어 뿌듯한 마음도 있다. 전통문화를 사랑하고 친절한 그들의 겉모습만이 아닌 일본인의 다른 마음속을 엿볼 수 있게 된 것도 소득이다


 그 나라의 국민성은 그 나라의 역사적 사실과 배경 속에서 형성되어 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처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에 나선 일본 정부가 앞으로 추가 규제에 나설 수 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들린다. 일본의 전후 근현대사를 논하는 두 지성의 냉철한 대담을 통해서 우리의 상황과 비교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겪은 동북아시아 국가에서도 많이 읽힌다니 다행이고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의견*

책의 판형이 작고 본문 내지의 두께는 좀 두꺼운 편이었다.

책이 작아서 독서대에도 잘 고정이 안 되고 들떴다.

다 읽고 나서 살펴보니 몇 군데 꿰맨 부분이 뜯어져있었다.

재미있고 유익하고 만족스럽게 읽은 대담집인데

판형이 보통 책처럼 좀 넓고 종이가 약간 얇았다면

그런 점을 완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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