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는 전쟁에 관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단순히 아군이 이기는 장면에 환호를 하며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렸지, 그 이상의 생각은 해 보지 못한 것 같다. 이 작품을 만나고 전쟁이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전쟁에 임해서는 어떻게든 적을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다. 적을 죽이는 것에 대해 어떤 일말의 양심적 거리낌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 적을 죽인, 즉 살인을 했다는 자책감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인간적인 성숙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군대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리사들을 주된 배경에 내세워 전장(戰場)에서 겪는 다양한 사건과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많은 것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193991일 하켄크로이츠의 상징인 나치스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프랑스의 항복으로 나치스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이탈리아와 일본은 독일과 동맹을 맺으면서 두 번째 세계대전의 구도로 들어간다. 이렇듯 유럽은 나치스 하에서 혼란한 상황이었고 미국은 대공황으로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194112월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 중이던 미국 전함을 폭격, 미국은 참전을 결정하였고 수많은 젊은이들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자는 슬로건하에 너도 나도 지원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 작품은 세계 최대 전쟁인 나치 독일과 연합군의 전쟁사와 허구를 가미하여 탄생한 전쟁 소설이라 하겠다.


 ‘먹는 것이 살아가는 낙이었던 티모시()(‘키드로도 불린다)은 가족의 만류가 있었지만, 할머니의 응원에 힘입어 입대를 결심한다. 얼룩덜룩 자국이 남아 있는 낡은 레시피 공책을 가지고. 배치를 받은 기지에서 조리병 증원 모집 공고를 보고 마음이 동하는데, 사실 군대 내의 조리병은 무시당하거나 미움을 받는 분위기였다. 어쨌든 마음이 간절하다보면 누군가 끌어당긴다. 팀이 밥을 먹는 것을 보고 에드워드(에드)는 조리병을 권유하고, 오등 특기병이 되어 미 육군 제101 공수사단 제 506 낙하산 보병연대 제3대대 G중대 관리부 소속 조리병이 된다. 팀과 에드, 디에고, 라이너스 이들은 절친이 되어간다. 이들의 첫 임무로 19446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투입되어 C-47 수송기에서 강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코탕탱 반도에 낙하하여 보급 물자 확보, 사령부 및 구호소 설치 지원, 대원들의 식사 관리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한 가운데 적의 대공포화가 작렬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전쟁터와 기지 내에서 기이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낙하산을 모으는 라이너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600상자나 되는 분말 달걀, 네덜란드 민가에서 벌어지는 얀센 부부의 죽음, 유령을 보았다는 디에고... 기이한 이 사건들을 상부의 손을 빌리지 않고 동료들끼리 해결을 해 나가는 구성이다.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는 사건의 전모에서 군대 조직 내의 비리나 군인의 아픔이 나타난다.


……전쟁터만큼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경계가 모호한, 연옥 같은 장소는 없잖냐. 6월에 강하했을 때부터 우리는 각자 사신을 등에 지고 신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어. 나도, 너도, 적들도 다들 이미 유령이나 다름없다고. 진짜가 걸어 다녀도 이상할 거 없지.”(P349)


 유령의 소리를 듣고 하루하루 두려움에 의기소침하는 디에고. 이 사건에는 병사의 공포심과 고독이 있었다. 오로지 명령에 의해 움직일 뿐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군대다. 다치고 아파서 구호소에 들어가면 일시적으로 전선을 벗어날 수 있지만, 피냄새가 진동하고 아픔에 절규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는 일은 또 다른 고문이다. 전쟁터는 연옥이며 구호소는 연옥에서도 가장 어두운 밑바닥, 지옥과의 경계에 있다는 말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싸울 수 없게 되니까 상처를 내고, 죽지 않을 만큼만 자해를 해서 본국으로 송환되기 위해서. 유령의 소리는 바로 그런 병사의 자해 소동으로 매듭을 짓는다.


……돌아갈 수 있을까.”

당연하지.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 던힐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단언했다. 평소답지 않게 말수가 많았다. “가족이 웃을 수 있는 건 렌즈 저편에 네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이런 사진은 영원히 못 찍게 될 거다. 그러니까 살아야 해.”(p331)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은 사람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종전(終戰)의 기약이 알 수 없는 두려움은 체념을 부르기도 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힘없고 가난한 사람은 전쟁터로 내몰린다. 약간의 충성심과 치기어린 혈기도 있었겠지만, 결국은 돈에 이끌림을 받는다. 제각각 사연을 품은 채로 만난 이들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내가 죽거나, 네가 죽을 수 있는 곳이 전쟁터다. 부상을 당해서 구호소에서 죽어가기도 한다. 눈을 뜨면 팔, 다리가 붙어 있나 확인해야 했으며, 붙어 있으면 안도감을 느낀다. 겹겹이 쌓여 있는 시체 더미, 살을 에는 듯한 추위, 배고픔을 함께 겪은 우정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참담하기도 하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동료를 바라보아야 하는 아픔이다. 먼저 보낸 수다쟁이 오하라, 안경잡이 에드. ‘만약이라는 말은 후회와 한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생사를 같이 했던 형제 같은 전우를 잃은 상실감에 목이 메인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혼자 외떨어지는 게 싫어서, 구호소에 가기 싫고 동료들과 함께 총을 들고 싸우는 편이 훨씬 낫다는 말도.

 

닥터 브로콜리는 칠판에 아무렇게나 갈겨썼다. ‘열등 인종(운터멘슈)’. 유대인. 그리고 침략국에서 선별된 사람들이다. 녀석들은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의 생활을 어느 날 갑자기 빼앗고 노예로 부리면서 그들이 재배한 식량을 독차지한다. 침략이란 곧 스스로를 배불리기 위해 피지배자에게 굶주림을 떠넘기는 행위다.(p353)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없어지지 않아.”(후략)(p485)


 고래(古來)에도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살상하고 수백 수천 년 된 문화 유적지를 파괴한다. 자신들의 이념을 강요하려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다. 소중한 생명을 하찮게 생각하는 인간 경시의 현실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무섭게 파고든다. 틀린 주장이었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오랜 역사에서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작가는 각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생긴 정의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의도로 집필했다고 한다. 이 작품을 리얼하게 묘사하기 위해 많은 서적, 웹사이트, 영상 작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본문에 등장하는 독일어는 독일인에게 감수를 부탁했으며, 군사 용어나 미군, 독일군의 에피소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또 하나의 나의 느낌은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에 속한 일본,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양심적 거리낌이 이 작품을 쓰는 작은 계기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스토리의 구성은 놀랄 만큼 재미있다. 전쟁터의 젊은 군인의 이야기로 유쾌 발랄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전쟁으로 인해 인간과 인간의 삶은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는 감동의 휴먼 드라마였다. 아직도 남아있는 인종차별 문제를 비롯하여 어린 나이에 입대하여 전쟁터의 다양한 사건, 사람들을 보면서 내면이 성숙해가는 성장소설의 단면도 보여준다.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전쟁도 삶의 한 부분이라면 어디서든 있을법한 이야기다. 현실에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이상 깊이 있는 울림을 주는 전쟁터의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