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소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결혼은 엉겁결에 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것저것 조건을 따져서 계획적으로 결혼에 성공한 이가 얼마나 될까 싶다. 반면, 그런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몇 년 전 어떤 책을 읽었는데, 이런 결혼이 있었다. 그 책의 저자인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남자의 상을 버킷리스트처럼 작성을 했다. 그 사람의 성격은 물론이고, 취미, 삶의 철학, 가치관, 술과 담배는 하지 않을 것 등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하였다가, 그 기준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나 교제를 하다가 결혼에 골인한 사람이었다. 와! 이런 결혼관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고 세상에 흔한 조건을 따지는, 이를테면 무조건 재산은 많아야 하고 학력을 따지는 등의 결혼은 아니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러한 노력도 필요하겠구나 하고 새삼 느꼈었다. 이런 경우라면 얼결에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어쩔 수 없이 결혼이라는 틀에 묶이는 경우보다는 삶의 질이 훨씬 낫지 않을까.


 결혼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도 세간에 떠도는 진리 같은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진리이기만 할까. 이 작품은 여대생 매들린이 19세기 문학으로 ‘결혼 플롯’을 연구하며 연애를 배우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몹시 심취해 있다. 글쎄 상상과 현실은 다른데, 공부하는 공식처럼 연애와 결혼을 대입할 수 있을까.


 기호학 강의에서 만난 레드너, 미첼, 주인공인 매들린의 대학생활과 삼각구도의 연애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틀은 좀 약하다. 211번 기호학 강의실의 분위기는 제법 열기가 느껴진다. 페터 한트케의 『희망 없는 슬픔』(한국어판은 『소망 없는 불행』이라고 함.) 등 여러 명작과 유명한 철학자들의 이름이 등장하며 토론이 진행된다. 마치 대학 강의실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초반의 분위기는 뭐랄까, 학생들이 수업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마음같이 좀 지루하게 여겨질 정도로 잘 안 읽힌다.


 이제는 더 이상『오만과 편견』『제인 에어』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낭만적이고 순수한 사랑으로 결혼에 성공하는 이야기는 좀 낯선 이야기가 되었다. 그만큼 남녀의 사회적인 이분법적인 역할도 무너진 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변화, 급변화된 시대상의 반영으로 이른바 결혼, 취업, 연애 등을 포기하는 삼포, 오포세대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미국의 80년대 캠퍼스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지금의 우리의 현실 풍속도와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결혼은 필수라는 시절이 있었다. 과년한 딸이 있으면 안절부절 못하고 중매쟁이들을 내세워 결혼이라는 인륜지사에 사활을 걸었던 우리 부모님 세대이다. 지금의 현실은 과연 결혼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깊어지고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는 생각에 표심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미첼은 매들린을 좋아하지만, 매들린은 레너드를 좋아한다. 미첼은 몰래 매들린과의 결혼을 꿈꿀 정도로 좋아했지만, 그의 연애에 대한 적극성은 많이 부족해 보인다. 결국 교수의 권유로 종교학에 관심을 보인다. 래리와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인도에는 혼자 들어간다. 콜카타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많은 노력을 하지만(매들린을 잊어보려는 노력까지도 포함하여) 결국은 도망치게 된다. 그곳에서 본 많은 부조리,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숭고한 삶 속에 제대로 동화되지는 못한다. 레너드와 결혼하지 말라는 편지 답장을 쓴다. 마음속에 아직 매들린이 남아있다는 증거다.


 매들린은 원래 이상한 부류의 사람들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또 부모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는 교제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신이 불안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레너드에게 점점 빠져든다. 알코올 중독자였고, 이혼한 부모를 둔 가난한 이공대생 레너드에게. 소문난 바람둥인데도, 여자들은 그와 잠자리를 못해서 안달이다. 일단 사랑에 빠지면 판단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반대를 하면 할수록 둘은 더욱 결속하게 된다. 평생의 업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이미 연정으로 가득한 마음은 그가 리튬을 복용하는 조울증 환자라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았다. 매들린의 언니의 말대로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게 되었다.


 레너드는 자신의 병을 자각하고, 약 복용의 양을 조절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거기서 떨치고 나오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한다. 약을 복용함으로 나타나는 무서운 폐해도 알 수 있었다. 의사들에게 환자는 어쩌면 임상실험용이었다. 갑자기 사라지거나,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행동을 하면서 매들린을 불안에 떨게 한다. 청혼을 하고 결혼을 했다가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혼하자는 뜻을 내비쳐도, 그렇게 된 상황에 후회도 하지만, 매들린은 그러지 못한다. 아마도 그런 상황이라면 거의 그러지 않을까. 이미 사랑하고 있는데, 차마 그러지 못함은 인간의 기본 심리에 선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결국 미첼이 종교학에 관심을 두고 자원봉사를 경험했던 것도 매들린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도피를 시도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정신적인 병증과 경제적으로 가난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묘수’로 매들린에게 청혼을 레너드, 앞날을 계획하며 실천하기보다는 사랑에 탐닉하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매들린은 모두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연애와 결혼은 건강하든 건강하지 못하든 인류의 불완전한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책임을 감수하든 못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삶의 과정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협조정신과 배려 없이는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평생 해로할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하다. 가족과 많은 지인들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지만, 도중에 헤어지는 커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마지못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더욱 그렇다. 예전에 다소 파격적인 제목의『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소설이 있었다. 아마도 결혼생활의 이런저런 부조리를 대변해주는 스토리는 아니었을까. 인생은 연습이 없다. 결혼도 물론 연습할 수 없다. 삶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혼자 사는 것이 맞거나, 혼자 살아야 할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결혼을 하면 반드시 불협화음이 생긴다. 환경이나 성장 배경이 다르고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의견의 합치를 이루고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연예인 중 누가 이혼을 하면 성격차이 때문에 헤어졌다는 말이 자주 나왔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에이, 그건 아니겠지, 하며 색안경을 끼고 딴죽을 걸곤 했다. 하지만, 그 ‘성격’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마음이 착한 것 외에도,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 위기에 대처하고 극복하는 능력, 좋은 삶으로 마무리 하려는 능력 등. 물론 이러한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겠지. 어쩌면 그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이나 교육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회사생활이나 학교생활만 교육과 계획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는 결혼생활은 더욱 더 소중한 삶이므로, 둘이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욱더. 그게 아니라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인이 스스로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좀 더 성숙한 삶을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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