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 존재의 조건을 찢는 자들
신창용 지음 / 스틱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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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접하고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 탈출하려는 급박한 상황의 이야기인가, 예상했었다. 탈출까지는 아니어도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일탈을 꿈꾼다. 지금의 상황에서 탈바꿈하거나 시원하게 벗어나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자신의 상황이 무거운 상태라면 더더욱.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려는 M이 비상사태 발생으로 제대가 연기되었다고 소리치는 중사의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는 아마도 현실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경의 반영이 아닐까 싶은 부분이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파스란>국에서 <로만공화국>으로 건너왔을 뿐인데, 통행증도 없이 불법으로 국경을 침범했으니, 즉결심판을 받아야 한단다. 이 상황을 어디서 본 듯하다.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떠올리게 된다. 서른 번째 생일날 아침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체포된 요제프 K. 그로부터 1년 동안 밑도 끝도 없는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서 나갈 수 없소. 당신은 체포되었소.” “그런 것 같군요. 그런데 도대체 이유가 뭐죠?” K가 물었다. “우리는 그런 걸 말해줄 입장이 아니오. 방으로 돌아가 기다리시오. 이제 소송 절차가 시작되었으니, 때가 되면 모든 걸 알게 될 겁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하긴, 뭣 때문에 왔든 그런 건 우리가 알 바 아니지. 일단 여기에 하룻밤 구금된 후 내일 경찰에 압송되어 판사한테 즉결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나 알고 있으란 말이오!”(P10)


 위의 두 문장의 내용의 핵심이 닮지 않았는가? 기묘하게 닮았다. 확실한 증거나 타당한 이유도 없이 당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운이 사납게 되었다!’ 그렇다면 분명 담당하는 관리국이 있을 터인데, 왜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산림감시소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느냐 말이다. M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해 하지만, 산림감시소 직원 앤은 오래된 관행으로 자신들이 통행증 확인이나 불법입국자를 검거한다고 했다. 특별입법조사위원 위촉의 문제로 왔다는 말을 듣고 앤은 놀란다. 고급관리, 돈에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호들갑을 떤다. 소문을 듣고 일자리를 찾는 것도, 비상식이며 엉성하다. 더구나 자국에서 분리 독립해서 나간 초라한 로만공화국으로 들어왔다니.


 긴 대화를 나누지만, 도통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각자 목소리는 높이지만, 서로 공감할 수 없는 허공에 떠도는 말이다. 이상한 분위기에 휘말려 3급 관리가 되어버린 M을 사랑한다느니, 몸종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넬리의 말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다. 너도나도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호하는 현실. 출세와 숫자의 만족을 위한 삶으로 치닫는 현실이 보인다.


 파스란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살았던 M은 왜 타국 로만공화국으로 넘어왔을까? 유학에, 로스쿨을 나오고 법학박사 학위까지 가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으로서, 새 탈출지 로만이라는 외국에서 신분상승을 꾀하여 전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위한 상상의 나래를 펴느라 분주하다.


 앤, 넬리, 파비안 이 여성들은 관리라면 껌벅 죽는다. 빌붙어서 팔자를 고치려는 여자들 같다. 하나같이 관리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비굴하게 무릎을 꿇는다.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몹시 낮추며,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태연스레 보여주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어떻게든 ‘급’을 높여서 돈을 쟁취하려는 삶의 피로감이 보인다. 열심히 노력해서 한 계단씩 나아가려는 삶의 애착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그 어두운 삶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그들 나름의 몸부림일 수도 있다.


 여자들을 대하는 남자들의 태도는 또 뭔가. 저속하기 짝이 없다. 장난감 다루듯 하며, 그것을 즐기는 모습이라니. 어쩌면 스스로를 귀히 여기지 않는 태도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현실은 너무 각박하다. ‘갑’이 되고 싶은 수많은 ‘을’들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꾸고 싶지만,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기에는 녹록치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무릇 국가나 관리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야 마땅하나, 제각각 권력의 아귀다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민생은 뒷전이 되고. 그들도 살아야 하니까 온갖 비리와 부조리는 반복된다.

 

 새로운 삶을 원했던 M의 야망이었던, 출세도 행복의 길도 열리지 않은 채 지리멸렬한 시간이 흐른다. 좀 더 나은 세계로의 탈출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삶의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편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여성들은 남자에게, 급이 높은 관리와 가까운 사이가 되어 신분을 높이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힘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려는 노력을 했다면 어땠을까. 구덩이에서 벗어나려는 집착이 강할수록 그 구덩이를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근본적인, 좀 더 문제 상황의 근본적인 것을 끌어내어 해결해야 한다.


 무수한 오자와 어법에 맞지 않는 엉성한 문장, 그리고 너무 긴 대화체는 읽어내기 힘들었다. 사회 곳곳의 의혹투성이를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을 문장에 담으려고 했던 것일까. 게다가 화자의 불확실한 상황의 불안감이나 심경을 반영하려는 설정이라 해도 좀 심하다. 죽음으로써만 ‘탈출’을 이루게 된 일은 심히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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