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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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 러시아 문학을 접하게 된 것은 푸시킨의 시를 알고부터였다. 중학시절인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로 시작되는 시를 자꾸만 보고 읽다가 리듬을 타고 외우게 되었다. 짤막한 그 시가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집에 있던 <대위의 딸>이라는 책을 본 적도 있다. 세로쓰기 방식의 책이었으며, 러시아 특유의 길고, 발음이 잘 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이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읽어나갔던 기억. 그 후로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해당하는 작가, 안톤 체호프,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등을 몇 권씩 읽었지만, 이 책 20세기 작가에 해당하는 작가의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이 많다.

 

  이 책에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여덟 명의 작가를 다루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1917년 제정 러시아의 종말과 10월 혁명을 시작으로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데, 사회주의가 해체되는 1991년까지 70여 년의 역사를 다루었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은 1902년 출간된 고리키의 <밑바닥에서>부터 1973년 출간된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까지이다. 마지막의 나보코프는 대표적인 러시아 망명 작가로서 독특한 위상과 의미를 갖기 때문에 이 자리에 할당했다고 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의 효시라고 평가되고 있는 작품은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이다.

막심 고리키는 ‘그토록 쓰라린’의 뜻을 가진 필명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러시아 작가들이 대부분 귀족 출신이거나 사제, 의사, 상인의 아들 등 부유한 출신인 것에 반해 고리키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였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외조부모 손에서 자라다가 외조부가 파산하자 신발 가게 점원을 비롯한 온갖 밑바닥 직업을 전전하는 가운데, 독학으로 글을 익히고 책을 읽었다. 10대 후반에는 권총 자살을 시도했다가 폐에 구멍이 나서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하니 쓰라린 운명이 필명에 새겨져 있었던 셈이다.

<어머니>는 공장 노동자인 파벨이 프롤레타리아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혁명적 노동자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궁핍한 생활과 가장의 폭력 속에서도 늘 순종하고 희생하는 삶을 영위하던 파벨의 어머니가 아들이 변화 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주체적인 인간으로 우뚝 서는 모습을 그렸다. 또한 혁명을 위해서는 사랑을 포기하고 오직 냉정한 이성을 갖도록 유도했다. 강철 같은 인간, 차가운 인간만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그보다 더한 분노를 느끼도록 하는 작품이었다. 온갖 착취와 억압 속에서 희생당해온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았는지 문제를 제기한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자먀틴의 <우리들>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와 함께 3대 안티유토피아 소설로 꼽힌다. 그 중 <우리들>은 1924년 출간이니 가장 앞선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29세기 미래 사회이다.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격변의 시기에 소련 사회의 암울하고 음울한 미래상을 보여준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생전에는 명성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사후에 거장의 반열에 올라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로 불린다. 혁명 이후 재회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포투단 강>은 깊은 슬픔과 연민에 대한 플라토노프의 천착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주인공은 노동자인 니키타와 교사인 류바다. 니키타는 류바를 무척 사랑하지만, 자신의 신분과 맞지 않는 건 아닐까 회의를 느낀다. 그녀가 고통 받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 삶의 목표이다. 우여곡절 끝에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가 되지만, 무늬만 부부인 채로 살아간다. 부르주아적 사랑의 방식을 초월한 사랑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병석에 앓아누운 니키타가 자신이 살 수 있는지 묻는다.



“곧 나을 거예요. 사람들이 죽는 건 혼자서 아프기 때문이죠.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하지만, 지금 당신 곁에는 내가 있잖아요.”(p97) 라는 류바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또 그의 대표작 <체벤구르>는 러시아에서 연극으로도 공연된다고 한다. 주인공 사샤는 친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슬퍼하고, 그의 죽음이 궁금해서 자기 다리를 묶고 배에서 호수로 몸을 던져 자살하는 내용이다. 울 일이 흔하지 않은 러시아 문학작품 중에서 이 <체벤구르>는 이러한 슬픔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한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닥터 지바고>는 ‘소설로 쓴 시’라고 평한다. 원래 시인으로 출발했고, 그와 작품의 주인공 지바고는 자신의 서정적 분신 관계일 만큼 파스테르나크와 들어맞는다. ‘지바고’라는 이름은 러시아어 ‘삶’의 뜻이라고 한다. 혁명을 이루고 나서 당당하게 사랑하는 이에게 돌아오려고 하는 모습은 ‘현재의 삶을 유예’하는 삶이다. 현대에도 그런 모습은 나타난다. 내일, 다음, 미래에 행복하기 위하여 ‘오늘’을 좀 대충 살고 있지는 않은지.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1928년부터 사망(1940년 3월 10일) 직전까지 수정과 보완을 거듭한 작품으로 20세기 최고의 러시아 소설의 하나로 그의 손꼽히는 대표작이다. 여주인공 '마르가리타'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마르가레테'를 모델로 쓴 작품이다. 체호프와 더불어 불가코프의 작품은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다고 한다.


 

<고요한 돈 강>은 숄로호프의 대표작이며, 소련의 공식문학 작가로는 유일하게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숄로호프의 작품에는 가족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 많다.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카자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카자크는 15~16세기경 귀족이나 지주들의 억압을 견디지 못한 농노들이 탈출하여 변방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농민공동체이며 용병으로 활용되었던 군사공동체라고 한다. 피 튀기는 내전을 겪은 카자크 사람들의 슬픈 역사를 그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이다. 문학을 독학으로 공부해서 이루어낸 그의 저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솔제니친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스탈린을 비난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 적발되어 8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고, 그 체험으로 수용소 사회를 고발한다.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도 어떻게든 견디며 살아간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겹친다. 단지 수용소 생활상을 고발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작품성의 의미는 덜 할 것이다. 거기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마음가짐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주인공 슈호프의 수용소 생활의 하루를 보여주고 있다. 생활력 강한 그는 좀 더 나쁜 일을 겪지 않은 것을 재수 좋았다고 생각하며 하루 일과를 마감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비인간적인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인간성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렇게 현실감 있는 묘사에서 자국민들은 충격을 느끼며 공감을 했고 작가로서도 시대의 증언을 충실히 한 위대한 작가로 불리는 것이다.



나보코프는 ‘러시아 망명문학의 대표 작가’로서, 대표작 <롤리타>는 러시아어로 작품을 내지 못하고 영어로 쓴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고도로 계산된 트릭과 게임의 성격을 갖고 있고, 지능을 필요할 만큼 유희적인 소설도 있다. 모국어를 쓰지 못하고 영어를 써서 작품을 내야 했던 설움을 이렇게 나타냈다.

“불쌍한 나이트! 그에게는 두 시기가 있었는데, 첫 시기는 엉터리 영어를 쓰는 멍청이였고, 두 번째 시기는 멍청한 영어로 글을 쓰는 엉터리였지.”

(P256~257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에서)

 


  주요 작가 여덟 명의 작품 세계를 통해서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무수히 희생된 인물군상과 시대의 아픔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의 머리에서 짜낸 이데올로기로 동족을 죽이고 가족을 해하며 피를 부른다. 사고를 주입시키며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려는 억지를 부린다. 과연 누구를 위한 혁명인가. 혁명을 일으키는 주체가 권력을 휘두르며 민중을 핍박하며 삶을 무참히 짓밟는다. 작가의 작품은 시대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우리들>, <닥터 지바고> 등 다수의 작품이 당대 독자들이 읽을 수 없었던 비공식 문학이라고 한다. 그만큼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던 상황이었다. 19세기가 러시아 문학의 ‘황금시대’라면 20세기는 러시아 문학의 ‘은세기’라고 불린단다. 인간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기에 주옥같은 문학작품을 만나 인간 역사의 변천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은 독자로서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러시아 문학에 입문하려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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