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술 - 작가들의 이유 있는 음주
올리비아 랭 지음, 정미나 옮김 / 현암사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작가와 술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술에 대한 속담을 떠올려 보았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 ‘술이 백약중의 으뜸이라고는 하나 만병은 또한 술로부터 일어난다.’ 이 책 속의 작가들은 바로 이 속담과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작가들은 홀로 오랜 시간을 작품을 쓰면서 견뎌야 했으니,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작가와 술』은 저자인 올리비아 랭이 알코올중독 가정에서 자란 것이 알코올중독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된 근원적 배경이 되었고, 열일곱 살 때 테네시 윌리엄스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를 읽으면서 작가들이 술과 술의 영향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 마음이 쏠렸다.(p29)고 말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술을 마시며, 술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헤치고 싶었다. 아니,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가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와, 이 술이 문학작품의 본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고 싶었기’(p23) 때문이라고 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미국의 소설가 솔 벨로(Saul Bellow)는 “술은 안정제였다. 그것도 생명력을 갉아먹는 안정제였다.”(p25)고 말한다. 여섯 작가들의 가정환경을 보면 ‘프로이트적인 부모, 즉 고압적인 어머니와 나약한 아버지를 가졌거나, 스스로 그런 부모를 가졌다고 여겼고, 모두들 하나같이 자기혐오와 자기 부적절감에 시달렸다’(p27)고 한다.



작가의 작품과 더불어 그 작가들이 작품을 썼던 장소, 묵었던 호텔 등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와 있어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학술 토론회장의 발표와 의견을 밝히는 과정도 그에 못지않은 생생함을 전해 준다. 과거에 ‘스미더스 알코올 치료 및 훈련센터’라는 명칭으로 불렸다는 성 누가-루즈벨트 병원의 9층 중독연구소에서 존 치버와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가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기 위해 들어갔는데, 존 치버만 치료에 결실을 보았다고 한다.



그처럼 지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곳에 들어가게 됐을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미노프나 스카치위스키 한 잔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 면 된다. 알코올의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통해 쾌감보상 경로를 활성화 시키는데 이를 심리학 용어로 ‘긍정적 강화’라고 한다. 또 하나는 뇌에는 두 가지 신경전달물질이 존재하는데, 억제성 신경전달물질과 자극성 신경전달물질이다.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은 중추신경계의 활동을 억누르고 자극성 신경전달물질은 중추신경계의 활동을 자극하는데 이것은 ‘부정적 강화’라고 한다. 이렇게 섭취된 알코올은 뇌의 활동을 진정시키고 둔화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이 같은 진정 효과는 긴장과 불안을 줄여주는 알코올의 탁월한 능력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독이 진행됨에 따라 대체로 ‘부정적 강화’가 더 큰 역할을 맡게 된다는 데 있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회고록>에서 프라스카티(이탈리아산 화이트와인)를 메조-리트로(mezzo-litro, 0.5리터)를 마시고 나면 “동맥에 새로운 차원의 피가 주입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한동안 모든 불안과 긴장을 쓸어내 주면서 잠깐이나마 꿈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새로운 피가 몸속에 수혈된 듯하다”(p51)고 했다. 또 그는 병적일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는데, 그런 그에게 술은 해독제였다고 한다. 이처럼 알코올이 주는 장점이 양을 늘리고, 내성에 따라 점점 늘어나게 되면 그에 따른 폐해가 발생되어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악영향을 초래하는 것이다. 중독 연구소의 레부니스 박사와의 인터뷰 중 뇌 스위치(Brain switch)와 이성을 담당하는 영역인 전두엽과 알코올 중독에 대한 이야기도 의미심장하다. 알코올중독자는 금주를 해도 여전히 중독에 취약한 상태로 남게 된다는 말이.



피츠제럴드헤밍웨이의 만남은 흥미롭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단박에 서로를 좋아했다고 한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에게 좋은 벗이었고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헤밍웨이는 유망한 청년이니 계약을 해보라고 제안을 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심한 불면증에도 시달렸는데, 지옥이라고 표현할 만큼이었다. 이렇게 작가들이 겪은 것은 그대로 작품에 반영된다. 단편소설 <이제 내 몸을 뉘며>는 닉 애덤스가 ‘누에가 뽕나무 잎을 갉아 먹는 소리가 들려’ 잠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106) 피츠제럴드 역시 <잠과 깸>이라는 에세이는 불면의 지옥에 대해 쓴 글이다. 그의 불면증의 원인은 모기 한 마리에게 공격당하면서 시작되었다는데,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다. 맥주는 술로 치지도 않았다는 피츠제럴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말은 진을 안 마시는 대신, 맥주는 하루에 스무 병쯤 마셨다고 한다. 불면증을 막아주는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밤엔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걱정에 사로잡히게’ 될 정도였다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도 없다.



밀실공포증이 있으면서도 말할 수 없이 좁은 아파트에서 이사를 안 가는 이유가 창밖으로 보이는 밤에 피는 식물 재스민 덩굴 때문이었다는 윌리엄스의 경우는 뭉클하다. 외로움과 소외감을 한 몸처럼 안고 살아야 했고, 끊임없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후기 희곡 작품에서 어수선한 짜임새가 알코올중독에 따른 뇌 손상 때문일 수 있다고 했고, 윌리엄스 본인이 쓴 노트에서도 자신의 글이 완성도가 떨어지고 ‘겁에 질린 닭처럼 뱅글뱅글 도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뇌의 구조가 변화된 건 아닐까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존 베리먼은 ‘강방적일 정도로 밤샘 공부를 할’ 정도로 학구적 습관을 가졌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T.S엘리엇, 오든의 강의를 듣고, 예이츠와 딜런 토머스를 만났다. 밤늦도록 세익스피어를 공부했다. 동료의 아내와 불륜관계 후 죄책감으로 심각한 수준의 음주를 시작했다. 알코올중독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감금되기도 했고 입. 퇴원을 반복하며 ‘항상 반 시체처럼’(p323) 살았다. 레이먼드 카버도 마찬가지다. 1983년의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음주 인생의 막바지에 치달았을 무렵 저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면서 아주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 문제였죠.”(p404)



'처음엔 연금술같은 마력을 발휘해 주다가, 중노동을 떠안기고, 마지막엔……타락성과 끔찍한 측면을 부추겨……끝내지 못한 과업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p367~368)이것은 알코올중독이 작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다. 또 ‘알코올중독은 단순히 음주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삶에 얽힌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망쳐놓는다’(p336) 는 것을 인식하여 절제가 필수요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들의 알코올중독의 상태가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물론 음주 상태에서도 그들의 작품은 남았지만. 가족과의 단절, 이혼의 반복, 소동 피우기, 너무 취해서 몸을 못 가누거나 다치는 등 심지어 교수로 있는 대학의 복도에서 대변을 볼 정도의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다. 이 책 집필을 위해 미국을 동분서주하며 많은 자료를 수집한 저자의 노고도 엿보인다. 작가들의 일기, 편지 등 작가의 내밀한 부분을 보는 것도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일전에 읽은 『나쓰메 소세키, 추억』처럼 『작가와 술』은 이 책에 실린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이라는 여섯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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