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있는 일본어 원서 만화가 꽤 많은데 아직까지 읽어본 것은 거의 없었다. 좀 더 공부한 다음에 읽어야지 했었는데, 책장을 들춰 보다가 읽으면서도 공부가 될 것 같아 붙잡게 되었다. 커다란 그림도 들어있고 여백이 많아서 읽을 만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아니 중년들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꿈’에 대한 이야기다.
한 청년이 나온다. 아니 학생이다.
첫 장면에 대학 합격자 명단이 나오는데 제 1지망에서 떨어졌다.
夢はいつも僕を裏切る(꿈은 언제나 나를 배신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실의에 빠진 그. 그가 좋아했던 여자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하고 싶었던 일을 잡지도 못했다. 그냥 적당한 곳에서 일하기로 했나.
그래도 ‘꿈’은 항상 내 옆에 있었다.
‘꿈’이란 녀석은 괜찮다며 경박한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 여자 너한테는 별로야.
다음 인사이동 때는 확실히 빠지지 않을 거야. ‘꿈’은 그렇게 찰싹 붙어서 다독여주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거절을 당한다. 기획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상사의 태도...
만원버스에 시달리고 피곤에 절은 모습, 녹다운 된 채 침대에 엎드려 있다.
꿈은 기필코 이루어지니까.
夢は必ずかなうから
라며, '꿈'은 같이 파이팅을 하자고 한다.
하지만 너무 지쳐 너랑(꿈) 같이 있는 것도 싫다며 이제 꿈을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청년은 시들시들 늙어가고 세월이 흘러 중병에 걸리고 병상에 누워 있다.
의사는 이제 3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고 친족들에게 연락을 하라고 하는데 아무도 없는 모양이라는 간호사의 말...
자,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은 어떤 심정이 될까.
자신의 인생을 돌아다본다.
꿈에 악전고투(惡戰苦鬪)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이루지 못한 꿈이었는데도
그 날들이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
꿈을 버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꿈’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꿈은
나는 항상
너의 옆에 있었단다.
하지만 꿈의 목소리는 옛날처럼 힘차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꿈도 늙어서 병약해졌겠지.
‘나는 이 세계에
내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겨 놓고 싶었어.
하지만 열심히 하지 않았어
재능도 없었어.
나는 이대로
없어지는 것이 무서워
무엇이라도 남기지 않은 채
나라는 존재가
이 세계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무서워.’
이 말을 들은 ‘꿈’은 아직 시간이 있다고 한다.
노트와 연필을 갖다 주며 뭔가를 써서 남기라고 한다.
떨리는 손을 뻗쳐 연필을 겨우 잡았지만 떨어뜨리고 만다.
無理むりだよ(무리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꿈’은
君はいつもそうだった(넌 언제나 그랬어)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어떤 일을 시작함에 있어 잘 될까 안 될까를 가늠하느라고 허송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최후의 최후까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꿈’의 말에 뜨끔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눈물 젖은 손으로 다시 펜을 잡고 수신인 없는 편지를 쓴다.
누가 받을지 알 수 없는 편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하찮은 인생이라도, 살아서 한번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싶고 친구와 술을 마시며 웃고 싶다고 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싶다고 한다. 좋아하는 여자가 뒤돌아 보아주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상처뿐인 것으로 끝나도 좋다고 한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시간을 한번 맛보고 싶다고 한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다시 한 번 꿈을 꾸고 싶다고.
그가 편지를 써서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다.
生きること, その物ものが, かがやきでした(삶, 그 자체가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삶, 살아있다는 그 자체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그것으로 기본 바탕은 준비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