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이영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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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이웃 블로그에서 주최한 훈훈한 이벤트 덕분이다. 책의 제목을 보고 얼마나 웃겼던지. 어릴 적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무찌르자~ 오랑캐’ 하는 노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이 노래를 언급하는 것이 아닌가. 어, 남자분이 이 노래를 어떻게 기억하지, 신기해하며 정겨움에 흠뻑 젖어들기 시작한다.

 

 몽골, 하면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사막, 드넓은 초원, 칭기스칸, 말을 타고 달리는 유목민들이 생각난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몽골 여행기라기보다는 몽골의 문화, 정서, 몽골인의 삶의 태도 등 여러 가지를 담고 있다. 작가는 2000년 여름, 멋모르고 찾아간 몽골 초원에서 안내인이자 유목민인 두게르잡 비지아를 만나게 된다. 몽골은 화장실이 따로 없다 한다. 문명인으로 살아온 여행객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냥 넓은 초원이 모두 화장실이란다. 하지만, 강물은 모두 쓰는 생명수니까 안 되고, 작은 쥐구멍에 오줌을 누니, 왜 저 넓은 땅을 놔두고 하필 쥐가 사는 구멍에다 그러느냐고 타박하더란다. 이 얼마나 민망한 일인지. 오랑캐로 알고 있던 그는 나쁜 오랑캐가 아니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어서 힘들었던 좌충우돌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그 후 그 대지와 사람에 반해 몽골을 공부하고 여행하며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한다. 한국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다는 알타이산의 마지막 오랑캐 친구 비지아와 함께 했던 초원 이야기이다. 학창시절에 배운 바로는 오랑캐는 아주 나쁜 적으로 통했다. 종류도 다양해서 동이(東夷), 서이(西夷),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불렸는데, 이는 중국과 한통속이 되어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것이다. 비지아는 알타이산의 주봉 이름을 딴 뭉흐 하이르항 솜(郡) 출신인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오리앙카이 부족민이다. 칭기즈칸의 정복전쟁 때부터 청나라와의 독립전쟁까지 활약한 몽골 기마병 중에서도 가장 용맹했다고 한다. 맞붙을 때마다 선봉에서 달려오는 오리앙카이 부족 때문에 무서워서 만리나 되는 장성을 쌓았다고 하니, 그 용맹함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저주와 분노의 뜻이 담겨진 오리앙카이는 ‘오랑캐’가 되었다고.

 

 책 속에 들어있는 사진들은 쉽게 갈 수 없는 몽골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탁 트인 몽골의 초원과 푸른 하늘, 석양을 배경으로 찍은 실루엣 사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떼의 사진 등... 하루하루 경쟁에 치어 지친 마음을 풀어주기에 더없이 황홀하다. 넓디넓은 초원과 광활한 자연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후련해진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생각해보니, 그 풍경 속에 들어앉아 생활하는 유목민들의 삶은 감히 동경하고 흉내 낼 수도 없을 것 같다. 

 

 이동이 주된 삶의 방식인 유목민들에게도 이사는 그리 단순하지가 않았다. 게르를 철거하고 양떼, 말 등 가축까지 모두 끌고 가는, 몇 달씩 걸리는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낮에도 기온이 영하 사십 도로 곤두박질하는 혹한의 겨울을 유목민들은 어떻게 보낼까.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울 만큼 추운데, 풀이 없어 고생하는 가축들, 굶주린 가축들에게서 젖이 나오지 않으니 사람들도 배고픔의 연속이고... 몽골의 초원 낭만적으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멀리서 바라보니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이다. 그 환경에 놓이게 되면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實戰(실전)이다.

 

 우리는 단 하루라도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씻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는 등 불편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비지아는 싸우나, 목욕을 죽기만큼 싫어한다고 한다.(다른 몽골인들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욕조에 담긴 목욕물 일 뿐이지만, 들어가면 끝이라는 거다. 소위 ‘근대’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서 영원히 돌아 나올 수 없는 문명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습관이 되고 삶이 되고 그것이 문화로 형성된다는 것은 정말 간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문화의 차이가 생기고, 그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몽골의 기후 조건은 연중 비, 눈 모두 합쳐도 이백사십 밀리미터의 강우량이라니... 물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우니, 씻지 않는 습관은 척박한 자연에서 저절로 터득한 지혜이며 삶의 일부분이다. 그러한 기후 토양의 조건을 알지 못하고는 야만이네, 비위생적이네 하고 감히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예전부터 유목민들의 식생활이 궁금했었다. 육식을 위주로 먹고 있는 모습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유목민들에 유명한 문구처럼, “동물은 풀을 먹고 사람은 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평생 야채, 과일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젖을 짜서 만든 유제품을 먹기 때문에 고기만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의외로 돼지고기는 먹지 않는단다. 가장 큰 이유는 돼지가 반유목적 동물이란 점이다. 돼지는 인간이 먹는 음식을 같이 먹는데, 이로 인하여 식량 부족 문제로 이어지고, 사회 전체의 분열과 파괴를 부를 수도 있으니까. 유목생활에 대해 언급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어떤 때는 가뭄, 전쟁, 제방의 붕괴와 대홍수, 또 어떤 때는 강물이 불어나 밀려가듯 인구가 너무 불어남으로 해서 잉여 인구가 추방되기도 했다. 하지만 갈 곳이라고는 북부밖에 없었다. 북부는 사막이었다.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일단 사막 속으로 들어오면 살아남기 위해 유목민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사막에서 가능한 단 한 가지 생활 수단인 유목생활만큼 가혹한 생활 형태는 달리 없다.’(P162)-게오르규의 『마호메트 평전』中에서

 

 돼지가 살기 위해서는 습지가 있어야 하는데, 몽골은 사막과 반사막 기후로는 생존하기 어렵다고 한다. 소, 양, 말들이 먹어야 할 풀이 있는 초원을 짓밟는 돼지를 좋아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또한 뚱뚱하고 걸음도 느린 돼지가 잦은 이사에 어떻게 걸어가겠는가. 생각해보니 참으로 애물단지 일 수밖에 없겠다. 가축도 기후와 토양에 맞아야 생육이 가능함을 알게 된다.

 

 이밖에도 오랑캐라는 이미지와 달리 몽골은 여자들의 지위가 매우 높다고 하는데, 놀랍고 흥미롭다. 그들의 사랑법은 더욱 더. 영하 사오십 도를 오르내리는 겨울밤 부부는 어떻게 사랑을 나눌까. 금쪽같은 새끼들을 나가 있으라고 할 수 없으니, 그냥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눈단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로 무슨 유난을 떠느냐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오랑캐답다고 해야 할까. 우리에겐 좀, 아니 많이 민망해서 홍당무가 될 지경이다. 그들의 삶은 전통이 되고 문화로 형성된 것이니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만의 문화이니까. 전반적으로는 유쾌 발랄하면서도, 가끔은 찡한 먹먹함과 감동을 준다. 정말 소설만큼, 아니 소설보다 재미있다.

 

 또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우리는 ‘비가 온다’라고 하는데, 몽골어는 ‘비가 들어 간다’고 한단다. 이는 문장의 주인공을 ‘하늘과 대지’로 보는 것이다. 스스로 우주의 주인이라는 짐을 덜어내고 그만큼 가볍고 그만큼 자유롭게 살아가는 유목민이다. 아, 정말 하늘과 대지 속으로 비가 들어가는구나... 이들의 자연을 경외하는 태도와 삶의 방식은 우리 정착민과는 현저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 정착민들은 보통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정말 그렇게 자부할 만할까 싶다. 사람이 죽으면 화장하는 문화가 많이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부자들은 묘지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몽골인들은 아예 묘지가 없다고 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우리로서는 좀 섬뜩했다. 손자의 힘을 빌어서 죽고 제사를 지내는 일도 없다고 한다. 중국의 유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견원지간이라고 한다. 그냥 땅에 묻혀 자연과 일부가 되는 것. 이것이 그들의 삶과 죽음이다.

 

 

 

 

 친구 비지아를 통해서 바라본 몽골인의 삶과 죽음, 문화는 정주민(定住民)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이 귀한 그들은 외지인이나 여행객들이 오면 얘기를 하고 싶어서 물고 늘어진단다. 반가워서 인사를 하려고 수 십 킬로미터를 말을 타고 달려온다는 그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 귀한 줄을 모른다. 경쟁하느라고 점점 지쳐간다. 사람에 치여 혼밥, 혼술, 혼영 등 혼자族(족) 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물건에 치여 산다. 좀 더 가뿐한 삶이 그립다.

 

 수백 번 몽골을 드나들며 유목민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배운 이영산 작가는 관광객이 아닌 이웃의 시선으로 재미있고 맛깔 나는 어조로 이야기한다. 야만이란 이름으로 폄훼되어왔던 유목민의 삶을 새롭게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매우 유쾌한 시간이었다. 몽골이 궁금한 사람,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총체적인 몽골 이야기이다. 수많은 몽골 관련 책을 참고하여 상세하게 쓴 이야기로 그들을 삶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몽골에 한걸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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