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유럽 - 도시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
조성관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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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가을 그토록 로망이던 첫 유럽 여행을 아이러니하게도 왼팔에 깁스를 한 채 가게 되었다. 두 팔이 멀쩡해도 팀원들과 함께 빡빡한 패키지여행을 따라다니는 것이 버거울 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다녀왔는지 모르겠다. 나를 가까이서 보좌(?)해주는 시누이가 있어서 가능했다. 정말 고맙다. 사람 많은 곳에는 소매치기가 언제 가방을 채 갈지 모르지 사선으로 매라, 가방도 붙잡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을 잘 듣는 어린 학생들처럼 긴장해야 했다. 그래도 사진으로 보던 풍경을 직접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하지만 예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도 없고 깁스를 한 팔이 사진으로 남은 건 두고두고 아쉬웠다. 언젠가는 건강한 두 팔로 휘저으며 여행을 하고 싶었다. 지금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데 온 세상은 코로나 19에 잠식된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만난 이 책 언젠가 유럽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내가 가 본 곳은 여기 여섯 개의 도시 중 빈과 프라하뿐이다. 프라하는 꼭 다시 가보고 싶은 여행지인데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가보지 못한 곳은 설레는 마음으로 저자의 여정을 따라 다녔다.

 

 저자 조성관은 천재 연구가, 작가로 15년 전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고 첫 책 빈이 사랑한 천재들을 쓴 후 프라하, 파리, 런던, 페테르부프크, 독일, 뉴욕, 도쿄 등을 여행하며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시리즈를 썼다. 2010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로 체코 정부로부터 공훈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럽 여행을 어떻게 해야 기억에 남을까. 어떻게 여행해야 내 인생을 살찌울까. 안단테(andante)여행이다. 속도를 늦추면 사람이 보인다. 대자연을 호흡하는 여행과 함께 사람을 만나는 여행만이 오래도록 향기가 지속된다. (P7. 프롤로그)

 

 프롤로그에서 만난 이 말이야말로 유럽 여행다운 여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속도를 늦춘 안단테 여행. 그저 사진을 찍고 어디를 다녀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빠듯한 시간을 정신없이 따라다니는 것이 진정한 여행은 아니지 싶다. 이 책을 통해서 파리, , 프라하, 런던, 베를린, 라이프치히 여섯 개의 도시를 여행하게 된다. 영화 속 장면에서 혹은 작품으로 예술가들에 대한 일화로 이어지는 풍성한 스토리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Paris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들어보기는 했던 몽마르트르, 생제르맹, 클로드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 초대형 수련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까지. 또 여기서 언급하는 인물들은 장 콕토, 코코 샤넬, 조르주 브라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클로드 모네, 앙리 마티스, 윌리엄 포크너 등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거쳐 갔던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고 벅찬 마음이 된다.

 

 

되 마고의 라이벌 카페, 플로르.

 

 

 몽마르트르는 예술가들과 동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다. 수많은 예술가들 중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모딜리아니의 이야기가 흥미를 자아낸다. 방황과 방탕 사이를 오가며 술과 여자에 취해 밤마다 몽마르트르 의 비탈길을 비틀거렸다는. 술에 취해 툭하면 난동을 부린 공간이 테르트르 광장이라고 한다. 예술가들의 생애를 책에서 많이 접했지만 평탄한 길만 걸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결핍이 밑거름이 되어 창작열을 불사를 수 있지 않았을까. 모딜리아니가 자주 드나든 단골 술집 라팽 아질(Au Lapin Agile)110년이나 되었지만 지금도 영업 중이라고

 

 또 몽마르트르에 갔다면 반드시 가봐야 할 현대미술의 성지와 같은 곳인 세탁선(Le Bateau Lavoir)'이라고 한다. 원래 피아노 공장이었는데 주인이 방을 수십 개 만들어 가난한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빌려 주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든다. 여기서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면서 입체파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많은 예술가들의 삶의 흔적과 역사적 배경까지도 풀어내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 그만큼 이야기도 물 흐르듯이 잘 읽히는 것 같다.

 

이름만 들어도 두근두근 설레는 헤밍웨이, 보부아르, 사르트르, 카뮈가 단골로 다녔다는 카페 되 마고와 오랜 세월 라이벌 관계였던 카페 드 플로르의 역사에 대해 이어진다. 플로르는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영화의 새로운 흐름이라는 뜻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 영화 운동이 시작된 곳이라 한다. 그것이 조금이나마 반영된 영화는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남과 여.

 

 이야기에 몰입되면서 여행서를 읽는 게 아니라 문학, 영화, 예술이 곁들여진 인문학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유럽 문화를 얘기 하는 것 중 너무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은 묘지 투어다. 우리의 경우와 비교하면 극과 극이 아닌가 싶다. 묘지 해설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삶이 있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있는 법인데 우리는 너무 구분해서 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묘지 투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메멘토 모리카르페 디엠을 실천하는 문화를 향유하는 삶의 태도가 느껴졌다. 또 많은 책을 통해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계약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접했는데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했다. 정작 같이 산 적이 없는 이 커플이 죽어서는 나란히 묻힌 일도 꽤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만큼 두 사람의 관계를 문학의 리더이며 선망의 대상으로 인정한 건 아닐까.

 

Wien

  빈은 그림으로만 보았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키스유디트를 보고 사진까지 찍어올 수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특히 키스는 해외로 한 번도 반출된 적이 없다고 해서 더욱 특별함으로 다가왔었다. 여기서는 클림트가 사랑했던 카페 첸트랄, 데멜, 슈페를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특히 첸트랄은 1868년에 문을 열어 150년이 넘은 카페란다. 작가들의 사랑방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이들의 전용 공간이었으며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등이 이 곳에 들렀다는 일화를 듣게 되니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이슬람 세계의 기호식품이던 커피가 오스트리아에 전해진 계기가 전쟁 때문이었다. 1683년 가톨릭 합스부르크 제국과 이슬람 튀르크 제국이 4개월에 걸친 전투를 벌이다가 보급품을 버리고 도망을 가는데 그 중에 커피 원두 알갱이가 들어있는 포대가 있었다. 이것은 빈 카페의 도시가 되는 계기가 된다. 35년간 30번이나 이사해야 했던 베토벤의 이야기가 나왔다. 까탈스런 세입자였던 베토벤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때도 파스콸라티 남작은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고 했으며 방을 비워두고 기다렸다고 한다. 천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던 남작의 이 집을 시 당국은 집주인의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파스콸라티 남작은 베토벤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는 이름이 되었다고. 빈은 갔지만 베토벤이 관련된 장소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여행도 사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Praha

 프라하는 다시 가보고 싶은 여행지다. 41년 동안 공산체제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미지의 도시였던 프라하를 알린 것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한다. 재미있게 본 시리즈 영화였는데. 그러고 보면 영화나 책 등 예술은 저마다 소통을 하면서 세상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를 교를 건너면서 본 그림을 그리던 화가며 많은 관광객들로 넘치던 프라하가 생각난다. 틴 성당, 화약 탑, 건물의 각종 양식을 설명해주던 가이드의 해설을 들으려고 바짝 붙어 걸었던 일이 먼 일처럼 추억이 되었다. 여기서는 구시가광장을 재미있게 음미하는 코드를 소개하고 있어서 시선을 끌었다. 건물의 현관에는 번지수 옆에 조형물이나 그림이 부착되어 있는데 그것은 중세 시절 주소 대신이었다. 도로명 주소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수백 년 된 전통을 버리지 않고 함께 향유하는 그들에게서 멋이 느껴졌다. 또 빈에서 푸대접한 모차르트를 품어준 도시가 프라하였다는 일화 등 풍성한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고,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프라하는 그래서 수많은 관광객들을 부르고 있나보다.

 

 

카를교 풍경 

 

 

 

내가 찍어 온 사진(카를교를 건너면서)

 

 

 

틴 성당(위 사진)

 

 

 

 

내가 찍어 온 사진(틴 성당)

 

London 

 영국은 런던은 많은 문학 작품의 향수로 인해 가보고 싶은 곳이다. 영화 노팅 힐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는데 20주년을 맞아 재개봉 된 모양이다.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을 쓴 블레어는 경찰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노팅 힐에서 작가의 꿈을 키웠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도시 한복판에 풀과 숲이 우거진 거친 들판이라는 뜻의 햄프스테드 히스가 100만 평이나 되는 면적을 자랑하는데 느긋하게 돌아보며 런던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여행이라고 강추하고 있다. 조지 오웰도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무렵 이 곳 햄프스테드에서 살았다 한다. 고서점 북러버스 코너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숙식을 해결했던 곳이 지금은 빵집으로 바뀌어 성업 중이라고.

 

건축물의 수명은 무엇이 결정하는가. 철근과 슬래브와 콘크리트인가? 철근과 콘크리트로 건축물은 지상에 서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그 공간을 거쳐 간 사람들이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이다.’(P370) 

 

 여러 도시의 카페, 광장 등 여행지에 머물렀던 수많은 예술가들은 그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일일이 다 리뷰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장소와 위대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에 푹 빠졌다. 베를린의 정신을 느끼기 위해서는 꼭 가봐야 할 빌헬름 기념교회 등 아직 가보지 못한 파리, 런던, 베를린, 라이프치히를 언젠가 꼭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이제는 저자의 말대로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의 패턴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 ‘지적인 개인주의 여행으로 위대한 천재들과 교감하는 안단테 여행, 유럽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훌륭한 안내서가 되리라 믿는다.

 

 

 

 

 
폭격 맞은 모습 그대로 베를린의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는 빌헬름 기념교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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